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이야기 4> 용서의 의미와 용서의 세 가지 차원
지난 글에서 우리는 용서가 잊는 것도 아니고 상대방이 한 행동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상대방에게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용서는 훼손된 관계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화해를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용서는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 주고 분노로부터 자유롭게 해 줄 수 있습니다. 용서한다고 해서 곧바로 상처가 아물거나 상대방에 대해 긍정적인 감정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를 괴롭히던 부정적인 감정들은 떠나 보내기로 작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용서한 사람은 더 이상 과거의 피해자로 살지 않고 긍정적 삶의 태도를 가지고 미래지향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용서는 상대방에 대한 분노감정을 버리기로 작정함으로써 분노감정과 함께 원한, 적개심, 쓴 뿌리 마음 등으로부터 상대방을 놓아주는 것이며 나와 상대방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는 “용서는 부당한 행동을 잊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 속의 증오를 놓아주는 것이다”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한편으로 용서는 나에게 해를 입히고 상처와 아픔을 준 사람에게 복수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반격하거나 되갚아주고 싶은 마음을 내려 놓는 것입니다. 나에게 부당한 일을 하거나 정의롭지 못한 일을 해서 손해를 끼친 사람이 법적인 차원에서 처벌 받는 일은 국가의 법에 맡기지만 개인적으로는 징벌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또한 상대방으로부터 사과 받을 권리를 내려 놓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나에게 해를 입힌 사람에게 정서적인 빚을 갚으라고 요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일에 대해 책임을 면제해 줄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정서적인 빚에 대해서는 면제를 해 주는 것입니다.
용서는 또한 나에게 상처와 아픔을 초래한 사람에 의해 지배 당하지 않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상처와 아픔을 초래한 사람에 대한 분노감정을 버리지 않고 있으면 우리는 그 일에 마음이 묶이게 됩니다. 그런 상태는 곧 그 사람에 의해, 혹은 과거에 이미 일어났던 일에 의해 지배 당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용서는 “변화시킬 수 없는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피해자로 살게 됩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영적 지도자이며 노벨평화상 수상자였던 데스몬드 투투는 “용서 없이는 미래가 없다”는 말과 함께 용서란 “우리 모두가 완전하지 않지만 선한 본질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에 대해 희망을 가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용서는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 감정들을 흘려 보내기로 작정함으로써 시작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거나 손해를 끼친 상대방을 끌어안는 것을 지향합니다. 상대방과의 관계를 재개하거나 화해의 차원까지 나갈 수 없는 경우라 할지라도 상대방을 한 인간으로서 받아들이고 그를 증오하지 않는 것이며 관계를 지속해야 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그 사람을 나의 삶에서 기꺼이 용납하고 적극적으로 그에게 선을 행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용서에는 세 가지 차원이 존재합니다. 용서는 한편으로 가해자를 위한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 용서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용서는 또한 하나님을 향한 것입니다.
첫째, 용서는 나에게 상처와 아픔을 준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용서는 나에게 어떤 형태로든 상처 혹은 해를 끼친 사람이 나에게 진 정서적 빚을 면제해 줌으로써 그에게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용서는 상대방에게 값없이 주는 선물입니다. 용서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용서는 그가 행한 일을 용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향해 관대함을 가지는 것입니다.
둘째, 용서는 자기 자신에게 선을 행하는 것, 곧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가져다 준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용서함으로써 우리는 상대방에게 자비를 베풀 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자신에게 진 정서적 빚을 면제해 줌으로써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용서하지 않고 있을 때의 부정적인 감정들과 긴장 및 변화시킬 수 없는 과거로부터 자신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용서는 자기 자신에게도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셋째, 용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않고 있을 때 우리는 상대방에 대한 분노감정만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실 하나님에 대한 원망도 함께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함으로써, 분노감정의 긴장을 풀어 줌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원망도 놓아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서로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라(엡 4:32)고 하신 하나님께 복종함으로써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14~15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우리가 용서받기 위한 조건이라기보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을 행한 다른 사람을 용서할 때 하나님과도 화목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좋을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용서는 우리에게 잘못을 행한 사람으로 인해 생긴 고통에 대해 상대방에게 값을 지불하라고 요구하지 않고 우리 자신이 그 고통을 감당하기로 작정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용서는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스스로 희생제물이 되셔서 고통을 당하신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우리를 위해 고통 당하도록 내주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길이며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성령 하나님의 위로와 임재를 경험하게 되는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엡 4:32)
박진경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객원교수, Family Alive 대표, 홈페이지: www.familyalive.ca, 이메일: inquiry@familyalive.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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