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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응답을 확인한 선교여행(2차 튀르키예&불가리아) “와서 도우라.”_Go Church 박주현 목사

기도의 응답을 확인한 선교여행(2차 튀르키예&불가리아) “와서 도우라.”

Go Church 박주현 목사

지금으로 부터 36년전 한국에서 대학 시절을 보내며 CCC 선교훈련을 받았다. 매주 “민족 복음화와 세계 복음화”를 외치며 열심히 Campus 사역을 했다. “청년이여 세계 복음화의 비젼을 품으라.” 당시 선교 구호는 한국 교회의 단기 선교의 문을 열었던 사건으로 기억한다. 항상 가슴 깊이 세계 복음화라는 부담을 가지며 결혼 이후에도 선교단체 훈련에 참여하였다.

2001년 겨울 내 인생에 최초 해외선교에 도전하게 되었고 그 첫 나라가 튀르키예였다. 당시 한국인 선교사를 따랐던 튀르키예 거짓 제자에 의해 선교사의 사역과 모든 정보가 현지 Main News에 모두 소개 되었고 한국인 선교사들은 큰 위험에 노출되었다. 그 해 겨울 현지에서는 단기팀을 받을지, 미룰지 큰 고민을 있었고 조심스럽게 방문을 승인했다.

우리팀은 24명의 팀으로 터키 모든 지역으로 나눠졌고 나와 일부팀은 앙카라, 요즈갓, 카이세리, 니데를 방문하였다. 한 겨울 폭설과 추위를 견디며 때로는 현지인 집을 방문하였고 식탁교제와 숙박을 통하여 복음을 나누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현지인들에게 더 큰 사랑과 환대를 받았다. 도시을 방문하며 매우 특별한 만남을 기억한다. 

70대 고령의 두 할아버지는 청년시절 한국전쟁에 참전하였고 당시 흑백사진과 훈장을 보여주시며 아리랑을 친히 불러주셨다. 내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3주의 튀르키예 단기선교는 세계 선교의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하나님께서는 튀르키예를 향한 선교의 비젼을 주셨고 한 가정으로 나가 튀르키예를 섬기기 보다 한국, 캐나다, 미국 교회들을 동원하여 튀르키예를 섬길 것을 요청하셨다.

나는 선교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요즈갓, 카이세리, 니데의 세개 주를 위해 매우 오랫동안 기도하며 현지인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세워지길 소망했다. 오랜 시간 중보기도를 하며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시고 계실까?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까?”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2024년 튀르키예에 약 50명의 선교사들이 추방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더 이상 선교를 미룰 수 없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제는 너의 차례야.” 마치 400m 릴레이 선수의 주자의 바턴이 나에게 주어졌다는 믿음이 시작되었다.

24년 동안의 기다림을 멈추고 2025년 7월 드디어 튀르키예 아웃리치와 불가리아 고아원영어 캠프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올해 6월14일부터 30일 제2차 튀르키예, 불가리아 선교를 지속하게 하셨고 하나님의 돌보심과 동역자분들의 기도와 후원으로 잘 마치고 무사히 돌아오게 되었다.

우리 팀은 튀르키에 이스탄불에 Kadıköy Protestan Kilisesi(현지교회)를 방문하였고 김 선교사님의 지도하에 튀르키예에 관한 전반적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선교의 역사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현재 직면한 선교적인 도전들, 선교사의 현황, 현지 크리스챤 리더들과 그리스도인들의 변화, 다양한 이민자들의 현황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특히 주변 나라들의 전쟁으로 인해 많은 난민들의 유입으로 경제적은 어려움과 물가 상승, 정부의 체류자 강화로 인해 합법적인 체류 신분을 얻는 길이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팀은 현지 교회에 필요에 따라 교회 전반의 페인팅 작업을 현지인 그리스도인과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도왔고 새롭게 단장된 깨끗한 처소에서 주일 예배를 현지인들과 함께 예배하며 서로격려하였다.

김 선교사님의 추천으로 다음 날 우리는 매우 특별한 기관을 방문하였다. 이 기관을 통해 우리 팀은 튀르키예 각 주마다 교회 및 현지인들이 성경(복음)에 대한 관심을 알 수 있는 센터였다. 현지인들이 온 라인을 통하여 성경을 요청하면 각 주마다 교회의 위치와 성경 그리고 간단한 전도지를 포장하여 모든 지역에 무료로 보내주는 귀한 장소였다. 우리 팀은 약 4시간 정도 성경과 전도지 그리고 책자를 포장하고 센터를 청소하며 사역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었다. 

