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요한의 순교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
마가는 세례 요한의 죽음을 예수님의 주권(Lordship)에 관한 사람들의 반응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고향에 방문하셨을 때 부정적인 반응을 직면하셨고(막 6:1-6a), 열두 제자들을 전도 여행에 파송하시면서도 사람들의 부정적인 반응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말씀하셨습니다(막 6:6b-13). 또한 마가는 회개의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의 전도와 예수님의 명성이 세례 요한의 순교와 어떠한 연결 고리가 있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막 6:14) 그리고 헤롯 왕이 듣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예수)의 이름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때 사람들이 “세례 요한이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살아났으며, 이 때문에 능력들이 그(예수) 안에서 활동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15)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는 엘리야다”라고 말하였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는] 선지자 중에 하나와 같은 선지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16) 그러나 헤롯은 듣고 나서 말했습니다. “내가 목을 벤 요한, 그가 일으킴을 받았다.” (Translated by YG Kim)
아직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파송하신 전도 여행이 끝나지 않은 상황 가운데에서 마가는 헤롯이 무엇인가를 듣게 되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막 6:14a). 헤롯이 무엇을 들었는지 우리가 추론해 보면, 예수님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자(막 6:14b) 예수님께서 파송하신 제자들이 선포하는 회개의 복음이 헤롯에게까지 들렸던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을 죽인 헤롯은 누구입니까?
헤롯(Herod)은 헤롯 대왕(Herod the Great: BC 37-4년 재위)의 아들 중의 하나로 갈릴리 지역과 페레아 지역을 다스리고 있었던 헤롯 안티파스(Herod Antipas: BC 4-AD39년 재위)를 지칭합니다.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 BC 31-AD 14 재위)는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을 유대(Judea)와 갈릴리(Galilee) 그리고 페레아(Perea)지역으로 세 등분을 나누어서 통치하였는데, 아우구스투스는 헤롯 안티파스를 갈릴리와 페레아 지역을 다스리는 분봉왕(tetrarch)으로 세웠습니다(마 14:1; 눅9:7).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헤롯 안티파스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다고 말하였을 때(눅 13:31) 예수님께서 헤롯 안티파스를 ‘여우’(fox)라고 비유하시는 것을 생각해 보면(눅 13:32), 헤롯 안티파스는 속임수를 쓰는 교활한 사람으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심문을 당하시고, 빌라도가 당시 갈릴리 지역의 로마의 분봉왕 헤롯에게 예수님을 보내게 되는데 이 인물이 바로 헤롯 안티파스입니다.
헤롯 안티파스는 자신의 형제인 빌립(Philip)의 아내 헤로디아(Herodias)와 결혼을 하여서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헤로디아의 아버지는 헤롯 보에투스(Herod Boethus)로 헤롯 대왕과 마리암 2세(Mariamne II)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헤로디아는 빌립과 결혼하여서 살로메(Salome)를 낳았습니다(Antiquities of the Jews 18.5.4 §§130).
요세푸스가 기록한 유대 고대사(Antiquities of the Jews) 제 18권 5-6장을 보면 헤로디아는 정치적 야망이 강한 여성으로 자신의 두 번째 남편인 헤롯 안티파스가 왕위를 지속할 수 있도록 로마 황제 칼리굴라(Caligula: ad 37-41년 재위)에게 청탁하였지만, 로마를 향한 정치적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헤롯 아그립바 1세(Herod Agrippa I)의 고발로 인하여 헤롯 안티파스와 헤로디아는 골(Gaul)지방의 도시 루그두눔 콤베나룸(Lugdunum Convenarum: 현 프랑스 남서부 지역)으로 유배를 당하였습니다.
헤롯 안티파스가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었을 때 그는 자신이 죽인 세례 요한에 관하여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허영심과 왕에 대한 욕망이 많았던 헤롯 안티파스는 자신이 목을 벤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나서 그의 능력이 예수님 안에서 나타난다고 생각하였습니다(막 6:14c).
