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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인내는 소극적 or 적극적(야고보서 5:7~11)_주님이 원하시는 교회 김철운 목사

인내는 소극적 or 적극적(야고보서 5:7~11)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 김철운 목사

오늘도 말씀을 가까이 할 때 성령충만 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최근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을 보면, ‘이렇게 해야 성공한다, 어떤 책을 읽어야 살아남는다, 돈은 이렇게 벌어야 한다’는 등 이 세상 속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채널들이 인기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어 공부만 하더라도 ‘이렇게 공부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이렇게 하면 단시간에 영어를 잘 할 수 있습니다, 이대로 따라하시면 입과 귀가 금방 열립니다’라고 소개하는 채널들이 인기 순위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채널들이 인기있는 이유는 경쟁하는 모든 것들이 이제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이런 포화상태 가운데 살아남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은 생존하는 방법을 찾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이 시대 가운데 장년들은 물론이고, 특히 젊은 청년들은 더욱 피폐해져 가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앞서 나아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인한 초조함, 평범하게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함, 이런 마음들이 모아져 우울증 같은 정신적 질병을 앓고 있는 이들이 점점 많아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더더욱 마음 아픈 것은 많은 크리스천 청년들도 다른 이들과 다를 것없이 똑같이 이런 상황 가운데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올해 3월 한국에서 발표된 ‘2022년 청년 삶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청년 10명 중 7명이 부모로부터 독립할 생각을 갖고 있지 않고, 또 청년 3명 중 1명은 번아웃(정신적 무기력으로 인한 탈진)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앞으로 결혼 계획은 30대 초반 청년의 43%만이 있다고 응답할 정도로 얼마나 불안함과 초조함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지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교회 청년들은 계속 줄어들고 있는데, 지난 5년간 개신교 20대 청년의 절반 가량이 감소됐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지금 청년들은 ‘연애/결혼’보다 ‘돈/일자리’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결혼을 하여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가야 하는 청년들이, 물질과 돈을 더 중시하는 가치관으로 바뀌어져 가는 안타까운 상황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의 이 시련의 시간들을 잘 견디어 가야 하는데 견디기 너무 힘겨워 먼저 포기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들이 지금의 시간을 견디기 보다 먼저 포기하는 걸까요? 그 이유는 그들에게 소망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 청년들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소망을 붙잡고 가야 함에도 그 소망을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에 신앙 생활 가운데에서도, 세상 속에서도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를 떠나는 크리스천 청년들의 공통적인 특징 중 하나는 성경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잘 읽지 않습니다. 이것은 단지 청년들만의 일의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싶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고,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성경을 잘 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지 않으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다 아는 것처럼 교만함으로 서 있을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교만함 가운데 있다 보니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이 모든 일들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참고 견디며 살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무 소망 없이 먼저 포기하고, 그냥 억울해도 참고 ‘시간이 다 해결해 줄거야’라는 작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이렇게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것을 “인내”라고 하는데, 특히 이렇게 단지 참기만 하는 것을 소극적인 기다림, 소극적 인내라고 합니다. 이 인내하는 삶은 모든 인생 가운데 시대를 불문하고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지만, 우리에게 특별히 크리스천들에게 요구되는 인내는 소극적인 인내가 아니라 적극적인 인내의 삶을 살아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약에서 “인내”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의 대부분은 적극적이고 강력한 단어입니다. 견뎌낼 수 없는 정도의 무게에서도 끝까지 참아내는 자세를 의미합니다. ‘핀들레이’라는 성경학자는 이 인내를 정의하면서 “고난 당하는 자가 수동적인 자세로 체념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용맹스러운 군인처럼 강건하게 서서 버티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합니다. 

얼마 전에 축구선수 이영표 선수가 인내에 대해 “나도 참을 수 있고 상대도 참을 수 있고 우리 모두 다 참을 수 있다면 그것은 인내가 아닙니다. 진정한 인내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진정한 인내가 시작한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인내는 더 이상 견딜 수 없고,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 때부터 끝까지 참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적극적 인내입니다. 

