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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희년 이야기] 토지 안식과 지속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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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안식과 지속가능성

레 25:6-7, “6.안식년의 소출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 너와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품꾼과 너와 함께 거류하는 자들과 7.네 가축과 네 땅에 있는 들짐승들이 다 그 소출로 먹을 것을 삼을지니라.”

안식년과 희년에 농사를 짓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저절로 자란 곡식과 저절로 맺힌 포도 열매는 비록 그 땅에 권리가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절대 혼자 독차지하면 안 되고, 남종과 여종과 품꾼과 거류민과 가축과 들짐승과 함께 나누어 먹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 사회에서 부자들에 비해 상대적 약자들인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또 창조 세계에서 인간에 비해 상대적 약자들인 가축과 들짐승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하나님이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또 동물들을 사랑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을 지으셨기 때문이고 또 그들의 힘이 약하므로 특별한 보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모두 약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인간 사회의 약자인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또 창조 세계의 약자인 동물들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레 25:11-12, “11.그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가꾸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12.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는 밭의 소출을 먹으리라.”

희년에는 안식년과 마찬가지로 농사를 짓지 않고 땅을 쉬게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안식년과 희년에 땅을 쉬게 하신 목적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하나님께서 안식년과 희년에 땅을 쉬게 하신 목적은 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땅을 사랑하신다. 왜냐하면 땅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도 땅을 대할 때 하나님이 땅을 창조하셨고 사랑하시며 보호하신다는 진리를 생각하고, 우리 역시 땅을 사랑하며 보호해야 한다. 

둘째, 하나님께서 안식년과 희년에 땅을 쉬게 하신 목적은 미래 세대의 토지권을 현재 세대와 평등하게 보호해 주시기 위한 것이다. 만약 현재 세대가 욕심을 부려 땅을 쉬게 하지 않고 농사를 지으면, 땅의 힘이 약해져서 미래 세대는 나쁜 땅을 물려받게 되어,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 사이의 토지권이 불평등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리우환경회의의 주제였던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개발”(ESSD: Environmentally Sound and Sustainable Development)이란 용어에 담긴 뜻과 일맥상통한다. 이 리우환경회의를 전후로 전 세계에서 채택된 개념이 바로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개발”, 줄여서 “지속 가능한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 더 줄여서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인데, 이 용어에 담긴 정신은, “만약 현재 세대가 탐욕 때문에 환경을 파괴하고 자원을 고갈시키면서 경제 개발을 해버리면, 미래 세대는 파괴된 환경과 고갈된 자원을 물려받을 수밖에 없게 되어,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 사이의 환경권이 불평등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현재 세대는 미래 세대의 환경 평등권을 보장하는 한계 안에서 환경과 자원을 보호하는 가운데 절제하면서 경제 개발을 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안식년과 희년에 땅을 쉬게 하신 뜻과 일맥상통한다. 안식년과 희년의 땅 안식에 담긴 하나님의 뜻은, 만약 현재 세대가 욕심 때문에 땅을 한 해도 쉬게 하지 않고 계속해서 농사를 지어버리면, 땅이 척박해지고 지력(地力, 땅의 힘)이 약해져서 미래 세대는 나쁜 땅을 물려받을 수밖에 없게 되어,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 사이의 토지권이 불평등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현재 세대는 미래 세대의 토지 평등권을 보장하는 한계 안에서 지력을 보호하는 가운데 절제하면서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곧 성경이 중시하는 안식년과 희년의 ‘땅 안식’에 담긴 ‘세대 간의 토지 평등권’은, 현대 생태학과 환경 운동이 중시하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에 담긴 ‘세대 간의 환경 평등권’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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