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삭개오(2)
눅 19:8,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삭개오의 이 결단은 위대한 회개의 결단이다.
삭개오 본문(19:1-10)은 가까이는 부자 관리 본문(18:18-30)과 대조되고, 멀리는 세례 요한 본문(3:7-14)과 연결된다.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부자 관리 본문에서, 그 관리가 “큰 부자”(18:23)인 것처럼, 삭개오도 “부자”(19:2)이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서로 대조된다.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18:22)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부자 관리는 심히 근심한다. 그러나 삭개오는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라고 결단한다. 부자 관리는 심히 근심한 데 반하여 부자 삭개오는 결단한 것이다. 두 본문의 공통점은 부자가 영생과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그 소유를 가난한 자들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세례 요한 본문에서, 세례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3:8)를 맺으라고 촉구하면서, ‘옷 두 벌 있는 자가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주고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하라’는 것은 ‘자기 소유의 옷이나 먹을 것의 절반을 그것이 없는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삭개오가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고 결단한 고백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또한 세례 요한이 세리들과 군병들에게 한 촉구,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고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는 것은, 삭개오가 예수님 앞에서 한 결단,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배를 갚겠나이다’와 일맥상통한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의 촉구 가운데 ‘거짓으로 고발하다’와 삭개오의 결단 가운데 ‘속여 빼앗다’로 번역된 단어가 모두 ‘쉬코판테오’로 같고, 또한 세례 요한의 촉구와 삭개오의 결단 모두 ‘거짓으로 빼앗지 말라(않겠다)’로 같기 때문이다. 다만 삭개오는 (앞으로 속여 빼앗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전에 속여 빼앗은 것은 네 배를 갚겠다고 결단함으로써 세례 요한이 촉구한 내용을 강화한다.
요컨대 세례 요한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촉구한 구체적인 내용을 강화하여 실천하겠다고 삭개오는 결단한 것이다. 그럼 어떻게 이 두 본문의 연관성이 이처럼 뚜렷하게 나타날 수 있는가? 그것은 삭개오가 세례 요한이 한 말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삭개오가 거주한 여리고(19:1-2)는 요한이 세례를 베풀던 요단강(3:3)과 가깝다.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눅 7:29)라는 누가의 기록을 고려하면, 삭개오 역시 요한의 세례를 받았을 것이고 그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촉구하는 세례 요한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는 세례 요한의 말대로 실천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세례 요한의 말을 오히려 더 철저하게 실천하겠다고 결단한 것이다.
따라서 세례 요한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촉구하면서 구체적으로 제시한 내용과 함께 고려하면 삭개오가 결단한 내용은 바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겠다는 것이다. 반대로 부자 관리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겠다고 결단하지 못한 채 심히 근심하는 것이다. 이처럼 삭개오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겠다고 결단한 부자로서, 그렇게 결단하지 못하고 심히 근심하는 부자 관리와 대조된다. 삭개오처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겠다고 결단하는 부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고, 부자 관리처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겠다고 결단하지 못한 채 심히 근심하는 부자는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