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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재천 교수의 말씀에너지] 바벨탑에서 다락방으로 이어진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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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Rodolfo Clix on Pexels.com

바벨탑에서 다락방으로 이어진 은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은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고뇌하는 제자들에게 사뭇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셨다. 자신이 아버지께로 가야만 “보혜사 성령”을 보내실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성령이 오시면 제자들이 땅끝까지 나아가 자신의 증인이 될 거라고 하셨다. 자신이 세상을 떠나고 없는 빈 자리에 고독하게 남아 있을 제자들에게 그들이 아직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성령의 임재를 말씀하시며 성령과 함께 땅끝까지 나아가라는 지상명령을 제자들이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는 분명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명령이 담긴 사도행전 1장8절의 말씀 속에는 위와 같은 표면적인 해석보다 더 깊은 미묘한 뉘앙스가 실려 있다. 실제로 주님의 음성을 직접 들을 수 없는 현재 독자들이 본문 말씀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원문이 담고 있는 문법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사도행전 1장8절 주님의 말씀이 사실은 명령이 아닌 놀라운 축복의 약속 임을 알게 된다. 그 약속의 의미를 되살려 읽으면 다음과 같다: “그 성령이 너희에게 반드시 임하실 것이며, 그러면 너희는 곧 권능을 받으며 (그 권능으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드디어 오순절 첫 날, 마가의 다락방으로 추정되는 넓은 장소에서 제자들이 기도를 하고 있었다. 사도행전 2장2절은 다음과 같이 그날을 증언한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 . . ,” 3절에서는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각 사람 위에 임하니,” 그제서야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이렇게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제자들은 나가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다. 주님의 부재에서 비롯됐던 그들의 무능력은 성령의 오심으로 주님과 같은 능력을 덧입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불과 같이 임한 뜨거운 방언의 역사를 힘입어 담대함으로 변했다. 역시 주님의 말씀은 약속대로 이뤄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약속의 성취를 위해 나타난 성령이 왜 불의 혀와 같은 모습일까? 어디서 갑자기 이런 능력을 나타내는 “혀”가 등장한 것일까? “혀”라고 번역된 이 단어는 헬라어로 “글로싸”이고 좀더 면밀히 말하면 혀의 복수형인 “혀들”이다.

역사 속에 이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창세기 11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세상 모든 인간의 패역함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는 자신들의 능력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이루었다는 자만에 빠지게 되었다. 급기야 자신들을 위한 탑을 하늘까지 쌓으며 하나님의 권위에 다다르려 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내려가 인간이 무엇을 하는지 살펴보자” 하시고는 강림하셨고 결국 그들의 패역함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시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흩어 버리시는 심판을 내리셨다.

이때 흩어진 그 “언어”라는 표현이 바로 “글로싸”라는 “혀들”이다. 즉, 모든 인간이 하나의 언어로 하나님의 복음 안에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던 은혜의 시대가 그 언어의 흩어짐 때문에 멈추고 만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참으로 놀랍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약속대로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셨고, 그에 대한 눈에 보이는 증거로 그 흩으셨던 “혀들”이 다시 성령의 능력과 함께 각 사람에게 임하도록 했다. 즉, 세상이 땅 끝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다시 하나될 수 있도록 인간에게 불과 같이 그 “혀들”이 임하도록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신 것이다. 이제 누구든지 주님의 약속을 신뢰하기만 한다면 비록 지금까지의 자신의 모습이 평범한 어부와 같고 두려움 많은 제자들과 같다 하더라도 성령 안에서 땅 끝까지 주님의 증인이 될 수 있다. 

사도행전 2장의 이 놀라운 오순절의 역사를 창세기 11장의 바벨탑에서부터 이어지는 하나님 은혜의 경륜 속에서 이해한다면 오늘 성도들에게 부어주신 성령, 그리고 그의 모든 능력과 은사의 목적이 다시 한번 온 세상이 주 안에서 하나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 임을 되새길 수 있다.

정재천 교수의 말씀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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