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7회 예함 청소년 크리스천 문학상 당선작
<나눔상> 김하담/수필- “그래도 괜찮아”
밴쿠버 중앙장로교회, Yorkson Creek Middle School Gr. 8
저는 아빠가 목사님이고, 또한 저는 모태신앙입니다. 그래서였는지 저는 제 신앙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특별 새벽기도회는 정말 아플 때를 빼고는 빠짐없이 늘 개근했고, 매주 수요 예배와 금요 기도회는 당연했으며, 주일예배는 주일 오전 예배와 교육 부서 예배, 그리고 저녁 예배를 당연하게 갔었습니다. 그냥 예배만 가는 것이 아닌 항상 예배 시간보다 1시간 정도는 더 일찍 갔었습니다. 설교 시간에 설교 내용을 노트에 적는 것도 당연했구요.
또 매일매일 큐티와 성경 통독은 기본이고, 몇 년 전부터 그날의 큐티 내용과 감사기도를 적는 큐티 일기도 매일매일 써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교회 성도님들께 “어른들도 이렇게 나오기는 힘들다” “너무 대단하다” “하나님이 진짜 기뻐하실 거야.”라는 칭찬을 들으며 자라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모든 행동들에, 제 신앙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남들은 놀 동안 어린 저는 항상 부모님을 따라 교회를 나와 예배의 자리를 지켰고, 기도 시간에도 열심히 기도했고, 친구들은 방학에 친구들을 만나서 놀고 가족들끼리 여행 다닐 때 저는 항상 수련회에 가서 열심히 설교도 듣고 저녁 집회 때는 눈물을 흘려가며 기도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 저에게 이 모든 행동들에 자부심을 느낀 것이 너무 부끄러워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빠가 서울에서 4년 정도 사역을 하시고 광주로 다시 내려오셔서 사역을 하시면서 이 사건은 시작됩니다. 저희 가족은 광주에 있는 서현교회라는 굉장히 오래되고 역사가 깊은 교회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에서 제가 그동안 스스로의 신앙에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왔던 시간들이 부끄러워진 순간은 은혜를 많이 느끼는 수련회 저녁 집회도, 찬양 축제도 아닌 아주 평범한 주일 저녁 예배였습니다. 저는 그 교회에서 아동부일 때 키즈셀라라는 찬양팀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날 주일 저녁 예배는 아동부 헌신 예배라서 키즈셀라가 찬양 인도를 했었습니다.
저는 늘 그랬던 것처럼 교회에서 키즈셀라 친구들과 밥을 맛있게 먹고 찬양 리허설을 하고, 예배 시간에 강단에서 찬양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예배 시간에도 친구들과 떠들거나 장난치지 않고 여느 때와 같이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노트에 설교 내용을 적었습니다. 그런데 주일 저녁 예배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아빠가 저에게 꺼내신 말씀은 평소처럼 잘했다는 칭찬이 아닌, “그럴 거면 키즈셀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은 제게는 정말 당황스럽고 갑작스러운 말이었습니다. 아빠는 그 이유에 대해 “키즈셀라 연습할 때는 본당에서 다리를 꼬고 삐딱하게 서서 대충대충 하고, 예배 때는 찬양을 제대로 부르지도 않고, 계속 바닥만 보면서 찬양은 하는 둥 마는 둥 하는데 그게 무슨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거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아빠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짜증도 났고 어이도 없었고, 억울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얼마나 열심인데, 내가 얼마나 성실한데, 그냥 바닥 좀 봤다고 그러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구요. 저는 그날 제 신앙에 대해서 부정당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잠이 들기 전 갑자기, ‘내가 여태까지 자부심을 느껴왔던 내 신앙이 진짜 신앙이 맞나?’라는 의문이 문득 들었고 그 답은 “아니요”였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매번 빠지지 않고 가던 특별 새벽기도회의 말씀 내용은 학교를 가는 순간, 아니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미 사라져 버렸었고, 매주 빠지지 않고 가던 수요 예배와 금요 기도회는 가기 전부터, 아니 매주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불평불만으로 가득했으며 교회에 가서도 툭하면 졸았었습니다. 그리고 예배 때마다 멍하게 있거나 밖에서 노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는 게 일상이었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예배를 드린 것이 아닌 말 그대로 그냥 보고 들은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매일매일 하던 큐티와 성경 통독은 사실 자주 빼먹고 잊어버렸으면서 잘 해왔던 척했었고, 큐티 일기에 매일 적는 감사기도는 정말 터무니없는 일들을 적고 나서 ‘일상에서 감사기도를 찾으라잖아’라는 합리화를 했었습니다.
