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te icon The ChristianTimes

[칼럼: 희년 이야기] 삼일운동과 토지평등권 개혁

white plant

Photo by George Webster on Pexels.com

삼일운동과 토지평등권 개혁

삼일운동은 농민들이 1910년대에 일제가 벌인 토지조사사업 때문에 빼앗긴 땅을 되찾을 뿐만 아니라 토지가 균등 분배되는 새 나라를 세우려는 열망 속에 이루어졌다. 따라서 이 토지 균등 분배에 담긴 토지평등권 정신이야말로 삼일정신의 핵심 중 하나인 것이다.

“한 걸음 나아가 (3·1 운동으로: 인용자) 독립되면 재산을 균분(均分)하리라는 소문도 전라남도 및 충청남도 일원을 중심으로 퍼졌다.”(권보드래, 133쪽).

“평북 창성에서는 독립 후 정부에서 토지를 매수한 후 평등하게 분배할 것이라는 풍문 때문에 서둘러 토지를 팔아버리는 사람까지 나타났다.”(권보드래, 133쪽).

“경기도 안성군 원곡·양성면에서는 (3·1 운동으로: 인용자) 구속된 농민 중 여러명이 독립하면 뺏긴 땅을 되찾게 되리라는 희망을 피력했다. “독립이 되면 빼앗긴 땅을 되찾게 된다기에 기쁜 마음으로 바라는 것”이라거나 “10년 동안 빼앗겼던 땅을 찾게” 될 것이라 하고 “독립이 되면 (…) 빼앗긴 땅을 되찾으니까 좋다”는 문장은 약속한 듯 비슷하다.”(권보드래, 133쪽).

“이때 “빼앗긴 땅을 되찾”으리라는 말은 일차적으로 토지조사 과정에서 부정당했던 경작권을 돌려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리킬 것이다. 조선시대를 통해 토지 소유는 배타적 사적 소유가 아니라 중층적·관습적 소유 형태로 존재했다. 소작농이라 해도 단순히 계약직 노동자가 아니라 엄연한 부분적 소유권자인 경우가 많았다. 즉 조선시대에 대부분의 소작농은 장기간 경작권을 보장받았고 심지어 그 권리를 상속하기마저 했으며, 도지권(賭地權)이라 하여 경작권을 넘기는 대가로 토지 매매 시에도 매매가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랬던 것이 1910년대에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배타적 사적 소유 제도가 확립됨으로써 소작농의 권리가 대폭 축소됐고 설상가상으로 소작료는 가파르게 뛰어올랐던 것이다. 국유지를 경작할 때는 내지 않아도 됐던 세금 또한 더 징수당해야 했으므로, 농민층에 있어 1910년대 토지조사사업은 그야말로 ‘땅을 빼앗기는’ 경험이었다. 3·1 운동은 바로 그런 박탈의 근과거를 취소해버릴 수 있는 해방의 가능성으로 비쳤다. 

단순히 토지조사사업 이전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진작부터 꿈꿔왔던 균분 혹은 보다 공평한 분배에 대한 소망까지 곁들여졌다.”(권보드래, 134쪽).

대한민국은 ‘지주(地主)의 나라’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지주들이 장악하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의원들의 절대 다수가 지주들이요,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를 막론하고 청와대까지 고위 공무원들의 절대 다수가 지주들이요, 판사와 검사와 변호사의 절대 다수가 지주들이다. 입법, 행정, 사법의 삼권(三權)을 지주들이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 뿐인가? 재벌들과 대기업 회장들이 대표적인 지주들이요, 대형 사찰들과 그 주지들, 대형 교회들과 그 담임목사들도 지주들이며, 대학교와 대학 교수들, 대형 연예기획사들과 유명 연예인들 또한 지주들이다. 경제 권력과 종교 권력, 지식 권력과 문화 권력을 모두 지주들이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어둠의 세계에서 칼 들고 설쳐대던 조직 폭력배들도 이제는 지주가 되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지주들이 장악하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이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해방시켜 자유를 주신 후에 약속의 땅을 주시되, 지파 별로, 가족 별로 그 토지 가치를 고려하여 토지를 균등하게 분배해 주셨다. 그리고 50년마다 가난한 사람들이 자유를 되찾고 또 토지를 되찾아 토지 균등 분배 상태를 회복할 수 있도록 희년 제도를 주셨다. 그런 점에서 희년은 바로 ‘출애굽의 제도화’였다.

출애굽과 희년 제도에는 모두 토지 평등권 원칙이 담겨 있다. 오늘날 우리는 이와 같은 성경의 토지 평등권 원칙을 구약 시대와는 다른 현대의 상황에 맞게 적용 하여 실현해야 하는데, 최선의 방안은 토지보유세를 대폭 강화하여 토지 가치를 공유하거나 균등 분배하는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토지 평등권은 출애굽에 해당하는 1945년 해방 후에 북에서는 토지개혁으로, 남에서는 농지개혁으로 어느 정도 잠깐 실현되는 듯하였으나, 북에서는 얼마 후에 집단화와 국유화로 어이 없이 배반당했고, 남에서는 소수의 토지 독과점으로 그 효력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되었다. 지금 북의 최대 지주는 김일성과 항일 빨치산의 후손들이며, 남의 최대 지주는 재벌과 그들에게 결탁한 특권층이다.

그러므로 ‘지주의 나라’를 진짜 ‘백성의 나라’로 만들려면, 토지 평등권이 남과 북 모두에서 토지 가치를 남과 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골고루 향유하는 토지 개혁으로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 오늘날 토지 평등권 실현이 빠진 삼일운동의 역사적 계승이란 팥소 없는 찐빵에 불과한 것이다.

참고문헌

권보드래, 『3월 1일의 밤』(파주: 돌베개, 2019).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