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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설 때,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설 때,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종말에 관한 예수님의 두 번째 가르침(막 13:14-23)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환난의 실재를 보다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3장 14-23절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파괴를 예고하는 결정적인 징조와 그에 따른 즉각적인 행동 지침을 먼저 말씀하시고(막 13:14-17), 전무후무한 환난 속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말씀하십니다(막 13:18-20).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는 환난 속에서 나타난 거짓 그리스도의 유혹과 그에 따른 영적 각성을 언급하십니다(막 13:21-23).

예루살렘의 멸망과 환난의 실재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막 13:14-17)은 긴박한 환난의 징조 가운데에서 이루어지는 즉각적인 행동 지침입니다. 이러한 지침은 종말에 관한 예비적 징조들(막 13:5-13: 거짓 메시아의 유혹, 전쟁, 지진과 기근 그리고 제자들이 겪을 공적인 박해)이 어떻게 유대 지역에서 일어날지 언급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가르침은 종말의 시간에 ‘멸망의 가증한 것’을 직접 보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막 13:14) 그리고 너희들이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말아야 할 곳에 서 있는 것을 보게 될 때에 읽는 자는 깨달으라. 그때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가라. (15) 지붕에 있는 자는 내려오지 말고, 자신의 집에 무엇인가를 가져오려고 들어가지 말라. (16) 그리고 밭에 있는 자는 자신의 겉옷을 가지기 위해서 뒤에 있는 것을 향해 돌아가지 말라. (17) 그리고 그 날들에는 임신한 여인들과 젖을 먹이는 여인들에게 화로다. (Translated by YG Kim)

종말의 시간에 제자들이 보게 될 가장 참혹한 장면은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말아야 할 곳에 서 있는 것”(막 13:14a)입니다. 먼저 우리는 이 장소가 어디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은 다니엘서(단 9:21; 11:31; 12:11)에 나오는 구절로 그 배경은 주전 168년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Antiochus IV Epiphanes of the Seleucid dynasty)가 저지른 만행을 가리킵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의 번제단 위에 그리스의 신 제우스(Zeus)의 제단을 세우고 그곳에서 유대인들이 혐오하는 돼지를 제물로 바침으로써 성소를 더럽혔습니다(1 Maccabees 1:54, 59; 6:1-2: Josephus, Antiquities of the Jews, 12.5.4 § 253). 이러한 배경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면,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는 장소는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또한 우리는 헬라어의 문법적 특징을 통하여 ‘멸망의 가증한 것’(to bdelygma tes eremoseos: the abomination of desolation)이 단순히 특정한 물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과도 관련되어 있음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증한 것’(bdelygma)은 중성(neuter) 명사인데, 이 명사와 연결된 동사 ‘이스테미’(histemi: to stand)는 중성이 아니라 남성 분사로 ‘헤스테코타’(hestekota)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학자들은 ‘멸망의 가증한 것’이 무엇인가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먼저 마가복음의 역사적 배경으로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은 사건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로마 황제 갈리굴라(Caligula: AD 37-41년 재위)가 자신의 형상을 예루살렘 성전에 세우려 했던 시도입니다. 실질적으로 이러한 시도는 실행되지 않았지만, 초대 교회가 예수님의 예언을 기억하게 하는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T. W. Manson, The Sayings of Jesus, SCM Press, 1949, p. 329). 둘째, 본디오 빌라도가 가이사랴에 머물던 군대를 예루살렘으로 이동시키면서, 황제의 초상이 새겨진 군기를 밤중에 몰래 성안으로 들여와 세운 사건입니다. 이로 인해 유대인들이 십계명의 제 2계명을 어기는 행동이라고 주장하며, 목숨을 걸고 강하게 반대하자 결국 빌라도는 예루살렘에서 군기를 치우고 다시 가이사랴로 가져가도록 명령했습니다(R. Alan Culpepper, Mark, Smyth and Helwys, 2007, p. 540). 셋째, AD 67-68년 경 유대 전쟁 중 열심당원들이 성전을 점령하고 자격이 없었던 인물인 ‘파니아스’(Phanias)를 대제사장으로 세워 성소를 유린한 사건입니다(Joel Marcus, Mark 8-16, The Anchor Yale Bible 27a, 2009, pp. 890-91). 넷째, 로마의 장군 티투스가 성전을 파괴하였을 때 대제사장 외에는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 지성소(Holy of Holies)에 직접 난입한 사건입니다(M. D. Hooker, The Gospel according to Saint Mark, BNTC, 1991, p. 314).

