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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그런뜻이었구나] 물 (3), 심판과 구원의 도구

물 (3), 심판과 구원의 도구

사람들의 죄악이 세상 구석구석에 가득합니다. 그들의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손수 창조하신 생물 전체를 지면에서 쓸어 버릴 계획을 세웁니다. 단 한 가족은 제외됩니다.  소위 노아의 홍수로 알려진 물의 심판은 노아의 가족만 구원시켰습니다. 인류 창조의 기원에서 홍수는 심판과 구원이라는 두 목적을 이행하는 수단인 것을 분명히 합니다. 세상을 향해서는 “내가 땅 위에 홍수를 일으켜서 하늘 아래 사는 모든 생물, 곧 목숨이 있는 것은 다 멸망시킬 것이다” 고 선언하고, 노아를 위해서는 “그러나 내가 너하고 언약을 세우겠다.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은 모두 방주로 들어 가라 그리고 모든 생물을 암컷과 수컷 한 마리씩 방주로 데리고 들어가서 너와 함께 살게 하여라”였습니다.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생명체는 홍수가 덮쳤을때 멸절되었습니다. 노아의 가족은 홍수의 심판을 피했습니다. 

   홍수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홍수가 그의 백성을 덮치지 못하도록 막으셨으나, 그들을 뒤쫓는 자들은 홍수가 덮치도록 하셨습니다. “바로의 말과 전차와 마병이 함께 바다에 들어갔을 때 여호와께서 바닷물을 다시 흐르게 하여 그들을 덮어 버리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을 밟고 바다를 건너왔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을 홍수와 적들의 손으로부터 구원하셨습니다.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구원하시고, 이스라엘의 원수는 물로 멸망시킨 이야기는 구약과 유대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됩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그 미워하는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며 그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셨고, 그들의 대적들은 물로 덮으시매 그들 중에서 하나도 살아 남지 못하였도다.”

   물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 행위는 이스라엘 백성이 여러고 성을 정복하기 바로 직전에 다시 등장합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홍해에서 너희가 다 건널 때까지 우리 앞에서 홍해를 말리셨듯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다 건널 때까지 너희 앞에서 요단 강을 말리신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여리고와의 전쟁 결과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 안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다 죽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리고를 차지했습니다”라고 기록됩니다. 이곳에서도 물은 역시 구원과 심판의 도구로 사용됩니다.

   물을 통치하여 자신의 목적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물과의 관계는 엘리사의 요단강 가르는 이야기에도 나타납니다.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가면서 떨어뜨린 겉옷을 주어든 엘리사는 곧 요단강가에 갑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어디에 계십니까”라고 말하며, 그 옷으로 강물을 내리칩니다. 그러자, 강물이 양쪽으로 갈라집니다. 그는 갈라진 곳을 통해 강을 건넜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예언자의 무리가 “엘리야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지금은 엘리사 위에 있도다”고 말하며, 그에게로 나아가 땅에 엎드려 그에게 경배합니다.  곧이어 물을 통한 구원의 사건이 발생됩니다. 엘리사는 그곳은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었지만 물이 좋지 못해서 열매가 익지 않고 떨어진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는 샘이 솟는 곳에 소금을 뿌리며 “여호와께서 ‘내가 이 물을 고치니 지금부터는 이 물 때문에 죽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 물 때문에 열매 맺지 못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고 말씀하셨소”라고 외칩니다. 이제 그 물은 오늘날까지  깨끗한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위의 사건들에서 물은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요인입니다. 홍해의 구원 사건은 때때로 용과의 갈등 이미지로 묘사됩니다. “오래전에 나일 강의 용과 같은 이집트를 토막내셨던 것처럼 여호와여 깨어나십시오. 주께서 바닷물을 말리시고, 바다의 깊은 곳에 길을 내셔서, 구원받은 주의 백성이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물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하나님은 인간의 세계를 혼돈케 하는 세력을 통제할 뿐만 아니라 창조물에 대한 주권자임을 선언합니다. 

   예수님도 물을 심판의 도구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이곳에서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남”은 최후의 심판 때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를 결정짓는 기초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것에든 견뎌낼 수 있도록 기초를 튼튼하게  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물은 세례 의식의 도구로 사용됩니다. 세례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예수님은 물을 죽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자신의 죽음을 세례에 비유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나의 받는 세례”는 예수님께서 곧 직면해야 하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초대 교회에서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는 세례는 옛 사람이 죽고 새로운 사람의 출생 의식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물로 하는 세례는 몸에 묻은 더러운 때를 씻어 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있는 더러움을 예수의 피로 씻어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세례는 몸을 깨끗하게 씻는 차원을 넘어서 선한 양심이 내 삶을 하나님께 드리며 정결하게 살기를 약속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고 권면합니다.

   베드로는 홍수 사건을 상기시켜서 물을 심판과 구원의 상징으로 사용합니다.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옛 세상에서 주님은 자신의 영을 보내셔서 노아를 통해 경고하셨습니다. 노아의 시대에 오래 참으시셨지만 마침내 심판을 하셨던 것과 같이, 누구든 경고를 무시한 자들은 결국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주의 영이 노아의 가족을 물위의 방주 안으로  인도하여 구원 받게 했던 것은 모든 참된 신자들의 구원의 방법을 제시한 것입니다. 물위의 방주 안에서 노아가 얻은 구원은 세례에 의한 신자들의 영원한 구원을 예표한 것입니다.  

   세례 예식은 노아 가정이 물에서 살아났던 것처럼 영원한 구원의 표징입니다.  물로 하는 세례는 단지 육체의 더러움을 씻어 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거듭남으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위한 삶의 새로운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세대에 구원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적합한 수단과 방법을 이용해서 구원의 기회를 얻게 하십니다. 불순종의 사람들이 돌아와서 구원의 은총을 누리시기를 원하십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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