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 부활의 의미 그리고 엘리야의 사역

부활의 의미 그리고 엘리야의 사역

예수님께서 높은 산에 올라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된 사건(Transfiguration)을 통하여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고난 이후에 부활의 모습을 미리 보았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대화를 나누시는 모습과(막 9:4), 하늘에서 들리는 “그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막 9:7)는 음성은 예수님이 누구이신가에 관한 하나님의 확증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이 놀라운 경험을 부활의 시간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막 (9:9) 그리고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 인자가 죽음으로부터 부활할 때까지 그들이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예수)가 그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10) 그리고 그들은 그 말씀을 자신들끼리 간직하면서, 죽은 사람들로부터 다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인지 [서로] 의논했습니다. (Translated by YG Kim)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금지 명령하신 이유는 마가복음에서 강조되는 메시아의 비밀(Messianic secret)과 연결되어 있지만,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서 높은 산에서 변화된 사건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교의 종파(sect)들 가운데에서 바리새인(Pharisees)들은 죽은 자들의 부활과 천사와 영적 세계의 존재를 믿고 있었습니다(행 23:6). 이와 반대로 사두개인(Sadducees)들은 모세 오경의 권위만을 인정하면서 부활과 천사와 영적 세계를 부정하였습니다(마 22:23; 행 23:8). 또한 쿰란 공동체와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에센네파(Essenes) 사람들도 부활에 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정치적 성향이 강한 열심당원(Zealots)들은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바리새인들은 다니엘서 12장 2절의 말씀을 근거해서 종말론적, 집단적 부활에 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단 12:2) 땅의 티끌 속에서 자는 자의 무리들이 깨어날 것인데 어떤 자에게는 영생이 있겠고, 어떤 자에게는 수치와 영원한 모욕이 있을 것이다. (바른 성경)

다니엘이 언급하는 부활의 사건은 하나님의 역사 중간에 일어나는 개별적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의 마지막에 일어나는 종말론적인 사건입니다. 따라서 다니엘은 “나라가 생긴 이래로 그때까지 없었던 환난의 때”(단 12:1), 곧 고난의 시기가 지난 후에 부활의 사건이 일어난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땅의 티끌 속에서 자는 자”라는 표현을 통하여 죽음을 잠에 비유하였고, 그들이 깨어난다는 표현을 통하여 영혼의 부활 뿐만 아니라 육체적 부활을 통한 심판까지 언급하고 있습니다. 또한 부활은 한 개인의 선행적(先行的) 부활이 아니라 집단적 부활(Collective Resurrection)로 역사의 마지막에 있을 총체적인 개념입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생각해 보면, 바리새인들이 생각하고 있었던 부활의 개념은 생명의 회복이 아니라 심판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어떤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everlasting life)이 주어지지만, 어떤 자들에게는 수치와 영원한 모욕(everlasting contempt)이 주어질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부활에 관한 생각은 제 2 성전기 문헌 중에 하나인 쿰란 문헌 가운데에서 메시아 묵시록(Messianic Apocalypse)으로 구분되어진 ‘4Q 521’(4Q521 Frag. 1 Col. II. 6-7)과, ‘마카비 2서’(2 Maccabees 7:9, 14, 22-23), 그리고 부활 신앙과 의인의 영생을 강조하는 ‘솔로몬의 지혜서’(Wisdom of Solomon)등에도 보편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혼란 가운데에서 서로 의논한 이유는 그들이 일반적인 부활에 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종말에 있을 모든 죽은 자의 부활에 앞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먼저 부활한다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께서 높은 산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된 사건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올바른 인식이 있을 때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침묵을 지켜야 합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부활에 관하여 서로 의논하는 가운데에서 그들은 예수님께 ‘엘리야’(Elijah)에 관하여 질문합니다. 이 질문은 제자들이 겪고 있는 신학적 혼란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막 9:11) 그리고 그들이 그(예수)에게 질문하면서 말하였습니다. “왜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12) 그러자 그(예수)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고 있느냐? 그런데 어찌하여 인자에 관하여 많은 고난을 받고 조롱 당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느냐? (13) 그러나 내가 너희들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다. 그리고 그들이 그에 대하여 기록된 것처럼 그에게 원하는 것을 행하였다.” (Translated by YG Kim)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방금 전에 예수님께서 엘리야와 모세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높은 산에서 직접 보았습니다. 그러나 모세와 엘리야는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졌기에 베드로와 안드레와 요한은 말라기 4장 5-6절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서기관들의 가르침대로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는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데 그런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의구심을 가지고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말라기 4장 5-6절의 말씀을 보면,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하늘로 승천한 엘리야 선지자(왕하 2:11)가 종말의 시간에 다시 돌아와 회복의 사역을 감당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말 4:5) “보아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 엘리야를 보낼 것이다. (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 자녀의 마음을 아버지에게 돌이킬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와서 이 땅을 진멸함으로 칠 것이다.” (바른 성경)

