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왕(마 21:8–9)
밴쿠버 갈릴리교회 김광식 목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을 기념하며 예배하는 날입니다. 이날 많은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치며 왕을 환영했습니다.
겉으로 보면 참으로 영광스러운 장면 같아 보입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을 환영하고, 높이며, 모든 시선이 그분에게 집중되는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장면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가 기대했던 왕의 모습과는 분명 다른 모습을 보게 됩니다. 왕이 오시는데, 말이 아니라 나귀를 타고 오십니다. 힘과 권력의 위엄이 아니라, 겸손과 낮아짐의 모습으로 주목을 받으십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그분 앞에서 우리는 어떤 마음과 삶의 자세로 그분을 모셔야하는 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허락된 말씀을 통해 은혜의 감격이 회복되길 원합니다.
먼저 1. 나귀를 타고 오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1) 순종의 길을 걸으신 분 (1–5절)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오늘 본문 1-5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두 제자에게 한 가지 명령을 내리십니다. 그 명령은 이렇습니다. 맞은편 마을로 가면 아무도 타보지 않는 나귀 새끼가 있을 텐데 그것을 풀어서 내가 끌고오라 만일 누가 왜 허락 없이 그것을 가져가냐고 말하면 주께서 쓰시겠다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즉시 내어줄 것이라 라는 것입니다.
마 21: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마 21:3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제자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했고 예수님은 그들이 가져온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여러분 이 장면을 보면.. 예수님의 행동이 어떻게 보이십니까?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처럼 보이죠. 조금은 무례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주인이 있는 동물을 값도 지불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병행 본문인 누가복음에보면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셨는데 뭔가 지나친 요청처럼 보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런 비상식적인 요청을 하실 때는 뭔가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4절과 5절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4절과 5절 말씀은 스가랴서 9장 9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인데. 한번 말씀을 보겠습니다.
마 21:4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선지자가 예언한 말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말씀이었냐면..
마 21: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님께서 새끼 나귀를 가져오라고 말씀하시고 그 나귀를 타신 이유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성취하기 위해서 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갑자기 제자들에게 주인이 있는 나귀를 가져오라는 명령을 내리신 이유는 예언된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약속의 말씀을 그대로 성취하시는분, 약속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순종의 길을 걸어가시는 분임을 알게됩니다. 그분의 순종은 자원함으로, 주도적으로, 의지적으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그러고보면 예수님의 모든 생애는 이와같이 약속을 성취해가는 순종의 여정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미 5:2)도 약속의 성취를 보여주는 순종의 사건이었고, 애굽으로 피신하게 될 것(호 11:1),
갈릴리를 중심으로 사역하게 되실 것(사 9:1-2), 비유로 가르치실 것(시78:2)들도, 그리고 마침내 가까운 친구에게 배신(시 41:9)을 당해 은 삼십에 팔리실 것(슥 11:12),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게 되실 것들(출12:46, 시 34:20)도 모두 약속을 성취해 가는 순종의 사건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순종을 가르치신 분이 아니라 순종의 길을 삶으로 살아내신 분이시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 그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가하면 예수님은 어떤분이신가?
2) 겸손의 길을 걸으신 분 (6–7절)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오십니다.
마 21: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당시 왕이라면 말이나 병거를 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장 연약해 보이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나귀 새끼를 타신 것입니다. 얼마나 우수꽝스럽습니까?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방식입니다. 가장 낮은 방법으로 오셔서 사랑과 헌신으로 섬기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신 것입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이 유한한 인간이 되셨고,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오신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해 주고 있는 말씀이 빌립보서 2장이죠.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처럼 힘과 권력으로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겸손으로 드러나고 낮아짐으로 완성되었습니다. 나귀를 타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겸손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또한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어떤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까?
3) 배신의 길을 걸어가신 분 (8–9절)
마 21:8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마 21: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무리는 예수님을 향해 외쳤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이 외침은 이런 의미입니다.