나는 현지인 목사님께 세 곳의 교회 사항을 물었다. 25년전 단기로 방문했던 지역에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세워졌는지? 현지 목회자분이 말씀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늘 기도했던 요즈갓은 현재 젊은 자매가 아주 작은 소그룹 성경공부팀을 만들어 교회를 세우기 위해 준비중이다. 

카이세리는 독립된 교회가 존재하며 현재 니데지역에 교회개척팀을 주기적으로 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드디어 그토록 기다렸던 소식을 듣게 되었고 마음 깊이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께 드렸다. 이제 다음 선교팀이 해야 할 일을 하나님께서는 알려 주셨다. “함께 와서 그들을 도우라.”는 것이다. 우리 팀은 청년, 청소년을 위해 반드시 방문하고 싶었던 지역이 갑바도기아와 지하도시였다.

초기 교부시대 동방 기독교의 유적들, 수 많은 교회와 수도원 그리고 데린쿠유(Derinkuyu) 지하도시는 로마제국과 이슬람의 통치기간 중 박해받은 초기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발견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에 믿음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원했다. 우리는 1박 2일의 짧은 일정 이었지만 다양한 지역을 방문하였고 베드로후서를 다시 묵상하며 선진들의 믿음이 유산을 다음 세대에 잘 전달할 것에 대한 다짐을 하였다.

그 이후 26년 이스탄불에서 전문인 선교를 감당하고 계시는 선교사님의 사역에 잠깐 동참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란에서 여러 이유로 튀르키예 난민으로 입국하여 미국과 캐나다 또는 유럽으로 이주하기 위해 정부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공동체였다. 이란 그리스도인 가정교회들은 이들을 1주일 또는 1개월 이상 자신의 집을 개방하여 온 마음을 다해 그들을 섬기고 정착을 돕는다. 무슬림이었던 이란 형제들은 예수님을 믿고 미국과 캐나다로 이주하여 그들이 다시 선교사와 뜻을 합하여 이란 난민 형제들과 교회를 섬기는 아름다운 사역을 감당하고 있었다. 체류 환경의 변화와 비자정책의 변화로 많은 선교사들이 철수하고 추방되는 일들이 많아 지고 있었다.

우리 팀은 튀르키예 방문을 마치고 불가리아에 고아원으로 이동하였다. 현지 고아원과 학교사정으로 인해 하루만 방문하게 되었다. 이스탄불 심야 버스로 이용하여 소피아까지 약 11시간이 소요되었고 곧바로 자동차를 랜트하여 소피아에서 고아원으로 이동하였다.

공시적으로 기독교적인 내용을 가르칠 수 없었고 그 이유는 다양한 종교를 가진 아이들이 모여 있고 공립 초,중 학교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단지 그들을 사랑하라.”라는 감동을 주셨다. 2025년 첫 방문을 시작되었고 올해 우리 팀에게 교감

선생님과 선생님들이 말씀하셨다. “당신들이 우리 아이들의 마음 깊은 곳을 만져주었다.고맙습니다.” 우리 팀은 2시간의 짧은 만남을 가지고 돌아와야 했다. 준비한 선물들을 나누며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며 소피아로 돌아왔다. 한의사로 참여하였던 교회 사역자는 튀르키예 현지인들과 많은 현기 한인 선교사들 부부, 그리고 고아원에 교직원들을 치료하며 더 깊은 신뢰 관계를 형성하였다. 자신의 몸을 돌아보지 않고 사역하는 많은 현지선교사님들과 특별하 사모님들의 돌봄에 큰 위로와 격려의 시간이 되었다.

튀르키예와 불가리아 선교를 마무리 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은한국과 캐나다나 미국에 많은 교회들과 목회자들이 그 곳 선교사들을 위해 함께 길을 걸었으면 한다. 교회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함께 친구가 되어 하나님 나라 확장의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마지막 시대을 준비하는 동역이 되길 기대한다. 2027년 튀르키예과 불가리아 선교가 계속되어지길 기대하며 교회와 목회자들, 성도들을 관심과 참여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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