성전 파괴라는 역사적 사건을 넘어 종말론적인 입장에서도 ‘멸망의 가증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멸망의 가증한 것’이 남성 단수임을 생각해 보면 이러한 모습은 종말의 시간에 나타날 ‘적 그리스도’(Antichrist)입니다(C. E. B. Cranfield, The Gospel according to Saint Mark, CGTC, 1959, p. 403). 둘째, ‘멸망의 가증한 것’은 그 의미 자체로 무너진 성전 터에 세워질 이방의 신전이나 유대교 성소를 모독하는 미래의 결정적인 우상 숭배적 사건입니다(Adam Winn, The Purpose of Mark’s Gospel, WUNT 2/245, Mohr Siebeck, 2008, p. 199).

우리가 마가복음 13장을 시작하면서 이미 생각해 본 것처럼, 종말에 관한 예수님의 예언은 역사적 해석이나 종말론적 해석 하나만으로 이해하기보다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단순히 하나의 사건과 연결시키기 보다 이중적 의미로 역사와 종말의 시간 속에서 서로 얽혀 있음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역사 속에서 일어난 사건으로서 ‘멸망의 가증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미리 보여주는 거울(mirror) 역할을 합니다.

마가복음 13장 14절의 중반절에 기록되어 있는 “읽는 자는 깨달으라”는 말씀은 마가가 기록한 삽입구로서 복음서 저자가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주의를 환기하는 매우 독특한 장면입니다. 이렇게 복음서를 기록하고 있는 저자가 예수님의 말씀에 잠시 개입해서 청중들에게 직접 말하는 방법을 ‘서사적 방백’(narrative aside)이라고 부릅니다(R. Alan Culpepper, Mark, Smyth and Helwys, 2007, p. 459). 마가는 이러한 삽입을 통하여 “멸망의 가증한 것”이 무엇인지 역사적 상황과 종말의 시간에서 정확하게 해석하고 깨달으라고 독자들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저자에 의해 삽입된 “읽는 자는 깨달으라”는 ‘서사적 방백’을 제외한 종말에 관한 예수님의 두 번째 가르침은 독자들에게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말아야 할 곳에 서 있는 것을 보게 될 때 실행 되어야 하는 즉각적인 행동 지침으로 “산으로 도망가라”(막 13:14c)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산(oros: mountain)은 전통적으로 재난이나 전쟁 시에 안전하게 숨을 수 있는 피난처(refuge)로 간주되었습니다(창 14:10, 19:17; 왕상 22:17; 렘 16:16; 나 3:18; 슥 14:5; 히 11:38). 특별히 예수님의 이러한 실행 명령은 소돔의 심판에서 탈출했던 롯에게 주어진 천사의 명령을 강력하게 반영하고 있습니다(창 19:17).

역사적으로 AD 68년경 유대 전쟁이 본격화 되기 전에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은 계시를 통해 예루살렘을 떠나 요단강 너머 페레아(Perea) 지역의 펠라(Pella)라는 성읍으로 옮겨가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유세비우스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The people of the church in Jerusalem had been commanded by a revelation, vouchsafed to approved men there before the war, to leave the city and to dwell in a certain town of Perea called Pella.” (Eusebius, Ecclesiastical History 3.5.3)

