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 이야기 2) 화해가 지향하는 것
지난 글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화해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살펴보았으며 무엇보다 화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직무이며 사역이라는 점을 언급하였습니다. 그러나 화해는 특정한 경우에 어떤 특별한 목적을 위해 행해지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 속에 녹아 있어야 하는 삶의 원리이며 삶의 방식이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단독으로 살 수 없고 언제든지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 수 밖에 없는 존재이고 각자는 나름대로 다른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삶의 여러 국면에서 서로 다른 방식들과 이해관계들이 충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살기 때문입니다.
개인이나 집단이 경험하는 다양한 종류의 관계들 중에서 우호적이거나 중립적인 관계를 제외한 다른 경우들은 갈등 또는 긴장이 존재하는 관계입니다. 그런 관계 속에서 개인이 가지는 갈등이나 긴장의 무게는 개인의 삶에 큰 짐이 되며 때로는 그 개인의 삶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집단 간의 갈등이나 긴장도 그대로 방치하면 점점 더 그 간격이 벌어지고 집단들 사이에 적대감정이 강화되며 그 결과로 그 집단에 속한 구성원들이 서로의 삶을 파괴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우리에게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롬 12:18)고 가르칩니다.
화해는 어떤 이유에서든지 양자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이나 긴장으로 인해 생긴 장벽을 제거하고 상대를 향한 긍정적 감정을 활성화시켜서 긍정적 상호관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는 일은 한 순간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화해는 노력이 필요한 과정입니다.
화해를 시도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상태, 즉 양자 사이에 소원한 관계, 적대적 관계, 단절된 관계가 존재하게 된 원인, 다시 말해서 양자 사이에 장벽이 존재하게 된 원인과 과정을 살피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일들이 양자 사이에 장벽을 만들까요?
먼저, 양자가 상대에게 어떤 형태로든지 상처를 주거나 해를 끼친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먼저 피해를 입은 쪽이 상대방에게 감정적,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고 상대방을 향해 감정적, 심리적 장벽을 쌓게 됩니다. 이처럼 처음 관계가 소원해졌을 때 화해를 위한 시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처음의 상처는 섭섭함, 슬픔, 낙심 등의 감정을 거쳐 피해의식으로 발전하게 되고 또 다시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점점 더 높은 장벽을 쌓게 됩니다.
다음으로,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 양자 사이에 벽을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 상대방에 대한 선입견이 생길 수 있고 상대방에 대해 부정적인 판단을 하기 쉽습니다. 그리하여 실제로는 해를 끼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양자 사이에 장벽을 치고 단절된 관계 속에 지내는 일이 생깁니다.
이런 장벽들은 상호간에 우호적, 긍정적 관계를 가지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작용합니다. 더구나 이런 장벽들을 오래 방치하면 서로에 대한 이해가 왜곡되어 오해와 편견을 만들게 됩니다. 또한 오해와 편견은 상대방의 의도를 의심하게 하고 상대방을 향해 근거 없는 적개심, 적대 감정 등을 만들며 결국은 서로를 파괴하는 적대적 관계로 발전하게 됩니다.
양자 사이에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의 근원이 상대방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상대방을 “나쁜 사람” 혹은 “나쁜 놈들”이라고 규정짓게 되고 그러게 되면 상대방에 대한 적대감, 혐오감 등의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감정이 생깁니다. 이런 상태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이야기하게 되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자신이 겪은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기에게 가까운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면서 상대방을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게 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한 사람의 부정적인 경험과 감정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상대방 개인에 대하여 뿐 아니라 상대방이 속한 집단에 대하여까지 부정적인 생각, 감정, 선입견을 가지게 됩니다.
이처럼 한 사람의 경험은 그 개인이 속한 집단의 감정으로 발전하여 사회 전체에 암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양자 사이의 부정적 관계는 개인적 차원에 머물러 있을 때 화해를 통해 긍정적 관계로 전환시킬 수 았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화해는 각 개인의 삶의 원리가 되어야 하며 공동체 구성원들의 삶의 방식으로 자리잡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도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형제와 화목한 후에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화해가 우리의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해의 과정에서 우리는 상대방을 보는 관점을 전환시키고 상대방을 향해 우리의 마음을 열고 상대방을 우리 삶 속에 받아들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각 개인의 차원에서 삶의 방식으로 자리잡을 때 우리가 속한 공동체는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화해는 단순히 관계의 회복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해를 통해 우리의 관계는 갈등 이전의 상태보다 더 깊고 풍성한 단계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화해는 갈등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적극적으로 다루는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기를 비우고 상대방에게 귀 기울이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화해는 훈련이기도 합니다. 상대방에게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확장 시킬 수 있고 우리 자신의 편협함을 깨닫게 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화해의 과정에서 우리는 용서를 베푸는 사람이 될 뿐 아니라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화해가 지향하는 것은 단순히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타인들과 조화로운 삶을 사는 것이며 긍정적인 상호관계 속에 사는 것입니다. 화해의 과정에서 우리가 양보한 것들은 후에 더 큰 열매로 우리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화해는 우리 삶에 주어지는 예기치 않은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박진경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객원교수, Family Alive 대표, 홈페이지: www.familyalive.ca, 이메일: familyalive202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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