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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가본것같은 성지순례] 와디켈트 (Wadi Kelt)

와디켈트 (Wadi Kelt)

성경시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고 올라가던 대표적인 길이 유대광야의 깍아지른 깊은 골짜기 안에 있다. ‘와디켈트’라고 불리는 이 계곡길을 방문하는 목적은 유대광야를 바라보기 위함이다. 그래서 와디켈트를 다른 말로 ‘유대광야 조망대’라고도 한다. 이곳을 방문하는 분들은 미국의 그랜드 캐년에 비유해 작은 그랜드 캐년이라고도 말한다.

해발 720미터에 위치한 예루살렘에서 차를 타고 감람산을 지나 1번 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20분 가량 내려가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여인숙 박물관’(Good Samaritan Museum)을 지난 후 와디켈트에 도착할 수 있다. 지금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1번 도로를 타고 약 40분을 내려가지만, 성경시대에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대표적인 길인 와디켈트를 이용했었다. 도로 양옆으로 보이는 광경은 메마른 광야에서 베두인들이 양과 염소를 기르는 모습이다. 광야에서 비탈길을 아슬아슬하게 뛰면서 내달리는 양떼들의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6개월은 건기, 6개월은 우기로 이루어진 성경의 나라 이스라엘은 현재 비가 오는 우기이다. 올해 2020년 1월과 2월에 비가 많이 와서 갈릴리 바다의 남쪽 데간야 댐 수문을 2015년 이후 처음으로 열기 위해 준비 중이라는 반가운 소식도 있다. 비록 우기일지라도 강수량이 적으면 유대광야도 건기와 별반 다를 바가 없지만 올해처럼 비가 많이 오는 해에는 유대광야가 푸른 초장으로 변하게 된다. ‘와디’란 중동과 같은 건조한 지역의 골짜기에 급류가 지나가기도 하는 계곡을 말한다. 예루살렘 북동쪽 유대광야가 시작되는 지점 즈음에  나할 프랏(Prat) 국립 자연 보호지역이 위치해 있다. 유대 광야의 바위 속에서 압력에 못이긴 지하수가 1년 내내 뿜어져 나오는데, 이 샘을 히브리어로는 ‘프랏’이고 아랍어로는 켈트(Qelt)라고 칭한다. 프랏 혹은 켈트샘에서 뿜어져 나온 광천수는 계곡을 따라 여리고까지 이르게 되며, 이것을 가리켜 ‘프랏 시내’, 아랍어로는 ‘와디 켈트’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허리에 띤 띠를 가지고 일어나 유브라데로 가서 그것을 물가에 감추라 말씀하셨는데, 유브라데는 이라크의 유프라테스 강이 아니라, 바로 프랏 시내를 말하는 것이다.

내가 여호와께서 내게 명하신대로 가서 그것을 유브라데 물 가에 감추니라 (렘 13:5)

와디 켈트 전망대에 이르면 서쪽으로는 예루살렘, 동쪽으로는 여리고가 보인다. 이스라엘의 3대 절기에 맞추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를 떠나 여리고를 지나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이용하던 길이 와디켈트에 연결된 아둠밈 비탈길(Ascent of Adummin)이다. 와디켈트를 옆으로 놓고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을 향해서 올라가다보면 감람산 동쪽편 아둠밈에 도달할 수 있기때문이다.

또 아골 골짜기에서부터 드빌을 지나 북으로 올라가서 강 남편에 있는 아둠밈 비탈 맞은편 길갈을 향하고 나아가 엔 세메스 물을 지나 엔로겔에 이르며 (수 15:7)

아둠밈에서 서쪽으로 조금만 가면 베다니 벳바게가 나온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와디켈트에 높인 아둠밈 비탈길을 따라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면서 유대광야에서 벌어지는 범죄사건에 대해서 많은 뉴스를 들었을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치안이 잘 되어 있는 이스라엘에서도 와디켈트를 혼자 걷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실제 2018년 4월 1일에는 네명의 유대인 소년들이 실종되어서 구조대가 파견되었다고 Ynet 이스라엘 신문에 보도가 되기도 했다. 지금도 가끔씩 여행자가 실종되는 곳이 유대광야이고, 와디켈트인 것이다. 어느날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찾아와서 영생의 얻는 방법에 대해서 물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율법사는 어떤 사람이 나의 이웃이냐고 물었고, 예수님께서는 이웃이란 어떤 사람인가를 와디켈트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배경으로 누가 진정한 이웃인가에 대해 비유로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눅 10:30)

강도만난 행인은 거의 죽은 상태로 광야에서 쓰러져 있었고, 마침 예루살렘을 떠나서 여리고로 향하던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를 보고 피해 지나갔다. 이스라엘에서 의로움의 대명사인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 행인을 외면했던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예루살렘 성전에서 자신의 주어진 사명을 다하고 여리고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향하던 길이었을 수도 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행여 시체를 만짐으로 부정을 탈까봐 그냥 지나쳐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가던 사마리아인은 죽은 듯 누워있는 강도만난 사람을 불쌍히 보았다. 정통 유대인들 입장에서 사마리아 사람이란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 앗수르에 의해 혼혈민족이 된 부정한 사람들이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부정한 이단자로 미워했고, 사마리아인들도 그런 유대인들을 미워했다. 그런 사마리아인이 유대 광야에 쓰러져 죽어가던 행인을 보고 불쌍히 여겼던 것이다. 그는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틀치 품싹인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그를 돌보아 주고 모자라는 돈은 돌아오면 갚겠다고 했다(눅 10:34-35).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었다.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대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눅 10:36-37)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피를 흘리며 죽어가던 나그네였는지도 모른다.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보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치유하시고 살리셨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자비의 구원자이시다.

사진, 글_이호일 목사

이번회를 마지막으로 이호일 목사의 ‘가본것같은성지순례’ 칼럼은 종료 됩니다. 그동안 칼럼을 애독해 주신 분들과 칼럼을 성심껏 제공해 주신 이호일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알차고 더 좋은 새로운 칼럼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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