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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Facing the Giants 에스더 4장 1-3절_추수하는교회 (김선호 목사)

Facing the Giants 에스더 4장 1-3절

추수하는교회 (김선호 목사)

오늘은 에스더 4장 1절-3절 말씀을 가지고 .에스더 시리즈 여섯번째 ‘Facing the Giants’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우리 잘 아는 동화, 미운 오리새끼가 있습니다. 태어났는데 알고 알고 보니까 좀 다르게 생기고 이상하게 생겨 가지고 왕따 당하고 근데 알고 보니까 얘는 오리가 아니라 백조였다. 사실 이 동화를 쓴 유명한  안데르센이 얘기하기를 이 미운 오리가 자기 자신이었다고합니다. 자기가 얼굴도 못생기고 키도 작고 그래서 친구들한테 자기가 당했던 그것들을 동화로 이렇게 풀어서 이야기로 쓴 거라고 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우리가 미워하고 증오하면 안 됩니다.  근데 이 에스더서에서도  에스더가 작은 나라출신으로 왕비가 된 거예요. 그래서 시기의 질투가 너무나도 많이 일어나게 되고 이제 이 빌미로 에스더의 민족 전체를 죽이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설교란 무엇인지 매주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이게 에스더에 관한 이야기를 제가 여러분에게 전하지만 이걸 에스더에 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들에 관한 이야기고 내가 2024년 2월지금 오늘 이때 내가 이 자리에 이렇게 앉아 있는데, 과연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면 오늘 이 말씀을 왜 듣게 했는지 여러분의 각자의 상황에 비춰서 오늘도 한번 들어봤으면 좋겠습니다. 

4장 1절입니다.’ 모르드개는 이 모든 일에 대해 알게 되자 자기 옷을 찍고 배옷을 입고 죄를 뒤집어쓴 채 괴로워 큰 소리로 울며불며 성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모든 일을 알게 되자 갑자기 옷을 찍고 죽을 근데 사람들이 입는 베옷을 입고 큰소리를 치며 울며불며 괴로워하는 거예요. 3장으로 다시 돌아가면 모르드개가 왕의 바로 다음 권력자인 하만에게 절을 하지 않은 거예요. 그러니까 하만이 조사를 해 봤더니, 모르드개가 이스라엘 사람이었고 자기 민족과 원수의 나라였음을 알게 됩니다. 아말렉 사람과 아각 사람과 같은 민족사람이고 이스라엘과 원수 관계였습니다.  그러면서 하만이 어떻게 했습니까? 왕에게 거짓 보고를 합니다. 127개국의 넘는 나라를 다스리고 있는데 왕에게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말하지 않고 ‘어떤 한 나라가 있는데요’ 이렇게 말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애매하게 말해야 왕이 승낙을 해줄거 같았습니다. 만약에 이스라엘 나라인데요. 그러면 왕비 에스더의 나라임을 알수도 있고  그러면 허락 안 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애둘러 애매하게 말합니다. 그리고 은 일만 달란트를 왕에게 바치며 왕이여 이 일만 달란트를 받으시고 그 법을 어긴 민족을 제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말합니다. 일만 달란트가 여러분 얼마일까요? 1달란트가 27킬로입니다. 

그러면 일만 달란트는 270,000 킬로의 어마어마한 무게입니다. 이 정도의 금 27만 킬로미터의 은을 가지고 왕에게 얘기를 한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의 전 재산을 다 맞춰서 내가 우리 민족의 원수인 이스라엘 민족을 다 죽이겠다. 지금 작정을 한 것입니다.. 왕도 조금 놀랬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왕은 너의 마음을 알겠다하며 자기 반지를 빼서 너가 그 민족을 마음대로 해라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여기까지 아까 오늘 1절에서 말한  바로 ‘이 모든 일’입니다. 

그러니까 모르드개가 원수의 나라 출신인 하만에게 절하지 않아서, 조카인 왕비 에스더 그리고  민족 전체가 다 죽게 생긴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자 이 모든 일에 대해서 알게 되다 모르드개는 자기 옷을 찢고 배옷을 입고 괴로워서 울며불며 성 안으로 들어갔다고 나옵니다. 여기서 모르드개는 어떤 과연 기분인가요? 슬픔일까요? 화가 난것일까요? 언뜻보면 슬픔같지만 지금 모르드개는 슬픔보다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 증거가 14절에 나옵니다.

“ 네가 만약 이번에 침묵한다면 다른 어디에서든 유다 사람들은 안녕과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너와 네 아버지의 집안은 망할 것이다. 하지만 네가 이때를 위해 왕비의 자리에 오르게 됐는지 누가 알겠느냐?”  

