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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그런뜻이었구나] “시작,”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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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John-Mark Smith on Pexels.com

“시작,”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위해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었고,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불신의 세기였고,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자 절망의 겨울이었고, 우리 앞에 모든 것이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 것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천국을 향해 똑바로 나아갔지만 우리는 모두 천국을 등진 채 반대로 나아가고 있었다.  요컨대, 그 시절은 현재의 싯점과 너무 닮아 있었다.”찰스 디킨스는  『두 도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독자의 마음 속에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긴장감을 부추깁니다. 최선과 최악, 지혜와 어리석음, 믿음과 의심, 빛과 어둠, 희망과 절망, 풍요와 빈곤, 그리고 행복과 불행의 상반된 삶의 기로에서 한 길을 선택해야만 하는 인간의 운명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함을 밝힙니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출발은 가장 중요한 자연의 법칙으로 이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 삶에 관련된 모든 것은 시작이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시작은 크고 작은 모든 세계의 진화와 발전을 지배하는 근본이었습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모든 것은 시작에서 진행되어 생성되고, 또한  파괴되는 모든 것은 시작의 결과다 ”고 시작의 기능을 설명했습니다. 창조의 근원을 하나님으로 믿는 유대인들에게 시작은 곧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사람이 후손을 낳는 것 뿐만 아니라  과실 나무과 좋은 열매를 생산하는 것도 시작의 주인인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필론은 “하나님은 모든 발생의 시작이며, 그분의 은혜가 모든 창조의 원인을 제공한다”고 했습니다.   

   시작으로 번역되는 희랍어 “아르케”의 근본 뜻은 지위나 서열 그리고 시간에서 “의뜸”이나 “첫번째”입니다. 예레미아는 이 낱말을 산의 정상으로 표현했습니다. 산의 정상은 가장 높은 지위를 상징합니다. 에스겔은 나무의 꼭대기를 표현할 때 아르케를 사용합니다. “앗수르 사람은 가지가 아름답고 그 그늘은 숲의 그늘 같으며 키가 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 레바논 백향목이었느니라.”사회에서 행사하는 영향력을 꼭대기로 상징화 했습니다. 이 낱말을 처음 사용했던 사람들에게 아르케는 “힘,” “지배,” “권위,”그리고 지배하는 사람의 “영향력”을 의미했습니다.     

   요셉이 옥에 갇혔을 때 그곳에 함께 있던 왕의 술 맡은 사람의 꿈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3일 안에 왕이 관원장님을 풀어주시고 관원장님의 지위 (아르케)를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왕의 술 맡은 자의 권위가 복원된다는 뜻입니다. 므라리의 자손 중에서 호사에게 아들들이 있었는데 그들 중에 시므리가 우두머리(아르케)였습니다. 맏아들이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 사회 통념인데 그들의 아버지가 시므리를 우두머리로 세웠습니다. 우두머리는 지배하는 지위와 힘입니다. 느헤미아는 패역한 이스라엘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들은 거역하며 주께서 그들 가운데 행하신 놀라운 일을 잊어버리고 자기들 멋대로 한 지도자를 세워 종살이하던 이집트로 되돌아 가려고 하셨습니다.”지도자로 번역된 아르케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입니다. 다니엘은 아르케를 힘(power)로 사용합니다. 

   성경은 시작이라는 낱말을 매우 빈번히 그리고 세심하고 구체적으로 사용합니다. 기독교 신앙에  이 단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성경 전체에서 첫 문장은 “태초에”입니다. 희랍 구문 “엔 아르케”를 영어 성경은 “in the beginning 시작 때에”라고 번역합니다. 천지에 존재하는 만물들의 출발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언제든 시작은 하나님께서 첫번째,즉 의뜸이 됩니다. 우주 기원의 아르케가 하나님이심을 선언하는 창세기 1:1과 평행 절인 마가복음 1:1절은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희랍어 성경에는 “시작”이 문장의 첫번째 놓여 있습니다. 영어 성경은 “The beginning of the good news of Jesus Christ, Son of God”으로 단어의 어순을 배치합니다.  마가복음을 여는 이 문장은 하나님의 아르케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나타냅니다. 이 문장이 간직하는 시작의 뜻을 발견하기 위해 글쓰기의 육하원칙인 언제,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왜라는 질문은 도움이 됩니다.       

   “언제”에 관한 질문의 답은 “복음의 시작”입니다. 이 시작은 새롭게 출발한다는 의미로 앞을 향한 도약을 뜻합니다. 그렇지만 선지자들이 이미 예언한 과거와 연결 선상에서 완성을 향한 미래로 진행하는 오늘에 나타나는 사건입니다. 복음의 시작은 “어디서” 발생합니까? 한 개인의 삶에 나타납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신앙인의 삶에 복음이 시작됩니다. 복음을 시작하는 주체는 “누구”입니까? 마가는 “예수 그리스도” 라고 밝힙니다.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백성이 오래 기다리던 구원자 메시아입니다. 시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복음”입니다. 우리말 복음으로 번역하는 희랍어 유앙겔리온을 영어 성경은 “Good News”로 번역합니다. 이 단어의 더 언밀한 뜻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의 물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큰 기쁨의 좋은 물결을 일으키십니다. 복음은 “어떻게”시작됩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리스도”라는 이름 속에 담겨있습니다. 그리스도란 “기름 부음 받은 자”란 뜻과 동시에  고난당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복음의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으로 가능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복음은 “왜” 시작되었습니까? 인류에 구원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한 개인의 삶에 큰 기쁨의 큰 물결을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욥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조언합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시작은 단순한 시간을 가르키는 시점이 아닌,시작의 주체이신 하나님의 통치의 출발점입니다. 힘과 능력으로 통치하시는 시작의 주체자 하나님께서 후원하는 삶은 미래가 창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삶에는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큰 기쁨의 좋은물결이 밀려옵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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