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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교계뉴스 캐나다 제7회 예함 청소년 크리스천 문학상 당선작, <나눔상> 장혜나/수필- “하나뿐인 위대한 사랑” 

제7회 예함 청소년 크리스천 문학상 당선작, <나눔상> 장혜나/수필- “하나뿐인 위대한 사랑” 

제7회 예함 청소년 크리스천 문학상 당선작

<나눔상> 장혜나/수필- “하나뿐인 위대한 사랑” 

주님의 제자교회, Centennial Secondary School Gr. 9 

위대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봄이 오면 내가 누굴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듯이 아름다운 사랑이 트이는 걸까? 가족에 대한 사랑, 내 취미, 내 성취감, 또는 내가 너무 아껴서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는 물건이나 재능일까? 어렸을 때 나는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굳게 믿는다고 했으나, 나는 그 당시에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현재만큼 많이 깨우치지 못했다. 그저 밥을 먹기 전에 기도를 한다거나, 우리 가족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많다는 걸 알았을 뿐. 하나님에게 감사해라, 기도해라, 찬양해라, 사랑하라 등등 여러 가지를 많이 들었다. 왜 그래야 할까? 어렸을 때의 나는 내 자신에게 물었다. 그리고 답을 했다. “그야, 나는 크리스천이고 내 가족처럼 하나님을 믿으니까.” 그렇다. 그때의 난, 그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을 깊게 내다보거나 헤아리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나는 하나님에 대해 더 알고 싶은 호기심과 의지가 점점 생겨나기 시작했다. 확실하게 달라졌을 때는 내가 7학년이었을 때다. 나는 생에 처음으로 “코스타”라는 곳에 가게 되었고, 그때, 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마음의 울림으로 느꼈다. 그때 당시의 나는 너무나 힘들어서 절벽 끝에 매달리는 신세에 가까웠지만, 하나님은 그런 나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나를 영원한 사랑으로 감싸주시며, 나를 다시 땅에 안정되게 착지할 수 있게 하셨다. 난 무대 위에 있는 큰 십자가를 보고 울고, 나에게 상담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더 알아가게 해 준 상담사를 꽉 안으며 울었다. 나는 잠시 동안 어두운 공간에서 제대로 보지 못했다. 하지만 하나님이라는 빛이 내게 와서 나의 눈을 뜨게 해 주었다. 난 감격의 눈물인지, 드디어 진실의 빛을 찾았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모를 눈물을 흘렸고, 나의 마음은, 나의 믿음의 씨앗은, 자라나서 성장이 되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고, 난 더 이상 어제의 내가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해 많이 배우게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배운 걸 말하자면, 우리는 사실상 죄인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죄를 지니고 있던 우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거짓말, 욕망, 이기심 등등, 우리의 인생의 시험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이 지구에서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도 살고 있다. 그들 중에서 우리보다 더 부자이고, 더 잘 사는 자들도 얼마든지 있다. 다만, 그들은 자신의 재능과 권리를 높게 평가하고 자신들이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칭한다. 그렇지만 정작 그들은 틀렸다. 그들이 그렇게 대단한 재능을 가진 이유는 사실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었고, 그들이 이 지구에서 살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위대한 사랑 덕분이다. 하나님은 나무의 튼튼한 줄기와 뿌리이고 우리는 열매들과 같다. 우리가 당분을, 즉, 성취와 행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건 하나님 덕분이다. 하나님의 위대하신 사랑을 생각해 보면 정말 얼마나 대단한 건지 또 바로 알 수 있다. 우린 누군가가 큰 범죄를 저질렀다는 뉴스를 보면 우린 그 범죄자를 욕하고 한심하게 쳐다본다. “대체 왜 저런 죄를 지었을까.” “저 녀석은 인간도 아니다.”라는 말들을 하게 된다. 그럼, 만약에 하나님이 우리 같았다면 어땠을까? 성경에서 아담과 하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있다.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였으나, 그 둘은 뱀의 꼬임에 선악과를 따먹게 되었다. 