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단상]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_사도행전 6:1~7_밴쿠버복음자리교회 조대호 목사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_사도행전 6:1~7

밴쿠버복음자리교회 조대호 목사

  먼저 “1호”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우리 교회가 만으로 10주년이 되었는데, ‘안수집사님과 시무권사님’을 세우기는 오늘이 처음입니다. 오늘 우리 복음자리교회의 ‘첫 열매’가 되시는 다섯 분의 임직자들과 함께, 우리 교회가 더욱더 한 마음으로 주의 나라와 우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담대히 밝히고 증거하는 생명 공동체가 되길 축원합니다.

  우리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되면 나타나는 두 가지 현상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아야 하고, 그렇다고 자만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먼저 Revival is coming “부흥”이 일어날 것입니다. 복음이 전파되면 영적으로나 양적으로 ‘부흥’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베드로가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에 복음을 전하자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성적으로나 상식으로 볼 때에 이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사건입니다. 유대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율법주의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임으로, 사실상 그들은 ‘승리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더이상 예수의 영향력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설령 있더라도 ‘구심점’을 잃었기 때문에 처음엔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죽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그분의 부활이 오히려 더 강력한 복음이 되버렸습니다. 우리가 이 복음으로 살아가고 또 이 복음을 전하는데, 부흥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갑작스럽든, 예상치 못했든 간에 ‘부흥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이상하게 여기지도 말고, 그렇다고 자만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Relational conflict will arise “인간적인 갈등”이 나타날 것입니다. 사람이 모여드는 곳에는 갈등이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곳엔 ‘선한 사람과 선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 이해하는 사람과 오해하는 사람 그리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과 사람을 찾는 사람이 함께 있습니다. 교회도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혹시 “왜들 이러지”라는 마음이 생긴다면, 먼저 여러분 자신의 영적상태를 살펴서 우리의 영이 상황에 휘둘리지 않도록 기도하며 재무장하시기 바랍니다.

  이렇듯 이 모든 일들이 예루살렘 교회에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특히 갈등을 일으킨 ‘이슈들’은 갑작스럽게 생겼다기 보다는 조금씩 쌓여갔던 것이 폭발해 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이슈는 ‘불공평함’이었다. 유대인이지만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태어났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와 살게 된 ‘디아스포라’들이, 본토 토박이들 보다 식량을 공평하게 받지 못했다고 느꼈습니다.

사실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불공평함’은 객관적인 판단이 아니라 주관적인 판단이 훨씬 많습니다. 물론 ‘교회에서 식량을 나눠주는 일’도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수가 있을 수도 있지만, 내 사정과 형편을 내가 어떻게 이해하면서 살고 있느냐에 따라, 보고 들은 것에 대한 판단과 반응은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식량을 나누는 일은 ‘사도들’이 직접했습니다. 믿을 만하고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 일을 했음에도 이미 자신의 삶을 비관하면서 살던 헬라파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누가 식량을 나누어 주든 상관없이 원망과 불평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예루살렘 교회에서 사정이 서로 다른 두 무리의 문제는 ‘정량 배급’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열 두 사도들이 모든 성도들을 불러 모아서, “식량을 나누는 일을 감당할 7명을 뽑아서 그들에게 이 일을 맡기자”고 제안하기에 이릅니다. 식량 나누는 일이 전문 지식을 필요로 하거나 자격증이 필수인 일도 아닙니다. 어찌 보면 단순 노동처럼 보이는 이 일을 감당할 사람들의 조건이 의외로 까다로웠다는 것이 우리들을 주목하게 만듭니다.

