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긍휼하심에서 시작된 오병이어의 기적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세 가지 부정적인 반응(막 6:1-6a; 6b-13; 14-29)을 언급한 마가는 예수님께서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막 6:30-44)을 베푸시는 것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는 첫 번째 여행(막 4:35-6:44)을 마무리합니다.
마가복음 6장 30-34절은 예수님께서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사건의 배경이 됩니다. 예수님에 의해 전도 여행에 파송 되었던(막 6:1-6a) 제자들은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수님께 자신들이 행한 모든 것들과 가르친 모든 것들을 보고하였습니다(막 6:30). 전도 여행의 보고를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먹고 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는데, 예수님과 제자들의 행적을 따르는 사람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한적한 외딴 장소로 떠나는 모습을 보고 그들보다 먼저 그 장소에 도착하면서 예수님께서 무리들을 가르치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막 6:30) 그리고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들어 그들이 행한 모든 것들과 가르친 모든 것들을 그(예수)에게 보고하였습니다. (31) 그리고 그(예수)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 스스로 외딴 장소에 가라 그리고 잠시 쉬어라.” 왜냐하면 오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음식을] 먹을 기회조차 가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32) 그리고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외딴 장소로 떠났습니다. (33) 그런데 사람들이 그들 (예수와 제자들)이 떠나는 것을 보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알아보고, 모든 도시로부터 걸어서 그곳에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도착했습니다. (34) 그리고 [배에서] 내리신 후에 그(예수)가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목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양들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예수)는 많은 것들로 그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Translated by YG Kim)
예수님께서는 자신들보다 먼저 도착한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막 6:34a). 마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병자들과 군중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모습이 네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나아와 무릎을 꿇고 엎드려 병이 낫기를 간절히 간구하는 나병 환자를 불쌍히 여겨 주셨고(막 1:41), 거라사의 군대 귀신들린 자를 불쌍히 여겨 주셨습니다(막 5:19). 또한 예수님께서는 남자들만 그 숫자를 세었을 때 오천 명이 되는 사람들과 사천 명이 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막 6:34; 8:2). 이렇게 예수님께서 병자들과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셨을 때 예수님의 마음은 기적을 일으키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큰 무리를 불쌍히 여기신 이유는 그들이 목자가 없는 양들과 같았기 때문입니다(막 6:34b).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대신하여서 여호수아를 세우시는 모습에서 모세의 간구의 배경이 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열 두명의 정탐꾼을 보내어 가나안 땅을 정탐하려고 할 때 이를 방조한 사건과(민 13:1-33; 신 1:19-33), 므리바에서 백성들이 원망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낸 것 아니라 반석을 두 번 쳐서 물을 낸 사건(민 20:2-13)으로 인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민 20:12; 신 1:37). 모세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해 주지 않으셨고, 모세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해주시기를 간구합니다(민 27:17)
또한 에스겔 34장 5-8절의 내용을 통하여 우리가 깨닫는 것은 이스라엘의 왕들이 자기만 먹고 양 떼를 먹이고 돌보지 않는 삶을 살아갈 때 그 피해는 양들에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겔 34:8) 주 여호와의 말씀이다. 내가 내 삶을 두고 맹세하니, 내 양 떼가 노략물이 되고, 내 양 떼가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된 것은 목자가 없기 때문이다. 내 목자들이 내 양 떼를 찾지 않으며, 자기만 먹고 내 양떼를 먹이지 아니하였다. (바른 성경)
결과적으로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양 떼를 먹이는 하나님의 종 다윗을 세워서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겔 34:23).
이러한 모습은 마가복음에서도 동일한 패턴으로 나타납니다. 당시 갈릴리 지역과 페레아 지역을 다스리는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는 자신의 백성들을 돌보지 않았고 권력자들과 함께 생일 잔치를 즐기면서 선지자 세례 요한을 죽였습니다(막 6: 14-29). 이러한 헤롯 안티파스의 모습은 에스겔서 34장 8절에 기록되어 있는 자기만 먹고 양 떼를 돌보지 않는 타락한 목자의 모습입니다.
