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자 (1), “불완전한 강자”
“곰과 표범을 제외한 모든 동물에서 암컷은 수컷보다 성품이 더 약하다. 이 두 예외적인 경우에는 용기 면에서 암컷이 우월하다. 다른 모든 동물에서 암컷은 수컷보다 성격이 온순하고, 더 장난스럽고, 더 순진하며, 더 충동적이고, 새끼 양육에 더 신경을 쓴다. 반면에 수컷은 암컷보다 성향이 더 강하고 더 사납고 덜 순진하며 덜 교활하다. 이러한 차별화된 특징의 흔적은 모든 곳에서 다소 분명하게 나타나지만, 특히 성격이 더 발달한 곳, 즉 무엇보다도 인간에게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사실, 인간의 본성은 가장 완성되고 완벽하다. 따라서 위에서 언급한 자질이나 능력들이 인간에게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앞서 언급했듯이, 남자는 여자보다 용감하고, 도움을 주기 위해 곁에 있어 주는 데 더 동정적이다. 심지어 연체동물인 오징어는 암컷이 삼지창에 맞으면 수컷은 암컷을 돕기 위해 곁에 있지만, 수컷이 맞으면 암컷은 도망친다!”
위에 인용된 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물의 역사』에 나타난 내용입니다. 수컷 혹은 남자로 번역된 희랍어는 “아르센”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르센은 암수를 분류하는 전문 용어로 종족 번식과 생존 유지를 위한 기본 단위로 이해합니다. 그는 아르센은 외적인 운동원리를 제공하는 능력으로 생존력의 우월성을 강조합니다. 근원적으로 아르센은 생명 보존을 위한 내적인 강인함 때문에 모든 종 (species) 중에 가장 완벽한 형태인 것입니다. 아르센은 사회적 역할 보다는 전적으로 생물학적 기능과 생식 메카니즘에서 우위에 있는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의사로 오늘날까지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아르센을 신체의 체절적 구성을 설명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남성은 단순한 외적 특징으로 이해하지 않고 두드러진 생리적 상태로 간주했습니다. “암컷이 수컷보다 덜 완벽한 이유는 두가지다. 첫째, 암컷은 더 차갑기 때문이다. 동물 중에서 따뜻한 동물이 더 활동적이라면, 차가운 동물은 따뜻한 동물보다 덜 완벽할 것이다. 둘째, 해부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이유가 있다. 여성의 기관은 몸 안에 있는 반면, 남성의 기관은 몸 밖에 있다는 것이다.”
의학 문헌에서 아르센 (남자)은 종종 체질이 건조하고 뜨겁다고 묘사되었으며, 습하고 차가운 체질인 델리스(여자)의 성질과 대조했습니다. 이러한 구분은 특정 질병에 대한 취약성부터 체질의 차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이 문헌들에서 아르센은 강건함과 구조적 밀도와 동의어였습니다. 고대 의사들에게 “남성의 기관” 또는 “남성의 정신”은 더 큰 긴장감과 강인함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고대의 현인들은 질서의 이분법 틀 속에서 아르센은 “제한된 것,” “홀수,” “한쪽,” “오른쪽,” “밝음,” 그리고 “선함”처럼 그 자체로는 미완성으로 이해 되었습니다. 아르센은 스스로는 불완전한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완전체가 되기 위해서는 조화를 이루는 상대를 필연적으로 요구됩니다.
남성 혹은 수컷을 의미하는 아르센은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단순한 성별 명칭이 아니었습니다. 이 낱말은 생물학과 의학과 철학 뿐만 아니라 삶의 전 영역에서 그 근본 뜻을 담아 상징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용례는 신약 성경에 언급된 이 단어를 이해하는 토대를 제공합니다. 신약에서 아르센은 창조주께서 정하신 남성의 생물학적 실재에 초점을 맞춥니다.
예수님께서 결혼과 이혼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받으셨을 때, 문화적 규범이나 법적 허점을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구조를 언급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 (아르센)와 여자 (델리스)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예수님은 인간의 완전체에 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르센은 텔리스와 짝을 이루어 전체를 이룹니다. 이것은 단순한 생물학적 관찰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에 관한 진술입니다. 예수님은 아르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남녀 구분이 사회적 구성물이나 타락 이후의 복잡한 문제가 아니라, 최초 창조의 의도적이고 “매우 좋은” 특징임을 확증하십니다.
창조 이야기와 더불어 아르센은 모세 율법, 특히 맏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는 문제와 관련하여 자주 등장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태를 열고 나오는 모든 남자”는 주님께 거룩하게 바쳐져야 했습니다. 누가는 이 말씀을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님을 데리고 예루살렘을 방문할 때 인용합니다.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 (아르센)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비록 아르센이 생물학적으로 강할지라도 근본이 스스로 완전해 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예수님께 바쳐질 때에 남자의 사명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동일하게 여자인 마리아도 자신이 복을 받은 이유를 이렇게 찬양합니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아르센은 단순한 성별의 표시를 넘어 하나님과 결합하는 자입니다.
모든 이를 위한 복음의 근본적인 포용성을 정의하면서 사도 바울은 아르센을 다음과 같이 사용합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아르센)나 여자(델리스)나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를 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아르센은 다른 사람들 (이방인, 노예, 여자)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법적, 사회적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바울은 이 단어를 사용하여 남자들이 가졌던 차별화된 마음을 벗겨냈습니다. 비록 사회적 우월성이 있었지만, 남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생물학적으로 여성과 정확히 동일한 수준의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단어는 요한계시록의 묵시적 이미지에도 나타납니다.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 (아르센)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여기서 아르센은 메시아 예언의 성취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이 아이가 특별히 남자로 지정된 것은 가장 겸손한 모습, 즉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지만 사탄을 이길 수 있는 본질적인 “남성적” 힘을 지니신 그리스도의 강인함과 “다스리는” 본성을 강조합니다.
남자 (아르센)는 여자(델리스)와 연합하여 완전체를 이루고, 하나님 (데오스)과 함께할 때 진정한 강자가 되는 것이 창조 질서입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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