  일단 그 많은 성도들 중에 7명만 세웠습니다. 그것도 사도들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교회의 성도들이 택하고 결정했습니다. 그들 안에는 이 갈등의 근본적인 배경이 되었던 토박이 유대인들도 있고, 디아스포라 유대인도 있었고, 신앙의 깊이와 성숙함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존해 있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들 모두가 신뢰할 수 있고 인정할 만한 사람들이 뽑혀 사도들에게 천거 되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들의 본분, 즉 “기도하고 말씀을 전하는 일에 사도들이 전념”할 수 있도록, 이 일을 감당해 내야 했었습니다. 한 마디로 7명의 일꾼들은 사도들과 성도들 모두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 되게 하는 아주 중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일을 감당함에 있어서 필요한 조건과 실력은, 어떻게 하면 ‘이들을 향한 주님의 마음을, 이 식량 나누는 일 속에 녹여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다음 몇 가지 조건을 성도들에게 제시해서 여기에 합당한 사람을 천거하라고 했습니다. 

  먼저 “성령에 충만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오늘 특별히 세움을 받는 ‘안수집사님들과 권사님들은 앞으로 더욱 성령에 충만한 일상을 살아 가셔야 합니다. 다만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성령님께 항상 도움을 구하며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성령께서 여러분을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으로 충만케 하실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성도들과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 주시는 마음으로 충만함을 입는 임직자들과 우리 모든 교우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또한 새로운 사명으로 세워질 일꾼들은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것 역시 성령께서 ‘지혜’를 주실 것인데, 머리로 하지 않고 ‘따뜻하지만 때론 냉철한 가슴’으로 맡겨진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뽑혔던 7인의 일꾼들 중에는 유대인들도 있고 헬라 출신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신의 출신 신분에 따라 마음이 더 가는 곳이 생기는게 인간의 본성일텐데, 이런 유사한 분위기 때문에 오해하고 상처를 받은 성도들이 더이상 생기지 않고, 반대로 유대 본토 사람들 역시 역차별에 대한 오해를 갖지 않도록 주님이 주시는 지혜로 충만해야 합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에 상처를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 오랜 상처가 교회에서 치유되는 과정에서 불평과 원망으로 나타났다는 것을 알기에, 이 사람들을 품어주고 이해해 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불공평함과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지혜가 ‘일꾼들’에게 필요했던 것입니다.

끝으로 “성도들에게 칭찬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조건은 단순히 “그 사람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하는 사람들의 평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에 전제 했었던 “성령에 충만하여 지혜가 가득한 사람”을 말합니다. 여러분들도 공감하실 것입니다, “그 사람 정말 괜찮아”라고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평가와, ‘내가 느낀 바’가 다를 때가 있다는 것을…본토 유대인이나 디아스포라 유대인 모두에게 ‘칭찬’받는 사람이라면, 그들은 분명히 평소에도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항상 화목하게 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교회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인지라 개인적으로 마음이 가는 사람들이 있고 더 친근함을 느끼는 대상이 있기 마련입니다. 또한 나와 결이 다르기 때문에 어울리기 쉽지 않은 사람들도 교회 안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가 다섯 분의 임직자들을 세웠을 때에는 모두를 섬기며 연합을 이룰 수 있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결정했음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한곳에 치우치지 않고 모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주시길 기도합시다.

이러한 조건을 갖춘 7명의 사람들을 성도들이 뽑아 사도들에게 알렸고, 사도들은 성도들의 일치된 마음을 그대로 받아 더블 체크 하지 않고 그들에게 “안수함”으로 사명을 감당하게 했습니다. 특히 이들 중에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첫 순교자 스데반과,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또 에디오피아 내시에게도 복음을 전해서 그에게 세례를 줬던 ‘빌립’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들 7명을 우리는 “일곱 집사”, 즉 사도들이 안수하여 특별히 세움을 받은 일꾼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의 사역이 단순히 식량을 나누는 허드렛 일이 아니었고, 사도와 함께 열매 맺게 하는 역할이었음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6:7). 성령이 역사하고 본이 되는 교회 공동체의 열매가 되었던 귀중한 일꾼을, 오늘 우리 교회에서 온 성도들이 함께 기도함으로 세워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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