이러한 오해는 헤롯 안티파스가 세례 요한을 구약 성경에서 죽지 않고 하늘에 올라간 엘리야(왕하 2:1-11)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말라기 4:5-6절의 말씀을 보면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하나님께서 선지자 엘리야를 다시 보내시겠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당시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다시 보내신 선지자로 여겼습니다(마 21:46; 막 6:4; 21:46; 눅 7:16). 따라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과 이적들과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가르침을 들은 헤롯 안티파스는 엘리야가 세례 요한으로 다시 태어났고, 자신이 죽인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몸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하였습니다(막 6:16).
마가는 헤롯 안티파스의 이러한 오해를 통하여 나타나는 세례 요한의 죽음에 관한 하나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막 6:17) 왜냐하면 그의 형제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에 헤롯 자신이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그를 감옥에 묶어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헤롯)는 그녀(헤로디아)와 결혼했습니다. (18) 왜냐하면 요한이 헤롯에게 “당신이 당신의 형제의 아내를 소유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19) 그러자 헤로디아가 그(요한)에게 원한을 품고 그(요한)를 죽이기를 원했으나 할 수 없었습니다. (20) 왜냐하면 헤롯은 요한을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그(요한)는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요한)를 보호하였고, 그(요한)의 [말을] 들을 때마다 많은 것에 당황했지만, 기꺼이 그(요한)의 [말을] 들었습니다. (Translated by YG Kim)
세례 요한은 헤롯 안티파스와 헤로디아의 결혼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레위기의 율법을 근거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18:16절과 20:21절의 내용을 근거해 보면, 형제의 아내와 결혼을 하는 것은 율법을 범하는 행동입니다. 일반적으로 남자가 다른 남자의 아내와 간통하면 둘 다 사형에 처해집니다(레 20:10). 그러나 가족 중에서 고모, 이모, 숙모, 형수, 또는 제수와 동침을 하면 사형에 처해지지 않고 그 자손이 끊기게 됩니다(레 20:20-21). 그 이유는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는 것이 당시 최고의 수치였으므로, 그가 속한 가정이 사형을 받는 것과 동일한 형벌입니다. 따라서 세례 요한은 헤롯 안티파스가 나바티아 왕(Nabatean King) 아레타스 4세(Aretas IV BC 9-AD 40년 재위)의 딸과 결혼했지만 그의 이복 형제인 빌립의 아내와 사랑에 빠져 재혼한 사건(Antiquities of the Jews 18.5.1 §§109-113)을 합당치 않은 일이라고 책망하고 있습니다(막 6:18).
헤로디아는 세례 요한의 책망으로 인하여 그에게 원한을 품어 죽이려고 하였지만, 자신의 남편이 된 헤롯 안티파스는 세례 요한을 두려워하고 있었기에 죽이지 못했습니다.
특별히 우리는 헤롯 안티파스의 세례 요한에 관한 평가에 주목해야 합니다. 헤롯 안티파스는 세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righteous and holy man)으로 평가하고 있었습니다(막 6:20a). 따라서 헤롯 안티파스는 세례 요한을 두려워했고, 그의 말을 기꺼이 들으면서 보호해 주었습니다(막 6:20).
마가는 헤로디아의 입장에서 ‘시기 적절한 날’이 왔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바로 헤롯 아그립바의 생일 잔치입니다. 헤로디아는 자신의 남편의 생일 날에 자신의 딸 살로메(Salome)를 이용해서 세례 요한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며 실행하였습니다.
