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놓아 주소서”
총독 빌라도 앞에서 무리가 일제히 예수님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소리 질렀다(눅 23:18). 그럼 이 무리는 어떤 자들이었는가? 마가복음에 의하면 그들은 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로마 총독이 죄수 한 사람을 석방시켜 주는 전례를 따라,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 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바라바의 석방을 요구하기 위해 모인 자들이었다(막 15:6-8).
이 무리는 열심당의 노선에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군사적 메시아로서의 ‘유대인의 왕’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빌라도가 예수님을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신이 예수님을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지 이 무리에게 물었을 때, 이 무리가 해야 할 정직한 대답은, “예수님은 군사적 메시아로서의 ‘유대인의 왕’이 아니며, 따라서 예수님은 무죄 석방되어야 한다.”라는 것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이 무리는 그렇게 대답하지 않고 예수님을 처형하라고 요구했다. 왜 그랬을까?
예수님이 석방되면 자기들이 지지하는 바라바가 처형당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무리는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무죄한 사람을 죽이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무리는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무장투쟁을 통해 유대 민족이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이 무리에게는 절대적인 가치였기 때문에, 그들은 이 절대적 가치를 위해서는 죄 없는 한 사람쯤은 죽여도 좋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그들은 공회를 구성하고 있던 대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들과 똑같았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공회에서 그들의 땅(성전)과 민족을 로마인들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한 사람이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논의하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했다(요 11:47-53).
이처럼 저항 세력이던 열심당이나 유대의 지배 세력이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모두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목적을 위해 무죄한 예수님을 죽이고 만 것이다. 그들의 이런 사악한 생각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그럼 오늘날 사회와 직장은 물론이고 교회와 기독교 단체 안에서 이런 일은 없는가? 그 구성원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위해, 죄 없는 사람을 억울하게 희생양으로 만들어 오지는 않았는가? 그렇다면 그런 짓을 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자들과 똑같은 자들인 것이다.
누가 예수님을 죽였는가? 대제사장과 로마 총독과 무리가 예수님을 죽였다. 오늘날 누가 예수님을 죽이고 있는가? 혹시 우리 자신이 예수님을 죽이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자신이 생각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짓을 한 적은 없는지 성찰해 보자. 그리고 사회와 직장, 교회와 기독교 단체 안에서 더 이상 그 구성원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위해 죄 없는 사람을 억울하게 희생양으로 만드는 일은 사라질 수 있도록 기도하고 노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