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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동네목사개척이야기] 네가 잘 되기를 바래, 진심으로

네가 잘 되기를 바래, 진심으로

오늘 칼럼은 한 가지 질문으로 시작하고자 한다.
당신은 “다른 사람이 정말 잘 되시기를 바라는가?”
이 질문에 “YES”라는 답을 했다면 한가지 더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잘 되도록 무엇인가를 해보았는가?“
”누군가 잘 되도록 최선을 하대 본적이 있는가?“

겉치레 인사치레로 “화이팅! 또는 잘 되길 바래!” 라고 말 말고, 정말 진심으로 다른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본적이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사실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어쩌면 현대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는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특별한 일일 수도 있다.

특히 상대방과 내가 유사성이 크거나 겹치는 영역이 많을수록 타인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어렵다. 우리 나라 고3 수험생 중에 같은 반 친구가 성적이 잘 나와 좋은 대학에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료를 공유하고, 만약 내가 더 잘 아는 영역이 있다면 도와주는 학생이 있을까?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풍경은 아니다. 학교에서도 옆 친구를 ‘매일 매순간 경쟁자’라고 이야기 한다. 동종업계, 동일연령, 동일성별 등의 공통분모가 많을수록 특정인과 나를 비교하게 되고, 경쟁 관게에 놓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진심으로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소수이다.

일상 중에 타인이 잘 안되기를 바라하는 마음은 은근히 작용한다. 다른 사람이 잘되면 상대적으로 내가 못나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이 있는 것 아닐까?

하지만 이 기조는 가치를 주는 것이 아니라 빼앗으려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주변에 사람이 떠나간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은 나의 안전과 이익에 보탬이 되는 사람만 남겨 두게 된다. 하지만 이것마저도 조건이 충족되지 않을 때 바닥이 난다. 왜냐하면 이익을 주고받는 거래적 관계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남이 안되기를 바라는 기조는 서로를 북돋고 붙잡아 주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이 떨어지고 시기심과 비교감에 붙잡히게 된다.

이런 각자도생의 시대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는 방향으로 삶의 영향력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다. 기독교 가치는 다른 사람이 정말 잘되기를 바라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도움을 주게 될 때 이 관계는 이익의 순환을 넘어서서 신뢰와 가치의 관계를 만들어 간다고 도전하고 있다.

보통, 마음이 가난하면, 환경적 상황이 어려우면 “나 좀 도와줄래?” 하는 태도가 베여 있게 된다.
그런데 마인드를 바꾸는 순간 다른 질문을 하게 된다. 바로 이 질문에서 새로운 마인드가 출발한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다른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다정함이 있다. 요즘 시대에는 ‘다정함은 희귀한 재능’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다정함이 진심인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마음을 열고 대화하는, 타인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은 생각보다 훨씬 힘이 세고 소중하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이것이 일상에 적용될 때 강의를 해도 다른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식을 전달하게 되는 것이고, 물건을 팔아도 다른 사람의 삶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판매하게 된다.
스피치를 잘하기 위해서는 타인을 사랑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2023년도 수험생들도 서로에게 이런 인사말을 자주 건내었으면 좋겠다. “네거 정말 잘 됐으면 좋겠어.”

가족이나 친구, 이웃과 직장 동료들과 행복한 관계로 지내기 위해는 이런 마음이 필요하다.
“당신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
특별히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이런 지지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내가 갖고 있던 물건을, 시간을 기꺼이 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잘 되기를 바란다고, 행복과 건강을 빌어 줄 수 있다.

각자도생이 일상화된 오늘날, 다른 사람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사람이 먹고사는 문제로 바빠지기 시작하면 타인에게 뻗친 손길부터 거두어들인다.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남까지 돌볼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삶의 템포는 점점 빨라지고 마음의 여유는 점점 줄어든다.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른 사람이 잘 되기보다 내가 잘되어야 한다는 마음이 압도적인 세상이다. 만약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이기를 바라는 비전이 가슴에 담겨진 사람이라면 세상은 희망이 있다. 당신의 주변이 기독교적 새로운 파동을 만들어갈 세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타인의 잘됨이 나의 잘됨이자 우리의 잘됨이 될 수 있다고 하나님 나라 비전이 담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잘됨을 바라는 마음은 그 대상을 반드시 잘되게 만들고, 자기 자신을 잘되게 만든다. 이 글을 읽은 당신도, 잘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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