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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그런뜻이었구나] 세상에서 기독교인, “순례자”

세상에서 기독교인, “순례자”

고대 로마 제국의 16대 황제이자 스토아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인생은 전쟁하는 것이며 외국 땅에서 잠깐 체류하는 것이다”고 정의했습니다. 사상과 철학이 깊었던 그리스인들도 이 땅에서의 인간 삶을 나그네로 이해했습니다. 그리스 전기 작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에서 아낙사고라스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그는 부와 귀족 출생으로 유명하며, 나아가 관대함으로 인해 저명한 인물이었다. 그가 상속 재산을 포기할 때 사람들은 어리석은 태도라며 그를 비난했다. 그가 정년퇴직 하고 공적인 일에 헌신하자, 누군가가 ‘당신은 자신과 고향에는 관심이 없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나는 나의 아버지의 집인 내 조국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하늘을 가리켰다.” 그에게 이 땅의 삶은 영원한 조국에 돌아가는 과정일 뿐이었습니다. 에픽테토스는 자신이 봤던 인생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원래 고향을 향하여 가는 여행자처럼 행동한다. 여관이 그를 기쁘게 해 주기 때문에 계속 이곳에 머물러 있지만, 이곳은 좋은 여관일 뿐이다. 인간들아, 당신들은 목적을 잊었다. 당신들은 이곳에 머무는 자들이 아니라, 이곳을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이곳은 여관일 뿐이며, 지나가야 하는 곳이다.” 그에게 이 세상은 궁극적인 목적지가 아니었습니다.

이 세상의 삶에 관한 그리스 로마인들이 가졌던 사상은 성경에서 출발합니다. 성경은 이 땅에서의 인간은 “본향을 찾는 자”이며,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 하며,”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한다”고 말합니다. 신약성경에는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마음 자세를 설명하는 전형적인 낱말 군 (群)이 있습니다. 이 단어들은 한 장소에 영구적으로 거주하는 않는 사람을 뜻하는 순례자, 체류자, 그리고 이방인을 뜻합니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위치를 설명하는 첫번째 희랍어는 케노스입니다.  이 낱말은 낯선 사람, 이방인, 또는 외국인을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한 국가의 시민, 그 땅의 거주자, 그 국가의 토착민과 반대 개념으로 방랑자 혹은 난민을 뜻하기도 합니다. 신약에서 케노스는 인자가 천사와 함께 오셔서 양과 염소를 심판하는 예화에서 나그네로 사용됩니다. 인자는 오른 편에 있는 양을 향하여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다”고 언급합니다. 또 왼편에 있는 염소에게는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지 않았다”고 지적합니다. 바울이 아테네에서 철학자들과 논쟁할 때 어떤 사람은 바울을 향하여 “그가 외국 (케노스)의 다른 신들에 관해서 말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하자 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 (케노스)이요.” 하나님 나라 측면에서 평가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세상사람들은 외국인입니다.   사도 요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의 사람에게는 형제라고 칭하면서,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을 나그네 (케노스)라고 칭합니다. 신약 성경에 언급된 케노스는 그리스도인들을 부르는 명칭이며, 그들은 인간 세상에서 나그네 또는 순례자임을  밝힙니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위치를 ​​설명하는 두 번째 단어는 파레피데모스입니다. 이 단어는 자신들이 잠시 머무는 장소를 영구적인 거주지로 만들지 않는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이 낱말은 정착할 거주지가 결코 없는 나그네를 뜻합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을 따라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이 땅에서 나그네일 뿐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소아시아에 살았던 그리스도인들을 묘사하기 위해 이 낱말을 사용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베드로는 본도와 갈라디아와 가빠도기아와 아시아와 비티니아에 흩어져서 나그네 생활을 하고 있는 여러분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그들은 국가 밖으로 흩어진 나그네였습니다. 베드로는 나그네와 순례자가 된 그의 백성들에게 영혼을 공격하는 육체의 정욕을 멀리하라고 당부합니다.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사용됩니다.  사라가 죽었을 때 아브라함은 헷 족속에게 가서 그녀를 장사할 땅을 구했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나그네요, 외국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 죽은 아내를 묻을 수 있도록 나에게 땅을 좀 파십시오.” 시편 기자는 이 땅에서의 힘겨운 자신의 삶을 도와 달라며 이렇게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도움을 청하는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여 주소서. 나그네와 같은 내가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처럼 내가 이방인으로 여기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과 세상의 관계를 설명하는 세 번째 단어는 파로이케오입니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자신들의 마을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부를 때 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파로이케오는 귀화하지 않은 거주 외국인 혹은 머물도록 허가된 체류자였습니다.  이 사람은 어떤 장소에 머무를지라도 자신이 속한 나라의 시민권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스데반이 공회에 붙잡혀 갔을 때 회중들 앞에서 당당하게 외칩니다.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후손이 다른 땅에서 나그네가 되리니 그 땅 사람들이 종으로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 . . 모세가 이 말 때문에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 베드로는 이방인들이 기독교 신앙에 들어오게 되면, 세상에서는 나그네이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의 백성이라고 언급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의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언제나 나그네이며, 이 세상에는 그의 집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근본적으로 이 세상에 임시 거주자이며, 여행 길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이 세상을 그의 영구 거주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세상에서 언제나 잘못 이해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항상 주변 사람들의 방식이 아닌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상한 캐릭터로 간주되기 쉽습니다. 세상에 있는 동안 그리스도인은 순례자로 살아야 합니다. 그는 하늘나라 시민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었던 프리드리히 니체가 말한 것처럼  지상과 천상을 통틀어 절대적인 사실은 한 방향으로의 오랜 순종이 있을 때, 그 때에만 인생은 참 아름다우며 가치 있는 결과를 마련하게 됩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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