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 “자발적 예속자”
고대 그리스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법과 제도를 통해 국가 질서와 경제적 안정을 추구했던 플라톤은 모든 시민의 생산 활동이 필수적 요소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따라 노예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한 법적 그리고 사회적 상황들을 구체적으로 규정했습니다. “둘로스 (노예)는 그 성품이 결코 신뢰할 수 없는 존재이므로, 주인은 마땅히 그들을 올바르게 다루어야 하며 결코 그들에게 방종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주인에 대하여 둘로스가 지니는 종속성과 예속의 의무는 법적 구속력을 가지며, 둘로스는 스스로의 의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전혀 누릴 수 없는 존재로 규정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타인의 소유라고 이해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에 관해서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타인의 소유인 인간은 본질적으로 노예 (둘로스)이다. 타인의 소유가 되는 인간이란 곧 하나의 재산이자 행동을 위한 살아있는 도구에 불과하다. 따라서 노예는 주인의 의지에 전적으로 종속되어 자신의 사생활이나 판단 권한을 전혀 가지지 못하는 운명을 지닌다.” 그에게 노예는 살아 있는 소유물로 주인을 위해 행동하는 도구였습니다.
고대 로마 사회에서 “원로원의 수호자”로 불렸던 마르쿠스 카토는 대농장 중심의 로마 농업 경영에서 노예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실용적이고 단호한 시각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노예에게 주어질 식량과 의복과 신발의 양을 구체적으로 정하는 한편, 병들거나 늙어서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노예는 농장의 경비를 줄이기 위해 폐품과 함께 즉시 처분 (매각)해야 한다고 명시합니다. 이러한 기록은 고대 로마 사회에서 노예는 단지 “경제적 재산 및 수단”으로 취급되었음을 잘 보여줍니다.
로마법의 결정판인 『학설집』에는 광산이나 농업 현장에서 오직 생산적 도구로만 취급받았던 둘로스의 기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인에게 일정 수익을 납부하는 조건으로 독립된 사업장과 주거지를 꾸리고 살았던 노예들의 존재도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귀족이나 부유한 시민의 저택에서 요리, 집안일, 간호, 아동 교육, 비서, 회계, 연주 등을 담당했던 둘로스들은 상대적으로 우대받았습니다.
고대 유대 문화에서 종의 지위는 일반적인 그리스와 로마 사회의 비인격적 소유물 개념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가난이나 빚 때문에 스스로 몸을 팔거나 팔려 온 유대인 종은 영구적인 소유물이 아니었습니다. 모세 율법에 따라 6년 동안 섬긴 후 7년째 안식년이 되거나, 희년이 오면 반드시 몸값을 받지 않고 무상으로 해방시켜야 했습니다. 비록 종이지만 안식일에 일하지 않고 쉴 권리가 있었고, 학대받아 이가 부러지거나 눈이 상하면 종은 해방되는 권리가 있었고, 주인이 종을 때려 숨지게 한 경우에는 처벌을 받았습니다. 이방인 출신 종은 영구 소유가 가능했으나, 그들 역시 할례를 받고 유대 공동체에 참여해야 했으므로 로마식의 전면적 인간성 박탈과는 구별되는 자비적 규범의 적용을 받았습니다.
“종” 또는 “노예”로 번역되는 헬라어 “둘로스”는 고대 사회에서 경제적 생산이나 가사 노동에 동원되는 신분적 예속 존재였습니다. 제한적인 자유와 자기 재산을 소유할 수 있었지만, 둘로스는 근본적으로 주인의 지배 권한과 법적 구속력 아래에 있었습니다. 노예주는 그의 육체와 영혼까지 소유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 노예에 대해 자주 언급하셨습니다. 어떤 노예들은 막중한 책임을 맡기도 했는데, 실제로 그들은 종종 집안 살림 전체를 관리했습니다. 노예가 아무리 열심히 일하더라도 주인과 동등한 지위를 얻지 못했습니다. 아무 보상 없이 하루 종일 섬기는 삶이 노예의 운명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주인은 빚을 갚지 못한 노예를 감옥에 넘겨서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뒀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쓴 편지에서 도망친 노예 오네시모를 “사랑 받는 형제” 그리고 자신의 “동역자”로 영접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노예 제도의 해체를 암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서신들에서 바울과 사도들은 노예들은 주인에게 순종할 것을 권면합니다. 사실 순종은 노예가 가진 기독교적 헌신의 증거로 여겨졌습니다. 노예는 마치 주님을 섬기듯이 자신의 주인을 섬겨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면서 노예인 자가 신실하게 복종할 때, 그들은 복음의 진리를 확증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 노예는 주인에게 말대꾸조차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이 말씀들의 강조점은 노예 제도를 옹호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대신, 일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성경 말씀을 실천하는 데 있습니다.
성경은 노예라는 개념에 신앙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죄의 종 (둘로스)이며, 오직 그리스도만이 그들을 자유롭게 하실 수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바울은 죄의 종은 사망에 이르고 그리스도의 종은 의에 이른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는 거듭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에 종노릇 한다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정욕에 종노릇 하는 그레데 사람들을 경계하라고 당부합니다.
바울 사도는 둘로스의 긍정적인 부분을 많이 강조합니다. 그는 자신을 소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이라고, 거듭해서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표현합니다. 자신을 그리스도 교회의 종이며 모든 사람의 종이라고도 표현한 바울은 예수를 따르는 모든 사람이 동일한 정체성을 갖는다고 말합니다.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의 삶에 대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섬기고 순종할 의무에 영원히 매여 있음을 의미합니다.
주인의 뜻에 충성한 종이 얻게 되는 보상에 관해서 성경은 일관성 있게 언급합니다. 예수님은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시킨 대로 일을 하고 있는 그 종은 복이 있을 것이다”고 말씀합니다. “주인이 그에게 ‘잘하였다, 착하고 충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실하였으니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너는 주인의 기쁨에 참여하여라’하였다.” 그리스도인은 나 자신에게는 아무 권리도 없는 그리스도의 둘로스입니다. 주인의 목적에 충성을 다하는 자의 삶에 모든 은혜가 풍성합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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