이에 하나님은 분노하셨고 실망하셨다. 둘이 옷이 없어서 무화과잎들로 옷의 역할을 하자, 하나님은 둘에게 옷을 입혀 주시고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그럼 생각해 보자. 만약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자비와 용서를 주지 않았다면은 그렇다. 우리의 존재는 아예 없었을 것이다. 인간들이 순수해도 죄를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안 하나님은 우주, 지구, 심지어 우리, 인간들을 창조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굉장히 분노하셨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선택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사랑으로 보살펴 주셨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도 또한 이 말고 하나님이 주신 다른 은혜들도 많다. 우리를 사랑의 옷으로 입혀 주시고, 일용할 양식도 주시고, 오늘 하루도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게 만들어 준 은혜, 지혜, 회복, 등등 여러 가지로. 한 번은 내가 감기 기운이 심해, 여름성경학교에서 조금 힘들어했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내 마음, 밤에 기도를 하고, 목사님의 말씀을 집중해서 듣고, 찬양을 열심히 한 모습을 본 하나님이 나의 목감기를 단 거의 2일 만에 회복시켜 주셨다. 내가 5학년 때 찬양팀으로서 연습한 찬양 중에 “코람데오”라는 찬양이 있었다. 그 찬양의 가사에서 예수님을 “주무시지도 졸지도 않으시는 예수님을”이라고 표현하였고, 하나님을 “어디에서나 언제나 나를 바라보시는 분”이라고 표현한 것이 떠올랐다. 나는 그때, 하나님 덕분에 금방 나았다는 것을 깨닫고 더 열심히 하나님을 신뢰해 가기로 마음을 더 먹었다. 그럼 나와 예수님의 관계는 무엇일까? 솔직히 생각해 보면 참 많긴 하다. 시편에서는 예수님을 두려워하고, 오직 예수님만을 찬양하라, 섬기라, 가족처럼 편안하게 대해라, 사랑하라는 말들이 있었다. 내 교회에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성경에서는 그것보다 여러 가지가 더 자세하게 나왔다. 예수님을 어떻게 섬길지, 느낄지, 받아들일지, 또는 우리가 어떻게 행해야 할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예수님과 나의 관계는 “영원한 가족”이다. 다시 말하자면, 옛날에 나는 사실 예전에 하나님을 너무 몰랐던 것 같다. 지금만큼 깊은 뜻을 몰랐으니. 그래서 지금보다는 당연히 예수님과의 거리가 멀어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내 죄 때문에 희생하셨고, 내 옆에 항상 있으셨고, 내 예수님은 언제나 나에게 반대하지 않는다. 그리고 계속 몇 년 동안 기다리셨다. 그리고 7학년 때 나는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에 드디어 예수님과의 거리가 더 가까워졌다. 이 과정을 거쳐 간 난 교회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눈을 더 뜨게 된 것이다. 내가 늦게 깨달았어도 예수님은 날 꽉 안아 주시면서 받아 주셨다. 사춘기가 된 아이들은 어쩔 때는 스마트폰과 그 밖의 세상을 돌아보곤 부모와의 거리를 둔다. 인터넷에 눌러진 하트들의 수를 눈으로 보고 자신이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AI와 같은 기계로 답을 찾고. 이 스마트폰이 자신의 답을 찾는 해설지와 같은 존재로 여길 것이다. 그리고 부모에게 때로는 짜증을 팍 내고, 화를 낼 때도 있다. 하지만 부모의 사랑은 계속 남아 있었다. 이 아이가 어두운 방에서 스마트폰 속에서 나올 수 있도록 도왔고 결국 고개를 들어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깨우친다. 이와 같이, 나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의 나는 어두운 방 안에서 오직 쉬운 답만 찾으려 하고 예수님의 진실되고 뜻깊은 사랑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7학년 때, 그 방에서 문을 열고 나왔다. 사춘기 아이들은 AI가 알려주는 답들과 스마트폰을 통해 받은 하트 수와 댓글 수가 아닌 예수님을 통해 받을 수 있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언젠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교회에서 참여한 프로젝트에서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이야기”라는 찬양을 나레이션 역할로 연습한 적이 있었다. 그 찬양의 가사 중에서는 “항상 기뻐하라고, 기도하며, 감사하며 살라고” 하였다. 이 가사와 같이, 우린 이 사랑과 믿음을 가슴에 깊이 새겨둬야 한다. 이것은 정말 글로도 표현을 다 못하는, 위대한 불멸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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