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입니다

예수님께서 ‘말 못하는 영’에 사로잡혀 있는 소년을 고쳐 주시는 두 번째 장면은 예수님과 소년의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한 치유 과정입니다 (9:20-27). 마가는 이 과정에서 제자들과 무리들을 등장시키지 않고 그저 주변에서 예수님과 소년의 아버지와의 대화를 지켜보게 합니다. 이러한 방법은 마가가 사용하는 독특한 네러티브(Narrative) 기법으로, 주변인물의 신앙을 보여주어서 주인공인 제자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네러티브 기법을 ‘foil’이라고 부릅니다(Christopher D. Marshall, Faith as a Theme in Mark’s Narrativ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9, p. 111, 228). 마가는 이러한 네러티브 기법으로 ‘말 못하는 영’에 사로잡혀 있는 소년의 아버지와 예수님의 대화를 통하여 제자들이 왜 소년을 고쳐주지 못했는지 설명합니다.

(막 9:20) 그리고 그들이 그를 그(예수)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 영이 그(예수)를 보았을 때 즉시 그(아이)를 격렬하게 흔들었고, 그(소년)가 땅에 넘어져 입에서 거품을 흘리며 뒹굴었습니다. (21) 그리고 그(예수)가 그의 아버지에게 질문했습니다. “이러한 일이 그(소년)에게 얼마의 시간 동안 일어났느냐?” 그리고 그가 대답했습니다. “어릴 때부터(입니다.) (22) 그리고 그것이 그(소년)를 죽이기 위해서 자주 불과 물 속으로 던졌습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무엇을 할 수 있다면,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 도와주십시오.” (23) 그러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당신이 할 수 있다면’이라고 했느냐?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24) 즉시로 그 아이의 아버지가 큰 소리치며 말했습니다. “나는 믿습니다.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십시오.” (25) 그리고 예수님께서 무리가 함께 달려오는 것을 보셨을 때 그 더러운 영을 꾸짖으며 그것(더러운 영)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말을 못하고 듣지 못하는 영아, 내가 너에게 명령한다. 그로부터 떠나라. 그리고 다시는 그에게 들어가지 말라. (26) 그러자 [그 영이] 큰 소리를 지르고, 그리고 [그 아이에게] 심한 경련을 일으키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마치 죽은 것 같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그가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27) 그러나 예수께서 그의 손을 잡으신 후 그를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일어났습니다. (Translated by YG Kim)

제자들이 소년을 데리고 왔을 때 ‘말 못하는 영’은 즉시(euthus: immediately) 그 소년을 격렬하게 흔들어서, 입에서 거품을 무는 심한 경련을 일으켰습니다(막 9:20). 마가는 예수님과 아버지의 대화를 통하여 이 소년이 어릴 때부터 ‘말 못하는 영’에 사로잡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막 9:21). 특별히 마가가 사용하는 “어릴 때부터”라는 헬라어 부사 ‘파이디오센’(paidiothen)은 ‘갓난 아이’을 표현하는 ‘파이디온’(paidion: infant)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고대 사회 가운데에서 어린 아이가 병에 결려 소년이나 소녀가 될 때까지 병 고침을 받지 못했다면, 그 병은 더 이상 호전되지 않고 만성으로 진행되는 불치병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Adela Yarbo Collins, Mark: a commentary, Fortress Press, 2007, p. 438).

따라서 마가는 소년의 아버지와 예수님의 대화를 통하여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기적의 필요성을 더욱 강조합니다. 소년의 아버지는 ‘말 못하는 영’이 자신의 아들을 죽이기 위해서 자주 불과 물 속에 던졌다고 말합니다(막 9:22a). 마가는 소년의 아버지의 고백을 통하여 ‘말 못하는 영’이 얼마나 파괴적인(destructive) 존재인지를 보여줍니다.

소년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을 고치기 위해서 여러 방법을 시도했지만 고치지 못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예수님께 “그러나 만일 당신이 무엇을 할 수 있다면,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 도와주십시오.”(막 9:22b)라고 도움을 요청합니다. 현재 소년의 아버지의 믿음은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아들의 고통을 지켜보면서 소년의 아버지는 지속적인 실패를 경험했고, 그 결과 예수님 앞에서도 불완전한 믿음으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완전한 믿음의 고백은 예수님으로부터 참된 믿음이 무엇인가에 관한 가르침의 배경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소년의 아버지의 질문에 반문하시면서 ‘말 못하는 영’에 사로잡힌 소년을 고치는 문제의 초점을 예수님 자신의 능력에서 소년의 아버지의 믿음으로 극적인 전환을 시키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소년의 아버지에게 “‘만일 당신이 할 수 있다면’이라고 했느냐?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막 9:23b)라고 대답하십니다. 소년의 아버지는 “만일 당신이 할 수 있다면”이라는 말로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말 못하는 영’에 사로잡힌 소년을 고치는 문제가 예수님 자신의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소년의 아버지의 믿음의 문제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의 대답에 소년의 아버지는 큰 소리로 예수님께 “나는 믿습니다.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십시오”(막 9:24b)라고 외칩니다. 소년의 아버지의 대답은 믿음과 불신앙의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지금 소년의 아버지의 믿음은 의심이 없는 온전한 믿음이 아니라, 인간의 실존적 갈등 속에서 나타나는 절망 가운데에서 고백하는 불완전한 믿음입니다. 따라서 소년의 아버지는 자신의 믿음 없음을 예수님께 도와 달라고 간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소년의 아버지의 믿음을 전제로 ‘말 못하는 영’에 사로잡힌 소년을 고쳐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리가 자신에게 함께 달려오는 것을 보셨을 때 즉각적으로 행동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 못하는 영’을 “더러운 영”(unclean spirit)이라고 부르십니다(막 9:25b). “더러운 영”이라는 표현은 악하고 부정한 초월적 세력을 가리키는 유대적 표현입니다(막 1:23, 26, 27; 3:11, 30; 5:2, 8, 13; 6:7; 7:25; 9:25).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을 향하여 “내가 너에게 명령한다”라는 권위를 가지고 선포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영”에게 그 소년으로부터 “떠나라”라는 명령과 더불어 “다시는 그에게 들어가지 말라”라는 이중적인 명령을 하십니다(막 9:25d).