“당신이 바로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입니다!”, “지금 우리를 구원해 주십시오!” 이 외침은 단순한 환호가 아니라 신앙 고백과 간구가 함께 담긴 선언입니다. 당신이 아니면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라는 신앙의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것과 같이 이 환호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불과 며칠 뒤, 같은 입술로 정반대의 외침이 이어집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외치게 됩니다. 마 27:22-23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같은 입술에서 나온 외침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연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인간적인 기대가 있을 때는 높여 찬양하지만 그 기대가 무너지면 즉시 배신해 버리는 존재, 힘이 있어 보일때는 왕으로 모시겠다고 노래했지만 힘을 잃은 것처럼 보이면 외면해 버리는 존재, 그게 바로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런 인간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무리들을 위한 그 길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그들의 배신을 아시면서도 끝까지 그들을 위해 길을 걸어가십니다. 배신을 극복 하신 왕,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그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4) 사명의 길로 가시는 분 (10–11절)
마 21:10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마 21:11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예수님은 소동의 한 복판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이 향하시는 길은 분명했습니다. 예수님이 향하시는 길은 예루살렘이었고 그곳의 십자가였습니다.
왜 십자가였는가? 그분의 목적은 그저 우리 인생들의 삶의 문제만 해결하러 오신 분이 아니라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 곧 죄의 문제, 영혼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그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정리해보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에게 아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은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 순종의 길을 걸어가신 분이시고 권력이 아니라 겸손의 길을 선택하신 분이시며, 배신을 극복하셨고 십자가의 사명을 끝까지 이루신 분이십니다.
2.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반드시 한 가지 질문과 마주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이 길을 가셨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분명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 길을 선택하시고 가신 것입니다.
스스로는 구원할 수 없는 존재인 우리, 죄의 사슬에 묶여 있는 존재인우리, 하나님 없이는 단 한순간도 살아가던 존재인 우리를 위해, 그분은 순종하셨고 낮아지신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참 자유와 평안을 주시기 위해, 친히 배신을 당하셨고 십자가에서 모진 고통과 질고를 당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53:5-6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의 길은 단순히 고통의 길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기 위한 구원의 길이었고 하나님과 우리를 다시 이어주는 생명의 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사실이 우리 마음에 깊이 새겨질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때 우리의 심령에는 감사가 살아나고 기쁨이 회복될 줄 믿습니다. 이 종려주일 거져 왔다가 돌아가는 심령이 아니라 이 은혜의 사건으로 인해 구원의 감사와 기쁨이 회복되길 축복합니다. 개인과 가정과 이 땅 밴쿠버와 열방 가운데.. 이 감사와 기쁨이 회복되길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나누고 기도하겠습니다.
3. 이 은혜를 깨달은 사람의 삶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은혜를 참으로 깨달은 사람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습니다.
– 우리는 이제 순종의 왕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해되지않는 순간에도, 결과가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순종의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 우리는 겸손의 왕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자신을 드러내 기보다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삶을 선택하게 됩니다.
– 우리는 배신을 극복하신 왕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사람의 반응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세상이 등을 돌리고 기대와 다르게 반응할지라도 우리는 그 길을 멈추지 않습니다.
– 우리는 사명의 왕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삶, 영혼을 향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갈릴리교회에 주신 사명 무엇입니까? 예배자와 제자와 일꾼을 세워 파손하는 것입니다. 그 사명을 멈추지 않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은혜를 경험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은 억지로 만들어내는 변화가 아닙니다. 은혜를 알기 때문에 일어나는 변화이며,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반응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은 부담이 아니라 기쁨이 되고, 의무가 아니라 감사가 되는 줄 믿습니다.
결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종려주일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날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마음을 더 가까이 느끼는 날입니다.
오늘 우리가 만난 예수님은 순종의 왕이시고, 겸손의 왕이시며, 배신을 극복하신 왕이시며 십자가로 가신 구원의 왕이십니다. 그리고 그 왕이 나를 위해 그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은혜에 반응하는 인생되길 원합니다.
순종의 길을 선택하고 낮은 자리에서 섬김의 살을 선택하고 세상의 반응에 흔들리지 않는 삶, 하나님 나라와 영혼 구원을 위한 삶을 선택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VGC 하늘 가족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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