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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악인의 번영은 한시다_요한계시록 17:9-18_신윤희 목사(하늘향한교회)

악인의 번영은 한시다_요한계시록 17:9-18

신윤희 목사(하늘향한교회)

‘한시(限時)’라는 말이 있다. 일정한 기간 동안만 유지되는, 일시적(Temporary)이라는 뜻이다. 마트에서 하는 ‘한시적 할인’ 행사처럼 정해진 기한이 지나면 끝나는 것을 말한다. 캐나다에서 채용 과정을 보면 On call(임시 호출)에서 시작해 Temporary(임시직)를 거쳐 결국 Permanent(정규직)로 나아간다. 세상의 권세와 악인의 번영은 아무리 강해 보여도 결코 영원한 정규직(Permanent)이 될 수 없는, 그저 한시적(Temporary)인 현상일 뿐이다.

요한계시록 17장 말씀을 묵상하며 가장 크게 다가온 구절이 바로 10절과 12절의 “잠시 동안”과 “한동안”이다.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하나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시 동안 머무르리라” (10절)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과 더불어 임금처럼 한동안 권세를 받으리라” (12절)

요한계시록 17장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한 진실을 선포하신다. 악인의 번영은 한시적이며, 그 끝은 정해진 심판과 멸망이라는 것이다. 현실에서 악인은 번영하는가? 그렇다. 번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요한계시록 17장 1절에서 6절은 ‘큰 음녀’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녀는 자주색과 붉은색 옷을 입고 금과 보석으로 화려하게 치장했다. 이는 세상이 추구하는 덧없는 부와 권력, 쾌락을 상징한다. 

오늘날 우리도 미디어와 세상 문화 속에서 불의한 방법으로 부를 쌓고 권력을 누리는 자들을 자주 목격한다. 그들의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며 때로는 신앙이 흔들리거나 낙심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그 화려함에 현혹되어 세상의 방식을 따른다. 숏폼 영상을 보면 정말 그렇게 보인다. 그 실상은 금잔에 담긴 더러운 독주일 뿐이다. 악인의 번영은 눈속임에 불과하며, 영혼을 병들게 하다가 결국 ‘잠시 동안’의 시간이 지나면 끝이 난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이 조선을 영원히 지배할 것처럼 보이자 시간이 지날수록 일본의 앞잡이가 되거나 변절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마침내 조선이 독립을 맞이했다. 해방 후 매국노들에게 왜 조국을 버리고 변절했느냐고 물었더니 그들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이렇게 조선이 빨리 해방될 줄 몰랐다. 일본이 망할 줄 알았다면 끝까지 버티었을 것이다.” 

그들을 우리는 매국노라고 부르지만, 사실 우리가 같은 처지에 있었다면 과연 우리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었을까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지금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제의 패망과 대한의 독립이 역사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투명한 현실 속에서도 그렇게 자신있게 끝까지 버틸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이 뼈아픈 역사를 통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마지막 심판의 때에 우리 입에서 “세상의 화려함이 이렇게 빨리 끝날 줄 몰랐다”는 동일한 후회의 고백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악인의 번영이 한시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요한계시록 17장 9절에서 14절이 그 이유를 밝혀준다. 음녀가 앉아 있는 일곱 산과 열 뿔은 세상의 정치적 권력과 제국을 상징한다. 이들은 한동안 번성하며 교회를 핍박하지만, 결국 정해진 시간이 되면 서로 다투고 무너지게 된다. 여기에 아주 놀라운 영적 원리인 ‘악의 자멸력’이 작동한다. 악은 스스로 자멸하는 속성을 가졌다.

요한계시록 17장 16절은 이렇게 증언한다.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은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의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뭉쳤던 자들이 결국에는 서로를 미워하고 뜯어먹으며 파멸한다는 것이다.