엘리야의 사역의 핵심은 깨어진 가정의 회복으로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 공동체가 서로 화해하는 사역입니다. 따라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서기관들이 말라기 4장 5-6절의 내용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서 메시아가 오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시키는 사역이 선행될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 왜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까?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회복시키면,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실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수사학적인 답변으로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고 있느냐?”(막 9:12b)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마가복음 9장 12절에서 예수님의 답변을 헬라어 문장으로 직역해 보면, “엘리야는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고 있다”라는 평서문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번역은 예수님의 메시지가 단순히 긍정적인 의미인지 또는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해석의 복잡성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용하시는 불변화사(particles) ‘’(men)이 부정을 나타내는 접속사(conjunction) ‘알라’(alla) (막 9:13)와 함께 사용이 될 때 “‘men’은 질문을 받을 사람에게는 긍정적인 답변을 전제로 하지만, 질문하는 사람에게는 부정적인 답변을 전제로 사용될 수 있다”(Joel Marcus,Mark 8-16, The Anchor Yale Bible 27a, p. 645)는 문법적 기능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수사학적인 질문을 통해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성공적으로 회복시킨다는 낙관적이고 피상적인 의견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가지고 있는 혼란의 근본적인 답변을 제시해 주시기 위해서 “그런데 어찌하여 인자에 관하여 많은 고난을 받고 조롱 당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느냐?” (막 9:12c)라고 두 번째 질문을 하십니다. 예수님의 논증의 핵심은 만일 서기관들의 말대로 엘리야가 모든 것을 온전하게 회복한다면, 왜 성경은 다른 한편으로 인자가 받아야 하는 고난과 멸시를 기록하고 있는지에 관한 질문이십니다(사 53:3-9; 시 22; 69; 118). 이러한 질문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고난이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성경에서 예언된 필연적인 계획임을 강조하십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께서는 엘리야의 사역이 사회적, 정치적 회복이 아니라 고난 받는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사역임을 강조하십니다. 그러므로, 엘리야의 사역을 감당하는 자 또한 고난의 운명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연결 고리 가운데에서 예수님께서는 엘리야가 이미 왔고, 사람들이 엘리야의 사역을 감당하는 자에게 고난의 운명을 걸어가도록 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막 9:13).

엘리야는 누구입니까?

마가복음 9장 11-13절에 등장하는 엘리야는 일차적으로는 구약의 선지자 엘리야에 대한 서기관들의 가르침을 의미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개념을 재해석하여 자신의 사역을 준비한 세례 요한이 엘리야의 사역을 감당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엘리야는 이미 왔다”(막 9:13b)라고 선포하시면서, 세례 요한이 참수형을 당한 사건(막 6:14-29)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막 9:13c). 마가는 이미 독자들에게 세례 요한이 낙타의 털로 만든 옷과 허리 주변에 가죽 띠를 두르고 있는 외모의 유사성을 통하여 세례 요한과 엘리야의 연관성을 암시하였습니다(왕하 1:8; 막 1:6).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이 엘리야의 사역을 감당한다는 암시를 확증하셨고, 동시에 엘리야가 이세벨에게 고난을 받는 사건(왕상 19:1-3, 10, 14)의 패턴이 세례 요한과 예수님 자신에게 이어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세례 요한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엘리야의 회복 사역은 고난 받는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사역임을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고, 예수님 또한 그 고난의 길을 걸어가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함께 나누기>

  1.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자신이 높은 산에서 변화되어진 사건을 말하지 말라고 언급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1. 유대교 종파(sect) 가운데에서 바리새인들은 죽음 이후의 부활에 관하여 믿고 있었습니다. 다른 종파들과 비교해서 바리새인들이 생각하고 있었던 부활의 개념을 설명해 보십시오. 
  1.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부활에 관하여 듣고 서로 의논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1.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엘리야에 관하여 질문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1. 말라기 4장 5-6절에서 다시 올 엘리야 사역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1. 마가복음 9장 12절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두 가지 질문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1. 예수님께서 해석하고 계신 엘리야의 사역은 무엇입니까?
  1.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엘리야는 누구이고, 무슨 사역을 하였습니까?
  1. 엘리야와 세례 요한과 예수님은 어떠한 사역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까?

복음에 빚진 자 김윤규 목사 (토론토 쉴만한물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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