실제적으로 예루살렘 자체가 산 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산으로 도망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예루살렘을 둘러싼 산 너머 요단 동편의 산맥(Transjordanian mountains)으로 가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으로 도망가라”는 말씀을 통해 종말의 시간에 탈출을 위한 방향을 제시하셨다면, 15-17절의 내용은 탈출의 절대적 긴박성과 그 과정에서 겪게 될 인간적 고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종말의 시간에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아야 합니다(막 13:15). 예수님 당시에 팔레스타인 가옥은 평평한 지붕이었고, 지붕은 기도의 자리이며, 휴식 또는 잠시 낮잠을 잘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평평한 지붕의 특성상 사람은 지붕을 농작물을 말리는 장소로도 사용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종말의 시간에 지붕 위에 있는 자가 물건을 가지러 집 안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명령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명령은 환난의 날에 닥칠 위기가 얼마나 급박한지를 강조하는 수사학적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위협하는 종말의 시간에 재산보다 생명이 소중함을 강조하십니다. 따라서 종말의 시간에 지붕 위에 있던 사람은 지붕으로 연결된 외부 계단을 통해 즉시 내려와 도망쳐야 합니다.

또한 밭에 있는 사람도 자신의 겉옷을 가지기 위해서 뒤로 돌아가지 말아야 합니다(막 13:16). 예수님 당시에 겉옷(himation: garment)은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밤의 추위를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외투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이러한 외투가 매우 비싸고 가치 있는 물건임을 생각해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미는 종말의 시간에 생명 구원을 위해 모든 세속적 소유에 대한 집착을 즉시 버려야 함을 강조하는 역설적인 수사학적 표현입니다. 마치 롯의 아내가 자신의 재물을 버리지 못하고 뒤돌아보았을 때 소금 기둥이 되었지만(창 19:26), 바디매오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자신의 유일한 재산인 겉옷을 내버리고 즉시 예수께 나아가 제자가 된 모습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막 10:50-52).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는 종말의 시간에 도피의 어려움을 경험하게 될 임신한 여인들과 어린 자녀를 둔 여인들을 향한 동정을 표현하십니다(막 13:17). 예수님께서는 17절의 시작에서 “화로다”(ouai: woe)라는 표현을 사용하시는데, 그 내용은 임신한 여인들과 어린 자녀를 둔 여인들을 향한 심판의 표현이 아니라 재난 속에서 신체적 제약으로 인해 도망치기 어렵거나 더 큰 고통을 겪게 될 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깊은 동정적 탄식입니다. 그들은 전쟁과 기근의 어려움 속에서 자신뿐만 아니라 아이의 생명까지 지켜야 하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은 종말의 시간에 가장 연약한 자들이 겪게 될 처절한 고통에 대한 예수님의 탄식이십니다.

결론적으로, 다니엘서의 성전 모독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예수님의 ‘멸망의 가증한 것’에 관한 가르침은 1세기 역사적 사건을 통하여 실현되었고, 더 나아가서 미래의 시간에 이루어질 종말의 시간에 관한 경고입니다. 이 말씀을 읽는 독자들은 ‘산’이라는 구약적 배경 속에서 세속적 소유보다 생명 보존을 위해서 도피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께서는 사회적 약자로 표현된 여성들을 향한 동정적인 모습을 통하여 자비를 표현하십니다.

<함께 나누기>

  1. 마가복음 13장 14-23절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습니까?
  1. 마가복음 13장 14a에 기록되어 있는 ‘멸망의 가증한 것’에 관한 배경을 설명해 보십시오.
  1. ‘멸망의 가증한 것’에 관한 해석의 가능성을 역사적 배경과 종말론적 입장에서 설명해 보고, 유기적 해석 방법이란 무엇인지 설명해 보십시오.
  1. “읽는 자는 깨달으라”(막 13:14b)라는 ‘서사적 방백’이란 무엇입니까?
  1. 구약적 배경에서 ‘산’은 어떠한 장소입니까?
  1. 예수님께서 종말의 시간에 닥칠 위협 가운데에서 ‘지붕’과 ‘밭’을 언급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1. 예수님께서 종말의 시간에 임신한 여인들과 어린 자녀를 둔 여인들을 언급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복음에 빚진 자 김윤규 목사 (토론토 쉴만한물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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