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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가본것같은 성지순례] 서쪽벽(Western Wall)

서쪽벽(Western Wall)

모리아산의 서쪽, 성전이 있었던 성전산의 서쪽을 감싸고 있는 벽의 명칭은 서쪽벽(Western Wall), 혹은 벽이란 뜻인 히브리어 ‘코텔’, 그리고 ‘통곡의 벽’이다. 이곳은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던 성전산의 한 부분으로 유대인들이 그들의 종교행사를 진행하도록 허락 받았던 유일한 장소이다. 탈무드에 이런 기록이 있다. “만일 누군가가 이스라엘 땅 밖에서 기도한다면, 그 마음의 중심은 이스라엘 방향으로 향해야 한다. 그가 이스라엘 안에서 기도한다면 그 마음은 예루살렘을 향해야 한다. 예루살렘 안에서 기도한다면 성전으로 그 마음을 향해야 한다.”  꿈에도 그리던 예루살렘에 온 유대인 순례자들은 2천년 전의 유일한 성전산의 흔적이 남아있는 벽에 손을 대고 그 돌을 만지며 감격에 겨워 기도했다. 그것은 예루살렘 성전의 회복, 유대인들의 핍박의 종식, 이스라엘의 건국과 그 밖의 개인 문제에 대해서 기도를 드렸다. 1900년동안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순례를 왔는데, 그 이유는 오직 서쪽벽에서 기도할 기회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이곳으로 왔던 유대인들은 도적을 만나기도 하고 물이 떨어지기도 하며 질병과 온갖 어려움을 겪으며 그 벽에 마주하는 순간, 격한 감정에 눈물을 쏟아내며 기도한다고 해서 통곡의 벽이라고 불려졌던 것이다. 이 벽들 사이에 나있는 전도서 12장5절에 ‘원욕’이라고 번역된 케이퍼(Caper bush)는 그 눈물을 먹고 자라난다고 한다. 모리아산 위에 위치했던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거룩한 장소로 여겨져 왔다. 기원전 586년도 바벨론 느브갓네살 왕에 의해서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은 스룹바벨에 의해서 기원전 515년에 완공되었고, 그 후 헤롯에 의해 기원전 19년경 재건축되었다. 헤롯이 거대한 성전을 건설하기 위해 모리아 산의 자연 언덕을 깍고, 그것이 흘러내리지 않게 하기 위해 사면으로 가두어놓은 옹벽을 건축했는데 그 중에서도 극히 작은 부분, 60미터 정도가 우리가 보는 서쪽벽인 것이다. 실제 헤롯 성전의 서쪽벽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통곡의 벽 지하에 위치한 485미터에 달하는 서쪽벽 터널(Western Wall Tunnel)을 방문해야 한다.

성전산의 서쪽벽이 남은 이유를 유대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서기 70년 디도 장군의 로마군대가 예루살렘 성전을 처참하게 파괴할 때,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그 날개를 펴며 말하길, “이 벽은 가난한 자들의 헌신으로 지은 작품이며 결코 파괴되어서는 안될 것이다”라고  “이스라엘 땅의 전설”에 나온다.

흥미롭게도 실제 디도 장군은 성전산을 감싸는 벽은 무너뜨리지를 않았다. 현재 예루살렘 성이 네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그것은 십자가의 길인 비아돌로로사(Via Dolorosa)가 지나가는 크리스찬 구역, 아르메니안 구역, 황금돔이 위치한 성전산의 무슬림 구역, 그리고 서쪽벽이 있는 유대인 구역으로 되어 있다. 통곡의 벽 서쪽으로는 예루살렘 성안에서 제일 큰 규모를 자랑하는 후르바 회당(Hurva Synagogue), 서기 70년 제사장의 집이었던 burnt house 박물관, 비잔틴 시대의 도로 카르도(Cardo), 히스기야 성벽 등의 유적이 남아있다. 서쪽벽이 중심이 된 유대인 구역을 포함한 구도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독립 후1967년까지 요르단의 지배하에 있었고, 1967년 6월 이후 서쪽벽은 모든 사람들에게 24시간 기도의 장소로 개방이 되어 있다.  유대인들은 이곳에서 기도하고 자신들의 기도가 응답되기를 바라며 ‘통곡의 벽’ 돌들 틈 사이로 기도편지를 끼워 넣기도 한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가 헤롯이 성전산의 벽을 건축할 때, 돌과 돌 사이에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아 약간의 틈이 있기 때문이다.

순례자들은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예루살렘 성의 분문(Dung Gate)을 통과하며 양각나팔과 북소리에 맞추어 노래하며 춤을 추는 한 두 무리의 행렬과 마주치기도 한다. 그들은 13세에 행해지는 유대인  성년식을 축하하는 바르 미쯔바(Bar Mitzvah) 행렬이다.  유대인 소년들은 13세, 소녀들은 12세가 되면 모세오경의 말씀과 율법을 스스로의 책임 하에 지키는 나이가 되었다는 의미로 성년식 행사가 남자들은 서쪽벽에서, 여자들은 회당에서 이루어진다.  미국의 어딘가에서 온 소년의 부모와 친지들의 축하에 맞추어 유대인 소년은 두루마리 성경을 들고 서쪽벽 앞에서 비디오와 사진을 찍는다.  사실 성전산(Temple Mount)에서 이루어져야 할 행사가 이곳 서쪽벽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예루살렘 성전은 서기 70년에 무너졌고, 그 자리에 서기 692년에 건축된 아랍인들을 위한 바위사원(Dome of the Rock)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이슬람 바위사원과 엘악사 사원(Al-Aqsa)이 있는 성전산에는 올라가지 않고,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던 장소와 가장 가까운 곳인 서쪽벽에서 기도하는 것이다. 기원전 10세기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고 기도하기를 마쳤을 때, 불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며 밤에 솔로몬에게 예루살렘 성전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하 7:1).

이는 내가 이미 이 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으로 여기 영영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대하 7:16)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솔로몬 성전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영광과 말씀에 근거하여, 그 전을 생각하며 간절히 기도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에게는 예루살렘 성전의 돌이 돌 위에 하나도 남지 않으리라(눅 19:44)는 예수님의 말씀이 성취된 현장을 실제로 보는 의미가 더 큰 것이다. 제2차 성전시대에는 이미 지성소에 법궤도 없었고, 만민이 기도해야 할 장소에서 돈 바꾸는 자와 강도들의 굴혈이 된 그 성전을 향해 예수님은 헐어버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육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 2:19-21)

글, 사진_ 이호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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