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년 이야기] 희년의 예언자, 예레미야(6)
희년 실천은 구국의 길이었고, 반대로 희년 철회는 망국의 길이었다. 이 주제를 자세히 살펴보자.
제7년해방법에 의하면, 제7년에 히브리 노비를 해방할 때 그를 빈손으로 가게 하지 말고 그에게 양과 곡식과 포도주 등을 후히 주어야 한다(신 15:12-18). 그리고 희년해방법에 의하면, 희년에 히브리 노비를 해방할 때 그에게 기업 토지를 되돌려 주어야 한다(레 25:10). 곧 희년법에 의하면, 자유를 선포하면서 동시에 기업 토지를 회복시켜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레미야 34장에는 이렇게 했다는 명시적 기록이 없다. 아마도 히브리 노비들에게 자유만 선포하고, 양과 곡식과 포도주도 주지 않았을 것이며, 그 노비들의 기업 토지도 회복시켜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 노비들은 비록 정치적으로는 자유롭게 되었지만, 경제적으로는 결코 자유롭게 되지 못해서, 생계유지에 큰 곤란을 겪었을 것이며, 자기 방어에도 취약해져서, 얼마 후에 자신들을 해방해 준 자들이 다시 자신들을 끌어다가 노비로 삼으려고 할 때 그것에 저항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 시드기야 왕을 비롯하여 권력자들이 노비를 자유롭게 해 준 후에 다시 그들을 끌어다가 노비로 삼은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경제적인 이유였을 것이다. 시드기야 왕과 권력자들이 대지주들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이 노비를 자유롭게 해 준 후에 다시 끌어다가 노비로 삼은 이유는 ‘노비 노동에 의해서만 운영될 수 있는 대토지 소유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원래 율법의 희년토지회복법에 의하면 대토지 소유제가 불가능했으나, 이사야 예언자의 비판처럼 유다의 지도층들은 율법에 어긋나는 불의한 법령을 만들어서(사 10:1) 대토지 소유를 합법화하고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사 5:8)이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시드기야 왕과 권력자들은 대지주로서 이미 희년 토지법을 어긴 자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맺은 계약을 파기하고 해방한 히브리 노비를 다시 끌어다가 노비로 삼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희년 토지법을 어긴 채 불법적으로 소유하고 있던 대토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히브리 노비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렘 34:12-22에 의하면, 하나님 앞에서 맺은 계약을 깨고 해방된 히브리 노비들을 끌어다가 다시 노비로 삼은 자들이 심판을 받고 예루살렘이 바빌로니아 군대에게 파괴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를 통해 그들에게 대언된다. 여기서 히브리 노비들의 마음에 주목해 보면 좋겠다. 그들 모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엄한 존재답게 자유인으로 살아가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가난과 빚 때문에 권력자들의 노비가 되어 고통 가운데 살다가 바빌로니아 군대를 피해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와 있었을 것이다. 그러던 중 노비 해방을 받았을 때 얼마나 기뻤을까? 특히 가족을 떠나 노비로 팔려간 사람은 다시 그리운 고향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격했을 것이다. 동시에 해방 노비들은 앞으로 생계를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 고민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가문의 기업인 토지를 되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약 이스라엘은 토지가 없으면 생계를 자립적으로 유지할 수 없는 사회였다. 이와 같이 해방의 감격과 생계의 고민이 그들의 마음속에서 교차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얼마 후, 해방 노비들이 옛 주인들인 권력자들에게 끌려가 다시 노비가 되었을 때, 그들은 깊은 절망에 빠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들의 마음속에서, 또는 혼잣말로 “망할 세상! 이놈의 나라, 망해 버려라!”는 탄식과 저주가 저절로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 탄식과 저주대로 남 왕국 유다는 얼마 후에 멸망하고 말았다.
이처럼 오늘날에도 우리나라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입에서 이런 탄식과 저주가 나오게 되면, 그것으로 이 나라는 끝날 수 있다. 왜냐하면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공의로 통치하시며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회 불의에 의해 겪는 억울한 일을 주목하여 살피시고 그 상처 받은 마음을 중히 여기시며, 그들을 그 악한 나라에서 해방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과 입에서 탄식과 저주가 나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공의를 행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빈곤의 구조악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동시에 자비를 실천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것이 우리나라가 망하지 않는 길이요, 그것이 우리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재난으로부터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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