예수님의 명령에 “더러운 영”은 순순히 나가지 않고, 마지막으로 소리를 지르면서 심한 경련을 일으켰습니다. 특별히 “경련을 일으키다”(sparasso: to convulse)라는 동사의 주체는 신약 성경에서 오직 ‘더러운 영’입니다(막 1:26; 9:25; 눅 9:39). Guelich는 예수님의 명령을 받고 “더러운 영”이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소년에게 경련을 일으키는 장면을 더러운 영의 “죽음의 통곡”(death wail)이라고 비유하기도 합니다 (Robert A. Guelich, Mark 1-8:26, Zondervan, 2015, p. 56-57).

“더러운 영”이 나간 소년의 모습은 마치 죽은 것 같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소년이 죽었다고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하여 마가는 ‘말 못하는 영’에 사로 잡힌 소년의 질병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보여주면서, 동시에 예수님께서 생명을 회복시키는 예수님의 권능(authority)을 부각시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치 죽은 것처럼 되어버린 소년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는 장면을 통하여 예수님의 신적 권위를 명백하게 보여줌과 동시에 예수님께서 파괴된 생명을 온전히 회복시키는 생명의 주관자이심을 보여줍니다(막 9:27).

마가는 마지막 세 번째 장면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이 사적인(in private) 공간인 집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를 통하여 제자들은 왜 ‘말 못하는 영’에 사로잡힌 소년을 고치지 못했는지 말씀하십니다.

(막 9:28) 그리고 그(예수)가 집으로 들어가셨을 때 그의 제자들이 사적으로 그(예수)에게 질문했습니다. “어찌하여 우리들은 그것(말못하는 영)을 쫓아 낼 수 없었습니까?” (29) 그리고 그(예수)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이러한 종류의 것은 기도를 제외하고는 아무것에 의해도 나갈 수 없다.” (Translated by YG Kim)

마가복음에서 사적인 공간을 표현하는 ‘집’(oikos: house)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사적으로(privately) 가르치시는 장소입니다(막 7:17; 9:28; 10:10; cf. 막 4:10, 34). 제자들은 사적인 공간인 집에서 깊은 당혹감을 가지고 예수님께 자신들의 실패의 원인이 무엇인지 질문합니다.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으로부터 “더러운 영”을 쫓아내는 능력을 받았고(막 6:7), 실제로 예수님께서 보내신 전도 여행에서 성공적으로 “더러운 영”을 쫓아낸 경험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막 6:13). 그러나 제자들은 자신들의 경험에 근거해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그들은 공개적으로 명백하게 실패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영”을 쫓아내는데 실패한 제자들에게 “이러한 종류의 것은 기도를 제외하고는 아무것에 의해도 나갈 수 없다”(막 9:29b)라고 명백하게 대답하십니다. 예수님의 답변은 제자들의 실패 원인과 진정한 영적 능력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제시해 주십니다.

먼저 “이러한 종류”(this kind)라고 말씀하시면서 ‘말 못하는 영’이 특별히 더 다루기 어려운 영이라는 것을 시사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실패의 원인을 믿음의 고백인 기도(proseuche: prayer)와 연결시켜서 대답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기도는 단순히 “더러운 영”을 쫓아내는 주문을 외우는 기술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신뢰와 믿음의 표현입니다. 따라서 제자들이 ‘말 못하는 영’에 사로잡힌 어린 아이를 고치지 못한 이유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능력이 마치 자신들의 소유인 것처럼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이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지속적인 능력을 공급받아서 믿음의 현재성이 “더러운 영”에게 나타나기를 원하고 계셨습니다. 따라서 기도는 믿음의 능력의 근원입니다. 결론적으로 기도는 인간의 약함의 표현이고,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의 통로입니다.

<함께 나누기>

  1. 신약 성경에 기록된 네러티브 기법 중에서 “foil’에 관하여 설명해 보십시오.
  1. ‘말 못하는 영’에 사로잡힌 소년의 아버지는 예수님께 “만일 당신이 할 수 있다면”이라는 조건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질문을 어떻게 소년의 아버지의 믿음으로 전환시키셨습니까? 
  1. 소년의 아버지의 마음 속에 나타나는 믿음의 갈등이 우리에게도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만일 이러한 모습이 우리에게 나타난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믿음을 극복했습니까?
  1. ‘더러운 영’이 소년에게서 나갔을 때, 소년은 마치 죽은 모습과 같았습니다. 이 모습을 통하여 마가는 예수님의 어떠한 능력을 강조해서 보여주고 있습니까?
  1. 마가복음에서 ‘집’은 어떠한 장소입니까?
  1. 제자들이 ‘말 못하는 영’에 사로잡힌 소년을 고치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1.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기도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습니까?

복음에 빚진 자 김윤규 목사 (토론토 쉴만한물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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