특히 우리 크리스천은 이 적극적인 인내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내는 성경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5:4 말씀을 보면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성경을 통해 인내와 위로를 얻습니다. 그리고 이 인내와 위로를 통해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적극적인 인내’를 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3가지 정도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 소망 가운데 인내하는 것

7절에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소망 가운데 인내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그 약속의 소망 가운데 인내함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이 분명히 이루어질 것임을 확신하며 참고 견디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시로 농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농사를 안 지어 봤기에 농사에 대해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저희 집에 텃밭을 키우시는 집사님의 모습을 보면서 농사는 부지런하지 않으면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제가 렌트하는 집 앞은 거의 텃밭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깻잎부터 시작해서, 오이, 토마토, 호박, 상추, 케일, 사과, 복숭아, 무화과, 마늘까지 정말 여러가지 채소와 과일이 잘 자랍니다. 저희 동네에 이런 집이 없습니다. 꽃과 채소, 과일이 집 들어가는 입구에 가득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정말 잘 자랍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그렇게 잘 자라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가 따르는 지 모릅니다. 집주인 되는 집사님은 늘 새벽 4시만 되면 일어나셔서 이 텃밭에 물을 줍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거름을 사와서 정성스럽게 뿌려줍니다. 시간 될 때마다 나와서 잡초를 제거하고, 물을 주고 하는 것이 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집니다. 그러면 어느 날부터 열매가 맺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한다고 다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날씨가 너무 더울 때 물을 바로 안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말라버리게 됩니다. 또 저희 동네에는 토끼가 많은데 이 토끼들이 시도때도 없이 찾아와 먹기도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저도 낙심이 되는데 직접 키우는 입장에서는 그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럼에도 이러한 모든 것을 참고, 묵묵히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하면서 지내는 이유는 분명 열매 맺을 것을 알고, 기대하며, 소망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 크리스천에게 인내는 소극적으로, 다가오는 어려움을 단지 견디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닥친 어려움 가운데,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을 하면서 견디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내는 농부가 열매를 바라는 소망에 의해서 가능한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그 소망의 열매를 바라보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저는 올 해 4월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개척 멤버도 없고, 아무 재정도 없이 그냥 교회를 개척하라는 마음을 주셔서 맨 땅에 헤딩하듯 시작했습니다.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저희 가족만 모여 예배 드리고 있습니다. 전도를 마음껏 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 또 교회라고는 하지만 작은 창고를 빌려서 예배를 드리고, 그 창고로 오기에는 교통편이 쉽지 않다 보니 성도 한 분 오는 것이 정말 어렵게 느껴집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많은 분들이 위로의 말씀을 저에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성도가 올 거예요, 목사님은 잘 하시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에 분명 함께할 자들을 붙여 주실 거예요.” 라고 저를 아는 많은 분들이 이야기 해주십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네 저도 이것을 믿습니다. 교회를 시작하라고 말씀하신 분도 주님이시고, 이 교회의 주인도 주님이시기에 주님이 원하시는 때에 분명 이루실 것을 말입니다. 성도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제가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할 것입니다. 끊임없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애쓸 것입니다. 주님께서 일하실 것이라는 소망이 있기에, 주님께서 함께 하시며, 열매 맺게 하실 것에 대한 소망이 있기에 지금의 시간을 기쁨으로 인내하며 나아갈 것입니다. 주님의 약속을 붙잡고 주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바라보며, 기대하며 나아갈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저에게 인내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삶 가운데도 인내의 시간이 분명 있습니다. 여러분의 환경,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가운데 어렵고, 힘든 시간들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시간 가운데 낙심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소망 가운데 열매 맺는 것을 기대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다하며, 그 가운데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그 때까지 인내하시길 바랍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필요한 때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주셔서 그것들로 인해 풍성하게 열매 맺는 것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꼭 풍성한 열매를 맺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굳건함 가운데 인내하는 것

8절 말씀입니다.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적극적인 인내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굳건함 가운데 인내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실 이 성경을 처음 접하는 원독자들에게 참 어려운 말씀입니다. 야고보서의 수신자, 즉 원독자들은 스데반의 순교 이후 기독교에 대한 핍박과 박해로 인해 여러 지역에 흩어진 유대인 기독교인들입니다. 믿음의 시련과 고난 중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특히 야고보서 5장은 1절부터 6절까지는 부한 자들을 향해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는 부한 자들로부터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형제들을 향해 말하고 있습니다. 즉 고통 가운데, 어려움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부한 자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은 자들에게 맞서 싸우라 하지 않고,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상황 가운데 있다고 생각해보면 이 말씀이 귀에 들어올까요? 

