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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 그런뜻이었구나] 전도, “교회의 존재 이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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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 “교회의 존재 이유” (1)

“전도”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기독교 역사를 통해 교회를 이끌어 오는 중추 사역 중의 하나입니다. 이는 전도가 교회의 존립과 직결된 가장 숭고하고 근본적인 직무임을 말해줍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매우 익숙한 “전도”는 지역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해 운영되는 부수적인 프로그램을 훨씬 넘어선 의미가 있습니다. 전도에 관한 고전적 의미는 기쁨의 소식을 세상에 가지고 나아가는 행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가져다 주는 행위가 전도입니다. 

   구약 성경에 전도에 관한 가장 뚜렷한 예가 요나입니다. 요나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준 말을 그대로 전하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일어나 니느웨 성읍으로 들어가서 그 말씀을 전합니다. 요나는 그 성읍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다 준 것입니다. 그 결과 예기된 재앙이 그 땅에 멈추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듣고 얻게 되는 기쁨의 소식의 내용을 이사야는 이렇게 나열합니다.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모든 슬픈자를 위로하되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씌워 주시며, 오래 황폐된 곳을 일으켜 세우며, 수치 대신에 보상을 배나 얻으며, 능욕을 당한 대가로 몫을 받아 기뻐하며, 그리하여 그들이 자기들의 땅에서 갑절의 상속을 받으며, 영원한 기쁨을 차지할 것이다.” 

   신약 성경에서 “전도”의 의미를 형성하는 대표적인 희랍어 어휘는 “유앙겔리제스다이,” “카탕겔레인,” 그리고 “케뤼스세인”입니다. 이 세 단어는 강조하는 점이 서로 다르지만 모두 소식을 밖으로 알리고 공개적으로 선언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유앙겔리제스다이는 “좋은 소식을 전하다” 또는 “기쁨의 소식을 가져오다”는 “유앙겔리조마이”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이 단어는 본래 기쁜 소식 또는 좋은 소식과 관련된 일반적인 말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복음”으로 번역되는 이 단어의 명사형은 기독교 문헌에서만 사용된 것이 아닙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는 좋은 소식을 전한 사람에게 주는 보상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 역시 친구 아티쿠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단어를 좋은 소식이라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두 번째 단어인 카탕겔레인은 “알리다,” “공표하다,” 또는 “공개적으로 선언하다”는 “카탕겔레오”에서 파생한 말입니다. 고대 그리스 문헌에서 이 낱말은 어떤 사실이나 발생된 사건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폴리비오스의 『역사』에서 이 낱말은 어떤 행위나 결정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개인에게 조용히 설명하는 행위가 아니라 공적인 선언이었습니다.

   세 번째 단어인 “케뤼스세인”는 “전령,” “공적인 사자,” 또는 “포고자”를 의미하는 “케뤽스”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케뤼스스는 자기 생각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권위 있는 사람이나 공동체의 명령을 전달하는 공적 전령이었습니다. 케뤼소는 단순한 대화나 교육이 아니라 권위 있는 메시지를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것을 뜻합니다. 호메로스는 이 낱말을 군대를 소집할 때 전령이 큰 소리로 선포할 때 사용했고, 또한 사람들을 집회로 모으기 위해 전령이 외치는 소리를 표현할 때 사용했습니다.

   이 단어들은 신약성경에서 사용되는 전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전도자는 자기 의견을 홍보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보내심을 받은 공적인 사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메시지를 충실하게 전달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예수님께서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을 온전케하시고 열병으로 누워계신 베드로의 장모의 병을 고치시고 각종 병든 사람들을 고치시자, 그 소식을 들은 모든 병자들이 예수님을 찾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고 말씀합니다. 전도는 예수님께서 인간 세상에 들어 오셨던 이유였습니다. 고통의 근원을 해결하여 그들에게 기쁨을 주는 행위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사명이었습니다. 이 전도는 예수님의 사적인 사역으로 종결되지 않았습니다. 마가는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세우셨던 목적 중의 하나는 전도였다는 사실을 이렇게 언급합니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이어서 예수님은 따로 칠십 인을 세우셔서 친히 가시고자 하시는 여러 지역과 여러 마을로 둘씩 짝지어 보내셨습니다. 자신이 이 땅에 오셨던 목적인 전도를 제자들에게 위임하셨습니다.

   전도의 절정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명령에서 나타납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가복음에서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셨고, 사도행전에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약속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곳에서 전도의 본질을 발견하게 됩니다. 전도는 교회 안으로 사람을 불러들이는 기술 이전에, 교회가 세상으로 보내심을 받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라고 기도하셨으며,  부활하신 뒤에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너희”는 교회의 특정 계층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전도는 예수님께서 교회에게 하신 명령입니다. 전도는 우리가 선택하는 사항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명령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전도는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내시는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을 보내셨고, 선지자를 보내시고, 마침내 아들을 보내셨으며, 아들이 다시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본질적으로 보냄받은 공동체입니다. 전도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길이 열렸다는 기쁨의 소식을 들고 세상에 파송된 사람입니다. 전도는 교회에서 시작되지만 교회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근본적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특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  우리를 세상에 보내십니다. 복음을 전하는 전도는 교회의 존재 이유입니다. 이남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