모르드개가 이제 에스더를 찾아가서 대화를 합니다.  에스더에게  너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되고  빨리 왕에게 가서 말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에스더가 침묵한다하더라도  유다 사람들은 안녕과 구원을 얻을 것이다 말합니다. 즉, 우리 민족은 어떻게든 하나님을 다른방법이라도 구원해 주시고 살려주시긴 할 거야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모르드개의 감정은 에스더의 도움이 없더라도 하나님이 일하실 거를 믿고 있었기에 슬픔보다는 지금 어떤 상황이냐 원수에 대한 거룩한 분노인 것입니다. 

오래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했을 때 하만의 민족인 아말렉 사람들이 광야에서 뒤쳐져 있는 어린아이 ,노인들 다 죽인 그 사건으로  성경 곳곳에 아말렉 사람은 절대 친하게 지내면 안 된고 하나님 저주할거라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 아말렉 사람인 하만이 지금 또 이스라엘 민족을 다시  죽일려고 하니까 모르드개는 트라우마처럼 생각나는 것입니다. 옛날에도 우리 조상을  다 죽였는데 또다시 지금 우리 민족을 죽이려하다니 하며 슬픔이 아니라 즉 분노였고 자신의 원수의 나라 아말렉에 대한 걸룩한 분노였던 것입니다. 

슬픔과 분노는 다릅니다. 우리는 요즘 악한 자가 판을 치는 세상을  우리 뉴스만 틀면 보게 됩니다. 그리고 거짓으로 악한자가 성공하는것도 보게 됩니다. 바로 이 거짓으로 돌아가는 이 세상에 대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분노해야 되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가 지금 왜 여러분 이 시간에 일요일날 집에서 쉴 수도 있지만 왜 앉아서 이렇게 이렇게 기도하고, 예배하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가 경제적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내가 단지 어려운 문제가 있어 위로받고 싶어서, 우리 가족 잘 먹고 잘살고 싶어서 그게 기독교의 최종목적이 되면 안됩니다. 이 거짓으로 돌아가는 세상속에서 그걸 믿고 있고 그걸 전부인 양 착각에 빠져있는 이 세상 속에서 우리는 거룩한 분노를 갖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도록 우리는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날 각지역에서 크고 작은 교회들이 모이는 이 예배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점점 나쁘게 변해가는, 그리고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이 세상 가운데 우리가 거룩한 분노를 가지고 나가가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4장 2절입니다.” 그러나 왕의 문까지만 갈 수 있었습니다. 베옷 입은 사람은 들어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거룩한 분노로 배옷을 입고 왕에게 찾아가려고 했지만, 왕의 문까지만 갈 수 있었었습니다. 왜 들어갈 수 없었을까요? 베옷을 입은 사람은 죽음과 관련이 있고, 부정을 타기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거룩한 분노를 가졌고, 왕비의 삼촌이면 갈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성문앞까지만 갈수 있지 그 안으로 들어갈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우리가 거룩한 분노를 가지고, 열심히 기도하고 예배하지만 이 세상은 점점 악해져만 가는거 같고 아무 변화도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와 예배가 과연 무슨 효과가 있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감리교회입니다. 이 감리교를 세웠던 요한웨슬레라는 분이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사람이 일하면 사람이 일할 뿐이지만 사람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 우리가 이 자리에 모여서 예배하고 기도하면 이 거짓과 속임수가 판을 치는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께서 분명히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일하실까요? 어제 뉴스에도 보도된 이야기입니다. 써리에 한 고등학교에서 선생님의 생일을 축하하는  틱톡 조회수가 천만회가 넘었습니다. 왜 이게 인기가 이렇게 있었을까요? 영상을 보면 두 학생이 선생님 모르게 장난으로 싸우는데 그 두 학생을 사이를 선생님이 비집고 들어가 말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선생님 본인이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인데 둘을 찢어놓기 위해서 과감히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 선생님의 그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더 감동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진정한 선생님 같구나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거를 똑같이 하신 분이 계시죠. 우리가 잘 아는 누구인가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과감히 들어오셔서 이어주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4절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랑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 그리고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사이에,  이 세상이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이신 그분이 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 주기 위해서 오신 것이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믿고 있는 기독교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내가 속한 지역의 교회에서  예배하고 기도할 때 그것이 바로 이제는 성령님이 이 어지러운 세상에 개입하시고 일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찬양인 주는 평화의 가사입니다. 

