改革: 나로부터의 개혁
1517년 10월 31일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로마 카톨릭의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는 95개 조의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당 정문에 붙입니다. 그날을 기념하여 전세계의 개신교회들은 매년 10월 마지막 주일을 종교개혁 기념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종교개혁 기념주일인 오늘,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개혁의 주체인가?, 개혁의 대상인가?”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가 타락의 길을 걷고 있을 때마다 개혁의 기수旗手(The standard-bearer of reform)들을 당신의 역사 속으로 불러내셨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여로보암’입니다. 하지만 오고 간 수많은 개혁자들이 그랬듯, 여로보암 역시 개혁의 기수가 되어 자신이 타도하려 했던 대상보다 더 심각한 타락의 길로 들어섭니다.
여로보암은 솔로몬의 산당보다 더 많은 산당을 지으며 백성들의 삶 구석구석에 우상숭배를 자리잡게 한 장본인이 됩니다. 이전의 개혁자들이 빠졌던 그 오류의 늪에 여로보암 역시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개혁의 주체로만 여겼지, 정작 자기 자신 역시 개혁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놓쳤던 것입니다.
개혁을 부르짖는 사람일수록 이 점을 더욱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스스로를 개혁의 주체이기 이전에 개혁의 대상으로 먼저 인식해야만 합니다. 나를 개혁하지 못하는 개혁은 언제나 더 큰 악을 불러오기 마련입니다.
개혁이란 낡은 건축물을 리모델링 하거나, 오래된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개혁이란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개혁은 진리에서 벗어난 모든 것들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입니다. 오직 말씀(Sola Scriptura)으로 돌아가 사람이 중심되었던 교회를 하나님 중심의 교회로 바꾸어가며, 성도 한사람 한사람이 하나님을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시행해야 할 개혁입니다.
이러한 참된 개혁은 깃발을 들거나 구호를 외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개혁은 언제나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 길이 맞다고 증명하는 방법은 큰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 내가 그 길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개혁의 주체이기 전에 개혁의 대상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Fullerton 나들목비전교회 권도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