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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사랑의 묘약 사용법 (요일3:13-24)_박태겸 목사(캐나다동신교회)

사랑의 묘약 사용법 (요일3:13-24)

박태겸 목사(캐나다동신교회)

사랑은 증오와 질투의 함정에 빠지는 위험이 따른다. 사랑을 하기 시작하면 방해도 많고 힘이 딸린다. 그래서 잘못하면 미움에 빠진다. 사랑을 준 만큼 사랑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장애물이 많은 사랑은 그 장애물의 높이와 단단한 만큼 애절하다. 그것은 사랑의 묘약으로 풀어낼 수 있다. ‘도니체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서 순박한 시골청년 ‘네모리노’가 아름다운 지주의 딸 ‘아디나’를 짝사랑할 때 사랑의 묘약이 필요했다. 사랑의 묘약은 비싼 포도주나 입맞춤으로는 역부족이다. 체음제나 흥분제가 아니다.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서 극중 ‘네모리노’역인 파바로티는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노래한다. “non chiedo, sipuo morir d’amor” (더 이상 바라지 않아요, 사랑을 위하여 죽을 수 있어요)   네모리노의 이런 진실한 사랑이 아디나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사랑의 묘약이란 바로 감동을 주는 것이다.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향한 사랑에도 묘약이 필요했다. 쉽게 이루어지는 사랑은 하나도 없다. 솔로몬이 아무리 적극적으로 다가가도 술람미는 솔로몬에게서 멀어졌다. 

(아가5:6) 내가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는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노라.”

사망에서 생명으로 바뀌는 사랑의 묘약은 ‘악을 선으로 바꾸는 믿음’이다. (14,15절)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져 생명으로 들어간다. 사랑 가운데 살지 못하면 무덤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다. 사랑의 묘약은 예수님이 우리 대신 피흘리심으로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사랑의 묘약이란 믿음으로 얻게되는 화목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의로움’이다. 의로움이란 묘약이 첨가되면 우리 삶에 믿음의 역사가 일어난다. 

(롬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아 팔렸지만 이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의로워졌다. 반면 요셉의 형들은 미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므로 의롭게 되지 못했다. 형들은 요셉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뺏기 위해 ‘사랑의 독약’을 사용했지만, 요셉은 악을 선으로 바꾸는 믿음인 ‘사랑의 묘약’을 사용하여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했다. 사랑은 감정(felling)이 아니라 진리(truth)이다. 거기에는 예수님을 아는 지식(knowledge)과 미움에 나를 내어주지 않는 결단과 의지(will)가 필요하다. 

사랑의 묘약은 말과 혀에서 나오는 지식이 아니라, 진실함에서 나오는 실천이다. (17,18절) 사랑의 묘약은 재물을 자랑하는 혀에서 나오지 않고, 재물을 어디에 사용하느냐는 실천에서 나온다. 우린 사랑이란 이름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부모는 자식 사랑의 이름으로 그 마음을 긁어놓는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거야! 너를 사랑하니까!” 그러나 참 사랑의 원천은 하나님이다. 사랑안에는 묘약이 담겨있다. 그 묘약은 고체나 추상명사가 아니라, 액체로 된 15개의 동사로 되어있다. 또한 사랑은 과거형이 아니고 현재형이다. 지금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과거에 한 수많은 헌신과 선교를 지금도 그렇게 하고있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므로 사랑의 묘약은 진리를 아는 데 그치지 않고 진리를 따라 행하는 것이다.

1)사랑은 오래 참는다 2)온유하다 3)시기하지 않는다 4)자랑하지 않는다 5)교만하지 않는다 6)무례히 행치 않는다 7)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 8)성내지 않는다 9)악한 것을 생각지 않는다 10)불의를 기뻐하지 않는다 11)진리와 함께 기뻐한다 12)모든 것을 참는다 13)모든 것을 믿는다 14)모든 것을 바란다 15)모든 것을 견딘다.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셨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믿고 가장 소중한 아들을 모리아산에서 제물로 드렸다. 사랑의 묘약이란 가장 중요한 가치와 생명을 하나님을 위해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진심을 받으시고 어린 양을 미리 준비해 놓으셨고 그에게 한 약속을 성취시켜 주셨다. 

(창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아끼지 내게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

사랑의 묘약은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행위이다. 우리의 가장 좋은 친구는 예수님이다. 그분은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어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셨다. 사랑의 묘약의 사용법은 진실함에서 나오는 행함과 실천이다. 

(요15:13,14)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령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사랑의 묘약은 ‘생수의 강’이 넘쳐서 흘러보내는 성령의 역사이다. (22,23절) 여기서 ‘생수의 강’은 헬라어로 <포타모이>인데 복수형으로 3,000개의 강이 모인 대하를 뜻한다. 이것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는 것을 행할 때 나타난다. 그의 계명은 바로 ‘서로 사랑’이다. 

(요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에스겔 선지자는 성전 문지방에서 생수가 솟아나오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샘처럼 솟아나 생수의 강을 이루는 것은 더 이상 예루살렘 성전이 아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배에서 나온다고 하셨다. 이는 믿는 자가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다. 이 물은 소성케하는 물이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식물이 번성하고 모든 생물이 살고 고기가 심히 많아진다. 하나님의 사랑인 생수의 강이 우리에게 멈추어 신앙생활이 썩으면 교회는 악취를 풍긴다. 이 사랑을 흘러보내지 않으면 세상은 감동을 받지 못하고 삭막해진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그러므로 시기와 질투와 나 중심의 사고가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라. 사랑의 묘약을 잘못 사용하면 독약이 된다. 사랑과 질투는 종이 한 장 차이이다. 사랑이 죽음같이 강하만큼 질투도 스올(음부)같이 잔인하다. 질투의 불길의 기세는 여호와의 불과 같다.  

(아가8:6) 너는 나를 도장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같이 잔인하며 불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사랑의 묘약의 사용법은 악을 선으로 바꾸는 ‘믿음’과 진실함에서 나오는 ‘실천’과 생수의 강을 흘러보내는 ‘성령’의 역사의 연합을 통해 온전히 효력을 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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