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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동네목사개척이야기] 알면서도 그랬다면

알면서도 그랬다면

밤 10시가 되면 부엌을 어슬렁거리다가 냉장고 또는 아이들 간식이 있는 수납장을 열게 된다. 과자 한봉지를 개봉하게 되고 한봉지가 비워갈 즈음 후회가 밀려온다. 뜯지 말 걸~~ 먹지 말 걸~
자녀에게 갑자기 큰 소리와 화를 내는 것이 아이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고 후회가 되는 일이란 걸 알고는 있지만 소리를 지르게 된다. 후회할 걸 알면서도 그런 일을 또 하다가 한숨을 내쉰다.
그런가하면 해야할 일을 미루다가 나중에 힘들어 할 걸 뻔히 알면서도 마지막까지 미루기도한다.
‘과이불개’라는 말은 2022년 올해의 사자성어가 되기도 했다. ‘과이불개’의 뜻은 잘못하고서 고치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는 뜻이다.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나를 돌아보게 하는 말이다.

이런 후회의 이유 중에는 감정과 본능이 먼저 움직여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본능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은 결국 후회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렇게 하고야 마는 상황을 반복하고 있는걸까?

사실 반복되는 후회 속에는 시그널이 쌓여 가고 있다. 정서적인 면에서, 생활 패턴에 대해서, 사고하는 방식에 대한, 때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다시 말해 우리의 과거와 현실에서 반복적인 후회가 있다면 여기에는 분명한 시그널이 있는 것이다. 경영하던 사업장이 망하고, 소규모 점포를 문닫게 되었다면 순식간에 망한 듯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오랫동안 좋지 않은 시그널이 쌓여가고 있었을 것이다.

후회할 걸 알면서도 그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면 주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알면서 적절한 조치와 행동을 미룬 마음 상태는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회피의 마음이다. 정확하게 들여다보고 싶지도 않고, 그냥 잘 되거나 어떻게 되거나, 되길 바라면서 도망쳐 버리는 것이다. 잘못된 선택을 하는 사람들, 문제를 회피하고 어떻게든 되겠지 하다 보면 반복되는 패턴이 삶의 방향이 되어 운명처럼 체념하기도 한다. 이렇게 되는 것이 ‘내 팔자’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때문에 ‘나중에, 어떻게든 되겠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후회될만한 일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나는 다르다고 손절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 없다. 다니엘서 5장에 등장하는 “이것을 다 알고도”(단 5:22)라는 말은 무서운 구절이다. 벨사살 자신이 보았던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을 희롱하는 것이 아주 잘못된 일인 것을 알았지만 그에게서 조금이라도 수정된 태도를 찾을 수 없다. 벨사살은 자신이 예측할 수 없는 시간과 장소에서 그는 하나님의 저울 위에 올라야 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그 일을 뒤로 미루어서는 안된다. 구체적으로 알수는 없더라고 후회될 것 같은 시그널이 떠오를 때에, 내가 다 감지할 수 없었던 영역이지만 탐욕, 죄악, 불만, 미움, 쾌락, 불의를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이렇게 자신을 돌아볼 때 한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께 마땅히 돌려야 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는걸까? 죄라는 것을 알고도 모른척하는 것은 아닐까?
예를 든다면 탐욕이라는 죄에 대해 알고 있지만, 자신을 만족시킬 물건을 쇼핑하느라 너무나 많은 시간과 자원을 쓰고 있지는 않은걸까?
하나님이 정직과 진리를 중요하게 여기시는지 알고 있지만 가까운 사람들과 만나면 무분별한 험담과 허세가 일어나는 건 아닐까? 회사와 사업장에서 거짓과 부정직한 관행이 있지는 않은가? 이 시대에는 간음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잘 알지만 결혼 생활이 간음으로 상처받고 깨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유혹이 있을 때 분위기와 감정을 생각없이 방치해서는 안된다. 알고는 지만 회피하고 싶은 순간은, 묻지도 따지고 싶지도 않은 은근슬쩍 넘어가고 싶은 순간이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어느 한 날 나의 영적 무게를 잴 것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우리 영혼의 무게 중에 후회되는 탐욕, 죄악, 불만, 미움, 쾌락, 불의를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후회할 것 알고도 잘못된 선택인걸 알았었는데 마냥 내일로 미루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시간과 장소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날과 시간은 우리가 정할 수 없다. 받아들여야 하는 신적 영역이기 때문이다.

운동선수들은 시합을 앞두고 계체량을 통과하는 것이 가장 고통스럽다고 한다. 격투기선수 김동현은 시합을 앞두고 5일 만에 총 12-13kg을 뺀적이 있는데 짧은 시간에 몸무게를 빼야 하기에 너무나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그렇지만 계체량을 맞추지 못하면 어렵게 성사된 시합을 나갈 수 없기에 체중 감량이 극한의 고통일지라도 감내해야 한다. 어느 선수는 나중에는 500g을 더 못 빼서 경기에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에 머리카락을 자르기도 하고, 속옷까지 벗고 저울에 올라간다고 한다. 이처럼 계체량 저울은 합격과 불합격을 정확히 가려주는 잣대와 기준이기 때문이다.

운동선수들이 땀복을 입고 사우나에서 체중을 빼듯, 그리스도인들도 죄악의 요소들을 과감하게 밖으로 빼내야 한다. 여기서 중한 포인트는 세상의 저울에 실격되면 다음에 또 다른 기회가 있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단 한 번의 무게만 잰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알면서도, 알았으면서도 미룰 수는 없다.

때문에 오늘이라는 시간은 은혜의 기회이다, 아직 잘못으로부터 돌아설 기회가 남아 있는 것이다. 이 기회를 내일로 미룬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무언가를 돌이킬 수 있는 오늘이라는 기회가 찾아왔다. 지금 이 순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돌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이것을 알고도 흘려보낸다면 지금 이 순간의 은혜의 기회를 영영 놓쳐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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