아니요. 지금의 삶이 너무나 힘들어 죽겠는데, 거기에다 부당한 대우까지 받는다면 아마 피해의식 때문에 더욱 힘들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절망적이고 마음은 낙심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기보다 다른 방법을 찾으려 애썼을지도 모릅니다. 마음은 흔들리고 무너져 내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그들에게 야고보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굳건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신뢰함으로, 주님의 그 약속을 신뢰함으로 흔들리지 말고 굳건하게 마음을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요? 주의 강림이 가까이 왔기 때문이라고 야고보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참고 마음을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지금 우리의 삶도 쉽지 않습니다. 조금만 어려운 일이 닥치면 우리의 마음은 바람 앞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요동칩니다. 나만 뭔가 잘 안되는 것 같고, 나만 실패자인 것 같고, 내 인생만 광야 가운데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지 않습니까? 옆에 사람을 보면 다 잘 되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안되는지 마음이 혼란스럽지 않나요?

이런 우리에게 주님은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다시 오시겠다고, 그리고 곧 오시겠다고 말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시면 우리의 모든 고난과 아픔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면 모든 것을 회복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주님의 약속을 끝까지 붙자고 여러분의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찬송가 중 하나가 546장입니다.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영원토록 주를 찬송하리라 소리높여 주께 영광 돌리며 약속 믿고 굳게 서리라. 굳게 서리 영원하신 말씀 위에 굳게 서리 굳게 서리 그 말씀 위에 굳게 서리라” 아멘. 이 찬송가의 내용처럼 영원하신 말씀 위에 여러분의 마음을 굳건하게 세우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원망함없이 인내하는 것

9절 말씀에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적극적인 인내는 형제를 사랑하며, 원망함없이 인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원망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 성경의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아닙니까?

그런데 삶이 힘들면 이것도 쉽지 않습니다. 인내하며 살 때 제일 힘든 것, 그러면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원망하는 것, 불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은 언제 생기나요? 사실 원망과 불평은 무엇인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생기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입니다. 

제가 교회를 개척하고 3달쯤 지났을 때, 그러니까 지난 6월 18일 주일에 “기도하며 기대하라”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사무엘상 1장에 있는 한나의 이야기로 함께 나눴습니다. 설교 하면서 한나와 같이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확신과 신뢰로 기도하며 기대하는 우리 인생이 되기를 축복하며 나눴습니다. 

그런데 그 날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갑자기 제 마음 가운데 ‘우리 가족만 예배 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이 곳에 다른 분들이 와서 함께 예배 드리는 날이 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에서 말씀 드렸듯이 저희 교회에 찾아 오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우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걸 저 혼자 생각으로 끝냈으면 됐는데, 아무 생각없이 가족들 앞에서 말로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즉 내 생각대로 되지 않으니까 괜히 저희 가족에게 원망 아닌 원망을 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바로 와이프와 아이들이 방금 “기도하며 기대하라”고 설교했는데 무슨 말 하는 거냐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믿음을 가장 많이 강조하는 내가 정작 믿음으로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일주일 내내 제 안에 맴돌았습니다. 정말 저는 너무나 부족한 자였습니다. 설교자가 설교한 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도리어 너무나 부족한 믿음으로 있는 제 모습에 너무나 부끄럽고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일주일동안 참 많이 회개했습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조차 죄송했습니다. 눈물로 주님 앞에 엎드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주일 예배 시간에 가족들에게 정식으로 사과했습니다. 주님께도 다시 회개하며 나아갔습니다. 이 날 설교 제목은 “믿음의 삶을 사십시오” 였습니다. 바로 제 자신에게 하는 설교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 연약한 자들입니다. 어려움을 당하면 우리는 너무나 쉽게 다른 사람을 원망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먼저 모범을 보인 믿음의 선지자들이 있습니다. 야고보는 이 믿음의 선지자들을 통해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고 말씀합니다. 10절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야고보는 이제 실제로 고난 가운데 인내하는 삶을 살았던 선지자들에 대해 말하면서 그들을 본받으라고 합니다. 선지자들이 어떤 자들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던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들에게도 고난과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지금 당하는 고난과 어려움이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며, 이 시간을 잘 인내함으로 이겨낸 선지자들을 통해 우리 또한 이 시간을 인내함으로 잘 이겨 나갈 수 있다는 위로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에는 고난과 어려움의 시간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을 인내함으로 보내야 합니다. 단지 시간을 보내며 기다리는 소극적인 인내가 아니라 십자가를 바라보며 이 시간 가운데 새 일을 행하실 주님을 의지하며 적극적인 인내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소망가운데 인내하며,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굳건함 가운데 인내하고, 원망하지 말며, 믿음의 모범을 보인 믿음의 선지자들을 본으로 삼아 적극적으로 인내함으로 승리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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