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이야기 3> 용서에 대한 오해
용서하기로 결단했을 때 얻어지는 여러가지 유익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용서를 망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쩌면 용서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일들이 있어서 그럴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용서에 대한 오해들을 다루어 봄으로써 용서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첫째, 용서는 부당한 행위를 용납하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상대방의 잘못을 묵인해 주거나 상대방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상대방의 입장을 변호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용서는 상대방이 잘못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버리기로 결단하는 것이고 복수하거나 개인적으로 응징하지 않기로 결단하는 것이지만 부당한 행위가 반복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 우리는 말없이 조용히 용서할 수 있지만, 필요하다면 상대방이 한 일이 자신에게 어떻게 상처가 되며 어떤 해를 끼쳤는지를 말할 줄 알아야 하며 상대방에게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도록 요청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용서는 잊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를 결단한 후에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에서 부담을 내려 놓으면 일상에서 그 일을 잊고 지낼 수 있기는 하지만 용서한다고 해서 일어났던 일을 잊어버려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용서하는 일은 결단할 수 있지만 잊는 것은 결단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또 잊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누군가 나를 강간하려고 했다면 용서는 하되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 조치를 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셋째, 용서는 잘못을 행한 사람에게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는 피해자가 상대방이 자기에게 진 빚을 탕감해주기로 결정할 수 있지만 용서한다고 해서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빚을 진 사람이 갚지 못하는 상황을 받아들여서 기한을 연장해 주더라도 그 빚을 꼭 갚아달라고 요청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잘못한 일의 종류가 사법적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경우라면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더라도 가해자는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받는 벌의 강도를 감해달라는 요청을 할 수 있지만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용서는 가해자가 잘못한 일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 쪽에서 가해자에게 가졌던 부정적인 감정들을 흘려 보내고 그 감정들의 지배를 받지 않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넷째, 용서는 상대방이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할 때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가해자가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한다면 용서하기가 훨씬 쉬울 것입니다. 하지만 상처가 매우 깊고 분노감정의 정도가 아주 큰 경우에는 상대방이 사과한다고 해도 용서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용서는 상대방이 사과하는 경우에 반드시 해야 하는 강제 사항이 아니라 피해를 당한 사람의 마음이 준비되었을 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용서는 가해자가 사과하지 않더라도 피해자의 마음이 준비된다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줄까요? 일곱 번까지 할까요?”라고 질문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해라”고 답하셨습니다. (마 18:21-22) 이 대화에서 예수님께서는 가해자가 찾아와서 사과한다면 용서하라는 조건을 달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용서는 가해자가 사과를 하든지 하지 않든지 관계 없이 피해자의 자의로 피해자의 마음이 준비되었을 때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용서는 피해자의 선택입니다. 피해 당사자가 아닌 사람은 상처 입은 사람에게 분노를 품고 지내는 대신 용서라는 대안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줄 수는 있지만 강제로 용서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용서는 마음이 준비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용서와 화해는 다른 것입니다. 용서는 해를 입은 사람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지만 관계를 원래 상태로 회복하고 화해하는 일은 양자가 서로 동의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용서하기로 결단을 하기는 했지만 아직 화해할 준비가 되지 않을 수 있고 혹은 피해를 입은 사람이 마음으로부터 용서하고 상대방과 화해를 하고 싶다고 해도 가해자 쪽에서 화해를 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섯째, 용서했다고 해서 상대방과 관계를 지속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누군가 끊임없이 나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말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용서해야 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 사람을 만난다면 그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입니다. 상대방이 더 이상 나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면 다시 그 사람에게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 현명합니다. 누군가 나에게 심각한 상처를 입혔을 때 그 사람이 잘못을 시인하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적절한 과정이 없이 과거의 관계로 돌아가는 것은 더 큰 상처를 가져올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용서가 피해자의 마음이 준비되었을 때 하는 것이라면 관계를 재개하는 것은 서로가 준비되었을 때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관계를 재개하기 위해서 상대방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며 그렇게 노력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성숙할 수 있다면 두 사람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될 것입니다.
위의 내용을 요약하면, 용서한다고 해서 상대방의 잘못을 잊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가 없으며 반드시 상대방과 관계를 지속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용서는 상대방이 한 일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상대방에게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상대방이 잘못한 일이 있기 때문에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는 상대방의 사과 여부와 관계없이 피해자 쪽에서 결정하는 것이며 아무도 강요할 수가 없습니다. 용서와 화해는 다른 것이므로 용서하면 상대방과 화해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용서를 망설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용서를 통해 우리는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흘려 보내고 부정적인 감정들에 붙잡혀 살지 않기로 작정하는 것입니다.
박진경 (Family Alive 대표, 홈페이지: www.familyalive.ca, 이메일: familyalive202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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