이와 반대로 마가는 다윗의 혈통에서 태어나신 예수님께서 새로운 목자가 되심으로 목자 없는 양들이 참된 목자 되신 예수님께 나왔을 때 자신을 따르는 큰 무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르치시는 모습을 강조합니다(막 6:34c).
이러한 배경 가운데에서 예수님께서 참된 목자를 찾아 예수님께 나아온 큰 무리를 오랜 시간 동안 가르치시고 난 후에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그 곳에 모인 무리를 먹이시는 기적을 배풀어 주셨습니다. 마가는 이 곳에 모인 무리가 남자들만 숫자를 세어도 오천 명이라고 언급합니다(막 6:44).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큰 무리를 먹이신 사건은 사복음서에 공통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사건(막 6:30-44; 마 14:13-21)과 더불어 빵 일곱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사천 명을 먹이시는 사건(막 8:1-10; 마 15:32-39)을 동시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누가복음과 요한 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사건(눅 9:10-17; 요 6:1-14)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점은 사복음서의 기자들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 특징에서 시작됩니다.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서는 복음서 저자들이 출애굽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두 번의 양식과 관련된 기적의 모티브를 사용해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를 건너는 첫 번째 여행과 두 번째 여행의 마지막 부분에 배치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후(출 14:5-31) 먹을 것이 없어서 모세와 아론에게 원망하였을 때(출 16:2-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늘의 양식을 준비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출 16:4). 이 약속은 하나님께서 저녁에는 메추라기(quail)로(출 16:13), 아침에는 만나(Manna)를 내려 주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게 하셨습니다(출 16:31). 이러한 기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을 것과 관련해서 다시 한번 불평할 때(민 11:4-6) 민수기에서 메추라기를 공급해 주심으로 재현됩니다(민 11:31-35).
또한 열왕기서에 기록되어 있는 엘리야와 엘리사를 통하여 일어난 두 번의 유사한 기적도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의 배경이 됩니다.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의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하는 기적을 베풀었고(왕상 17:7-16), 엘리사는 보리떡 스무 개와 갓 익은 곡식으로 백명의 사람들을 먹이는 기적(왕하 4:42-44)을 행하였습니다.
이러한 구약적 배경 가운데에서 마가는 출애굽의 과정에서 나타난 만나와 메추라기 사건과 열왕기서에 기록되어 있는 두 가지 음식과 관련된 기적을 차용해서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과 사천명을 먹이신 사건을 지리적으로 구분해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은 유대인 지역에 일어난 사건으로, 사천명을 먹이신 사건은 이방인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기록합니다(Joel Marcus, Mark 1-8, 2000, 415, 491; R.T. France, The Gospel of Mark: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2002, 305-07).
마가복음 7:31절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데가볼리(Decapolis) 지역으로 가시면서 8: 10절까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마가복음 8:1-10절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께서 사천 명을 먹이신 사건은 데가볼리 지역이라고 하는 이방인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일어난 기적이고, 이러한 지리적 구분을 통하여 마가는 예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없이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와 반대로 누가는 이방인들을 향한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같은 사건의 반복을 피하는 신학적 특징을 가지고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과 사천 명을 먹이신 사건을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도 요한도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을 유월절이 가까운 시간에 배치하면서(요 6:4), 자신의 복음서를 읽는 믿음의 2세대들인 유대인 기독교인들에게 예수님께서 행하신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에 집중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 다음 호에 마가복음 6:35-44절의 본문 주해가 지속됩니다.
<함께 나누기>
- 예수님께서 큰 무리를 불쌍히 여기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 목자 없는 양이라는 표현을 구약적 배경으로 설명해 보십시오. 에스겔서 34장의 말씀을 읽고, 이스라엘 왕들과 예수님 당시의 분봉왕인 헤롯 안티파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또한 다윗과 예수님이 목자가 되었을 때 나타나는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과 빵 일곱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칠천 명을 먹이신 사건이 사복음서에서 어떻게 배치되어 있습니까?
- 마가와 마태는 두 번의 음식과 관련된 출애굽의 기적과 열왕기서의 기적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설명해 보십시오.
-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과 사천 명을 먹이신 사건으로 지리적으로 구분한다면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 누가와 요한이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과 사천 명을 먹이신 사건을 접근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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