수련회에 참석할 때도 가기 전에 기도로 준비하기는커녕 수련회 가서 뭘 입을지, 뭘 먹을지만 생각했었고, 저녁 집회 때 흘린 눈물은 정말 은혜를 받아서가 아닌 주변 친구들이 우니까 분위기에 휩쓸려서, 또는 평소에 세상에서 힘든 일들로 참고 있던 눈물이 흘렀던 것입니다. 설교 시간에 적은 말씀 노트는 자기만족에 가까웠고, 친구들 사이에 문제가 있을 때를 되돌아보면 늘 교회 안에서 일어났었습니다. 전도는 교회가 멀다는 핑계로 친구들에게 교회 다니는 걸 드러내지 않고, 아니 숨기며 신앙생활을 해왔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목사님의 딸이라는 이유로 저를 합리화하고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서요. 핸드폰 배경 화면을 말씀으로 설정하고, 욕을 안 쓰고, 예배를 꼬박꼬박 나오면 뭐 해요, 일상생활에서 전혀 하나님을 믿지 않는데 그런 행동들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거예요. 저는 겉으로는, 말로는 겸손한 척, 내가 하는 행동들이 당연한 척, 내 삶에서 교회가, 말씀이, 하나님이 전부인 것처럼, 성실한 크리스천인 것처럼 행동하면서 속으로는 ‘이 정도 칭찬은 받아도 되지, 내가 얼마나 열심히 다니는데’ 같은 세상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저는 그냥 부모님 손에 이끌려 억지로 교회에 나오는 아이와 같은 신앙심을 가지고 있었으면서 그런 신앙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게 참을 수 없을 만큼 부끄럽고 수치스러웠습니다.
저는 그런 신앙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친구들에게는 예배 시간에 떠들지 말라고, 장난치지 말라고 하고 있었던 거예요. 왜 교회를 다니냐 물으면 대답 못 하고 우물쭈물거리는, 너무나도 작고 하찮은 믿음으로 지금까지 뻔뻔하게 지내왔다는 게 하나님께 고개를 못 들 정도로 죄스러웠어요. 내가 봐도 작고 연약한 믿음밖에 없으면서 매주 빠지지 않고 교회 나온다고 하고, 분위기에 휩쓸려서 눈물을 흘렸던 게 너무 부끄러운데,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얼마나 더 안타까워하셨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고민을 하다 며칠 뒤 수요 예배 때, 어쩌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말 진심으로 온 마음을 다해 이렇게 기도를 드렸어요. “하나님, 제가 봐도 제 믿음이 너무나도 하찮고 작아 보이는데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제 믿음이 너무 하찮고 작아 보이셨죠? 너무 죄송해요. 하나님. 저의 교만함을 용서해 주세요.”라고 기도를 했더니 하나님께서 “네가 돌아와서 다행이야. 나는 네가 생각하기에 작고 하찮은 너의 그 믿음마저도, 그 마음마저도 기쁘게 받아들인단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날 저는 또 깨달았습니다. ‘아, 나는 항상 부모님에게, 친구들에게, 심지어 잘 모르는 사람에게까지도 도움을 청하고 안 되면 그때서야 겨우 하나님께 기도하는 정도였는데, 하나님은 항상 내가 먼저셨구나. 이 작고 연약한 나의 믿음마저 기쁘게 받아주시는구나. 우리가 정말 소중한 사람에 대해서는 매 순간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하나님은 매일, 매 순간 하나님께 소중한 나를 생각하고 계셨구나’라는 사실이 정말 크게 은혜가 되었고, 하나님께서 항상 목사님을 통해 말씀하시던, 내가 항상 말씀 노트에 적던 “돌아와라, 사랑하는 나의 자녀야”라는 말씀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에게 하나님이 하시던 말씀이셨구나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직도 저의 믿음은 그리 대단하지도, 칭찬받을 만하지도 않고 아직도 너무나도 연약하고 너무나도 작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그런 하찮고 작은 믿음마저도 기쁘게 받으십니다. 저는 제 이야기를 쓰는 걸 사실 굉장히 망설였습니다. 어디 가서 말하고 다닐 만한 자랑스러운 이야기도 아니고, 저의 작고 초라한 믿음이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느낀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제 스스로 다시 한번 느끼고, 또 많은 사람들과 함께 느낄 수 있도록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번 공모전을 계기로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느끼길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