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
누가복음의 뒷부분에 나타나는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눅 24:47)는 누가복음의 앞부분에서 세례 요한의 핵심 사역으로도 나타난다(눅 3:3). 따라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는 누가복음의 앞부분과 뒷부분에 등장하여 누가복음 전체를 봉투처럼 감싸고 있다(인클루지오 구조). 또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는 그 의미를 풀어서 쓴 형태로 사도행전 역시 앞부분과 뒷부분에 등장하여 사도행전 전체를 봉투처럼 감싸고 있다(행 2:38; 행 26:20). 요컨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는 누가-행전 전체를 봉투처럼 감싸고 있을 뿐만 아니라,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각각 봉투처럼 감싸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행전에서 중요한 특징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회개에 합당한 열매”(세례 요한, 눅 3:8) 또는 “회개에 합당한 일”(사도 바울, 행 26:20)과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 또는 일’은 바로 ‘경제적 균등의 실천’ 곧 ‘희년 정신의 실천’을 뜻한다는 사실이다. 그럼 이것을 자세히 살펴보자.
첫째, 세례 요한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를 위해 세례를 베풀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촉구했다. 그런데 그것은 구체적으로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눅 3:11)에서 잘 알 수 있듯이, 바로 경제적 균등의 실천이었다.
둘째, 사도 베드로는 성령님이 강림하신 날 아침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행 2:38)라고 역설하자 그 말을 받은 새 신도들이 그 수가 삼천이나 더하게 되었는데, 그들은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도의 가르침”(행 2:42)을 받아 “교제”(코이노니아, 행 2:42)를 힘썼다. 그런데 이 ‘교제’는 물질의 통용을 핵심으로 한다(행 2:44-45). 땅들과 집들이 있는 사람들이 그것들을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으로써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게 된 것이다(행 4:32-35).
셋째, 사도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신이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전한 메시지는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행 26:20)였다고 말했다. 여기서 “회개에 합당한 일” 가운데 중요한 것은 바로 경제적 균등의 실천이었다. 바울은 극심한 빈곤 상황에 처해 있던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고린도 교회에 연보를 요청하면서 구약의 만나 본문을 근거로 삼아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했던 만나처럼 지금 넉넉한 사람들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연보함으로써 서로 경제적 차원에서 균등하게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후 8:13-15). 그런데 바울이 말한 경제적 균등의 실천은 바로 코이노니아였다.
요컨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는 누가-행전 전체를 봉투처럼 감싸고 있을 뿐만 아니라,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각각 봉투처럼 감싸고 있다. 그런데 누가-행전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일)와 결합되어 있다. 그리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일)의 주요 내용에는 바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경제적 균등의 실천 곧 코이노니아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토지평등권을 기본으로 삼는 희년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회개한 그리스도인이라면 회개에 합당하게 희년의 토지평등권 개혁을 위해 노력해야 마땅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