‘주는 평화 막힌 담을 모두 허셨네 주는 평화 우리의 평화  염려다 막히라 주가 돌보시니 주는 평화 우리의 평화’

우리의 예배와 기도가운데 벽이 허물어지고 이 세상 어지러운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공의를 우리가 선포할때 그분께서 잉ㄹ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로 문을 열고 기도로 벽을 깨야 합니다. 유명한 글이 있습니다 ‘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일하신다 사람은 죽어도 기도는 죽지 않는다.’ 우리가 결코 이 자리에서 기도하고, 예배하는 것이 그래서 하늘나라의 관점으로 봤을 땐 작지 않다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 마지막 절이에요. 4장 3절입니다. ‘왕의 명령이 담긴 칙령이 도착한 지역마다 유다 사람들은 금식하고 울며불며 통곡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썼습니다.’

왕의 명령이 담긴 칙령이 뭐냐면 이스라엘 사람들을 마음대로 죽여도 좋다. 이런 법입니다. 그 법이 도착한 지역마다 이제 이스라엘 사람들이 인제 다 울고불고 통곡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까 모르드개처럼 배옷을 입고 이제 울면서 기도하는 게  오늘의 말씀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바로 많은 사람들이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위기 속에서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함께 슬퍼하며 기도하듯이 우리가 이 자리에 나와서 여러분이 각 지역 교회 안에서 함께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은 결 결코 작은 일이 아님을 깨닫고, 거짓되고 악하고 판을 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해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말씀을 들었지만 이 세상은 어때 보이십니까? 

마치 여러분 마치 오늘 말씀 제목처럼 ‘Facing the Giants’ 즉 거인앞에 우리가 선것처럼 보입니다. 함께 울며 기도하는 그 사람들 그 이스라엘 살람들 가운데도 분명히 그들을 죽일 오는 하만이 거인으로 보여 두려움에 사로 잡힌 사람이 많았습니다.  

오늘 이 말씀의 제목 ‘facing the giants’은 한 크리스천 영화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다윗과 골리앗 얘기를 모티브로 해서 만든 영화입니다. 샤일로 이글스팀이라는 미식축구팀 이야기입니다. 이 축구팀은 맨날지는 팀인데  거기에 새로운 감독 테일러가 오면서 조금씩 변해갑니다. 그러가 가장 강한 팀과의 경기를 앞두고 있는데 모두가 포기한 상태이기도 합니다. 또한 팀의 주장이 제일 잘해야 되는 그 주장이 맨날 약한 척을 하고 힘들다고 합니다. 그때 테일러 감독은 이 팀의 주장에게 필드를 기어가는 데쓰크롤 이라는 훈련을 시킵니다. 더군다나 동료 한명을 엎고 해야 한다고 합니다. 주장은 30야드 정도만 가면 되냐고 이야기 하지만 감독은 50야드라고 말하고 주장은 못할거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눈을 가리고 최선을 다해보라고 합니다. 훈련이 시작되고 힘들어 포기할 거 같은 주장에게 감독은 목이 터져라 계속해서 반복해 이야기합니다. “넌 잘하고 있어! 계속 가는거야! 포기하지마! 계속가!” 결국 50야드를 넘어 필드 끝까지 80야드를 가게되고 눈을 감았던 수건을 풀어줍니다. 그 훈련에 다른 동료들도 큰 감동을 하고 용기를 얻게 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이 장면이 마치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장면 같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매주 예배 하지만 세상은 그대로인것만 같고 각 지역 교회들은 지금 힘들어하고 연약해 지는 것만 같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서  우리가 속한 곳에서 기도하고, 예배하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결고 작은일이 아니라고 말하십니다.

결론입니다. 우리가 왜 예배해야 되고 기도해야 될까요?  단지 나하나 위로 받고 우리가족 잘먹고 잘사는 그 수준에서 벗어나 거짓으로 돌아가며 점점 악해지는 이 거인같은 이 세상에 대해 거룩한 분노를 가지고 바뀌지 않을 것 같아 보여도 포기하지 않고 예배하고 기도할때 하나님은 분명히 하나님의 때에 일하십니다. 

글래서 오늘 이시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우리교회 말고도 밴쿠버의 크고 작은 각 지역 교회들과 그 교회들을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목사님들과 성도를 위해 기도했으면 합니다.  

거인과 같은 이 거대한 세상에서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내가 주어진 자리에서 내가 속한 교회에서 이 세상에 막힌 담을 헐고 화해와 평화를 주시는 쉬지 않고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고, 예배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어지럽고 혼탁하고 거짓이 판치는 이 세상 가운데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불러주시고, 또 예배 가운데 오게 하신 하나님 우리가 이곳에서 예배하는 것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님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이 지금도 일하심을 우리가 믿습니다.  하나님 어지러운 세상 가운데 하나님께서 일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우리를 가는 곳마다 선포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에 하나님 많은 크고 작은 교회들이 하나님께 예배하고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예배하며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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