(막 6:21) 그런데 시기 적절한 날이 왔습니다. 헤롯이 자신의 생일에 갈릴리 귀족들과 천부장들과 그(헤롯)의 고관들에게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22) 그리고 그의 딸 헤로디아가 들어와서 춤을 추었을 때 헤롯과 함께 앉아 있었던 사람들을 기쁘게 하였습니다. 왕은 그 소녀에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나에게 구하라. 내가 너에게 줄 것이다.” (23) 그리고 그(헤롯)는 굳게 소녀에게 맹세했습니다. “네가 나에게 청하는 무엇이든지 나의 나라의 절반에 이르기까지 나는 너에게 주겠다. (24) 그리고 [소녀는] 밖으로 나가서 소녀의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청할까요?” 그리고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머리를 [청해라]” (25) 그리고 소녀는 곧바로 서둘러서 왕에게 들어가서 “세례 요한의 머리를 쟁반 위에 [놓아] 나에게 즉시 주십시오”라고 요청하며 말했습니다. (26) 그러자 왕은 매우 슬퍼하게 되었으나, [자신의] 맹세와 [연회에] 앉은 자들 때문에 소녀를 무시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27) 그리고 왕은 즉시 사형을 집행하는 자를 보내어 그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가서 감옥 안에서 그(세례 요한)의 목을 베었습니다. (28) 그리고 그의 머리를 쟁반 위에 가져왔고, 그리고 소녀에게 그것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소녀는 그것을 자신의 어머니에게 주었습니다. (29) 그리고 그(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들은 후에 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거두어서 무덤 안에 놓았습니다. (Translated by YG Kim)
먼저 우리는 마가가 헤로디아의 딸의 이름을 ‘살로메’로 언급하지 않고 그녀의 어머니 ‘헤로디아’로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가지게 되는데(막 6:22), 이것은 단순히 마가의 실수라기 보다(Robert A. Guelich, Mark 1-8:26, 2015, p. 332) 당시에 아버지의 이름을 대신 아들의 이름으로 사용하는 것처럼, 어머니의 이름을 대신 딸의 이름으로 사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의 춤은 생일을 맞이한 자신의 의붓 아버지 헤롯 안티파스와 연회에 초청된 사람들을 기쁘게 하였습니다. 따라서 헤롯 안티파스는 살로메에게 자신의 땅의 절반이라도 주겠다는 파격적인 제한을 합니다(막 6:23). 이러한 모습을 통하여 우리는 헤롯 안티파스가 얼마나 감정적으로 갈릴리 지역과 페레아 지역을 다스렸는지 알게 됩니다. 파격적인 제한을 들은 살로메는 자신의 어머니 헤로디아에게 말하였고, 헤로디아는 살로메에게 세례 요한의 머리를 요구합니다(막 6:24).
살로메의 요청으로 헤롯 안티파스는 크게 당황하여서 슬퍼하였는데, 자신의 말과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 사형을 집행하는 자를 불러서 세례 요한의 목을 잘라 오라고 명령합니다.
1세기 당시 로마 사회에서 목을 베어 죽이는 참수형(decapitation)은 로마 시민권자들에게는 단번에 목이 베어 죽는 명예로운 죽음으로도 간주되었지만(Seneca, De Ira, 3.18.2), 중범죄 자들이나 반역죄와 군법 위반을 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끔찍한 형벌이었습니다.
따라서 헤롯 안티파스의 생일에 자신의 두 번째 아내 헤로디아의 음모는 헤롯이 얼마나 무능한 왕이었는지를 보여 주는 단편적인 예시입니다.
마가는 세례 요한의 죽음을 알게 된 그의 제자들이 세례 요한의 시체를 거두어서 장례를 치렀다고 언급합니다(막 6: 29).
마가는 세례 요한의 순교를 열두 제자들이 예수님께 선교 보고를 하기 바로 직전에 삽입함으로 회개의 복음에 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회개의 복음을 헤롯 안티파스와 헤로디아가 들었을 때 그들은 복음을 오해하고 원한을 품어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회개의 복음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복음으로 삶이 변화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헤롯 안티파스가 보여 준 반응은 세례 요한이 전해준 복음을 거부하는 행동으로 복음을 듣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과 같은 모습입니다(막 4:19).
<함께 나누기>
- 세례 요한을 죽인 헤롯 안티파스를 예수님께서 ‘여우’라고 비유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헤롯 안티파스가 다스리고 있었던 지역은 어디입니까?
- 헤롯 안티파스는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습니까?
- 세례 요한이 헤롯 안티파스의 재혼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레위기의 말씀을 근거해서 설명해 보십시오.
- 헤롯 안티파스는 세례 요한을 어떻게 평가하였습니까? 세례 요한이 복음을 전한 말씀을 기억하면서 적용해 보십시오.
- 살로메는 헤롯 안티파스의 생일에서 춤을 추고 자신의 어머니와 상의해서 세례 요한의 머리를 요구합니다. 1세기 당시 참수형은 어떠한 경우에 가능했고, 세례 요한의 죽음은 어떠한 모습입니까?
- 마가가 세례 요한의 순교를 예수님께서 보내신 선교 여행의 보고를 받기 바로 전에 기록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복음에 빚진 자 김윤규 목사 (토론토 쉴만한물가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