1970년대 캄보디아의 폴 포트 정권이 자행한 ‘킬링필드’가 이 악의 자멸력을 역사에 선명하게 새겨 놓았다. 폴 포트는 극단적인 공산주의 이상향을 핑계로 국가를 지탱하는 지식인, 의사, 교사 등을 무참히 학살했다. 심지어 안경을 썼거나 손에 굳은살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처형했다. 

이 잔혹한 숙청은 마치 암세포가 자신이 기생하여 살아갈 숙주를 파괴하는 것과 같았다. 사회를 유지할 생명력을 스스로 끊어버린 결과, 나라에는 극심한 기근과 전염병이 덮쳤다. 정권 내부에서는 책임을 전가하며 끝없는 의심과 상호 숙청이 일어났다. 결국 폴 포트 정권은 외부의 공격이 있기도 전에, 스스로 만들어낸 파괴의 무게에 짓눌려 불과 4년여 만에 철저히 붕괴하고 말았다. 철의 녹이 제 몸을 갉아먹듯 악은 스스로를 파괴한다.

나치 독일의 패망도 악의 자멸력을 보여준다. 악은 결코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지 못하고 끝없이 팽창하려는 탐욕을 가지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서부 전선에서 승기를 잡았음에도 교만에 빠져 소련과의 불가침 조약을 깨고 무리하게 동부 전선을 열었다. 이 끝없는 탐욕이 결국 감당할 수 없는 ‘양면 전쟁’을 자초하여 거대한 군사력을 스스로 분산시킨다. 또한 패색이 짙어지자 히틀러는 자신의 유능한 장군들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숙청하며 독일 군부의 역량을 안에서부터 깎아먹었다. 악의 탐욕과 불신이 거대한 제국을 무너뜨린 것이다.

C.S. 루이스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묘사한 지옥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그곳에는 진정한 연대나 희생,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고, 쓸모가 없어지면 가차 없이 삼켜버리는 철저한 포식의 세계다. 악은 갉아먹을 선한 숙주가 사라지는 순간, 결국 자기들끼리 물어뜯고 삼키며 자멸의 길을 걷는다. 요한계시록의 거대한 악의 제국 바벨론 역시 영원할 것 같았지만, 그 안에 가득 찬 교만과 탐욕 때문에 결국 스스로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우리가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이 모든 과정조차 하나님의 완벽한 통제 아래 있다는 사실이다. 요한계시록 17장 17절은 말씀한다. “이는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그들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그들의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라.”

이 세상의 모든 악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목적에 이바지할 뿐이다. 악한 권세자들은 자기 뜻대로 세상을 지배하고 이긴 줄 착각하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도구로 쓰이고 있다.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에서 하얀 마녀가 아슬란을 죽이고 환호했지만, 그것이 도리어 더 깊은 마법의 법칙에 따라 부활을 가져온 것과 같다. 사탄도 마찬가지였다. 대제사장과 가룟 유다의 악한 마음을 이용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완벽하게 승리했다고 착각했다. 자신이 가진 ‘죽음’이라는 최고의 무기로 하나님의 아들마저 처리했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3일 뒤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그들의 모든 계략은 수포로 돌아갔다. 오히려 사탄이 휘두른 그 죽음의 무기가 온 인류를 살리는 생명과 부활의 통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참으로 어리석은 악의 완벽한 패배다.

요한계시록 17장 14절은 최종적인 승리자를 이렇게 선언한다.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결국 예수님이 이기신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한 성도들도 승리한다. 세상의 악이 아무리 기세를 떨쳐도 성도는 낙심할 필요가 없다. 악은 스스로를 유지할 생명력이 없으며 자멸하지만, 오직 십자가로 증명된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만이 영원하다.

우리는 한시적인 세상의 번영에 현혹되지 말고, 영원한 가치와 소망을 추구해야 한다. 악인의 화려한 번영은 멸망으로 끝이 나지만,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의지하고 묵묵히 말씀대로 살아가는 진실한 성도들은 영원한 구원과 영광스러운 승리를 누리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오늘도 예수님의 푯대를 향해 한 걸음을 내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