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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색 셔츠 위에 피어난 가을의 기도

주황색 셔츠 위에 피어난 가을의 기도

 주황색 셔츠 위에 피어난 가을의 기도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다.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찐다’는 사자상어는 맑은 하늘과 오곡백과가 익어가는 풍요로운 가을을 뜻한다. 오늘도 원주민 마을을 방문하였다. 폴라가 의자에 앉은 채 따뜻한 가을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오른팔이 부러져 부대하고 있었지만 평온해 보였다. 카나나스키스 지역을 쭈욱 돌아보면서 아름답게 붉은빛과 노란색으로 물든 골든라치(Golden Larch view) 경치를 바라보노라면 저절로 시인의 감성을 갖게 된다. 캐나다의 아름다운 가을 풍경에 닫혔던 마음조차 움찔거리고 감동을 토한다. 

9월 30일은 캐나다의 공식 기념일이다. 즉 오렌지 셔츠 데이(Orange shirt day)라고 부른다. “모든 아이는 소중하다.”.(Every child matters) 표어가 곳곳에 걸려있고 인형이나 셔츠를 걸어 두는 곳도 눈에 띈다. 유래를 알아보자. 1973년, 여섯 살 원주민 소녀 필리스 웹스타는 할머니가 사주신 반짝이는 주황색 셔츠를 입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숙학교에 등교했다. 그러나 학교 문을 들어서는 순간 교사들은 소녀의 옷을 강제로 벗겨 빼앗았고, 고유의 언어와 이름마저 지워버렸다. 그날 이후 주황색은 소녀에게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깊은 상처의 낙인이 되었다. 16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15만 명이 넘는 원주민 아이들이 이처럼 차가운 제도 속에서 부모의 품을 떠나 자신을 잃어버려야 했다.

 3살에서 15세 나이의 모든 원주민 자녀를 부모의 동의를 얻지 않고 강제적으로 기숙사 학교에 입학시켰다. 원주민들을 훈련하겠다고 하는 서구화 정책은 이론적으로 좋았지만, 방법이 틀렸다. 엄격한 훈육과 학대로 말미암아 3천 명 이상의 아이들이 죽고 실종했다. 그 상처와 트라우마는 아직도 남아 있다. 필자가 만나는 원주민들 일부는 알코올 중독과 마약 중독으로 인하여 평범한 일상을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간다. 악순환이 이어진다. 캐나다 정부와 교황도 사과했지만 아픔은 여전하다. 

풍요를 노래하는 가을의 문턱에서 이 아픈 기억을 마주하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마음이 무겁다. 우리가 매년 추수감사절 절기에 감사의 마음을 나누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누군가의 아픔과 눈물이 고여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문득 27년이라는 긴 수감 생활의 고통을 딛고 일어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화합으로 이끈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얼굴이 떠오른다. 자신을 억압하고 차별했던 이들을 향해 복수의 칼날을 겨누는 대신, 그는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통해 용서의 손을 먼저 내밀었다. 

이 위대한 용서의 본질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 땅에 내려와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바로 그러했다. 수많은 모욕과 십자가 고통 속에서도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나이다”라며 못 박은 이들을 향해 기도하셨던 사랑과 용서. 그리고 희생은 우리들의 죄와 상처를 보듬고, 빛과 생명의 안식처로 우리를 인도해 주셨다.

이번 추수감사절의 식탁은 예년보다 조금 더 깊고 넓어졌으면 좋겠다. 단순히 풍성한 음식을 즐기는 자리를 넘어,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배려하는 만남이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 주위에 상처와 소외를 당한 이들이 있다면 내가 먼저 손 내밀고 그들을 찾아가 위로해 주는 따뜻한 마음이 우리 사회를 든든하게 만들어 갈 것이다.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는 주황색과, 용서로 빚어낸 가을의 황금빛이 어우러져 비로소 진정한 감사의 계절로 완성되기를 소원한다. 풍성한 가을에 우리의 마음에 빗장을 풀고 진정한 화합이 귀한 열매로 맺어지길 조용히 두 손을 모아본다.

이진종 <시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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