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전한 자,” 하나님을 닮음
“완전한”으로 번역되는 희랍어 “테레이오스”는 “끝내다,” “완성하다,” 혹은 “목적을 이루다”는 “텔레이오”에서 파생되었습니다. 두 단어, 텔레이오스와 텔레이오의 기본 형태는 “끝,” “목적,” 그리고 “목표”를 뜻하는 텔로스입니다. 이곳에서 살펴볼 텔레이오스의 근본 개념은 “전체의 whole,” “완전한 total,” “완성의 complete,” “완벽한 perfect,” 그리고 “가득한 full”과 같은 전체가 완성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더 정확히는 결함이 없는 꽉 찬 상태에서 밖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행동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텔레이오)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텔레이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 존재가 온전하게 됩니다. 신약 성경은 온전한 사람의 상태를 하나로 설명하지 않고, 다양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따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성품을 보여줍니다.
첫째, 온전한 자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어떤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답합니다. “어떤 계명을 지켜야 합니까?”라는 그의 대답에, 예수님은 “살인하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거짓 증언 하지 마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답합니다. 이 청년은 어려서부터 그 모든 것들은 지켜 왔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만일 네가 완전해지길 원한다면,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라”고 말씀합니다. 이 청년은 매우 슬퍼하며 떠났습니다. 그는 가진 재산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온전함은 예수님의 말씀과 관련된 행동에 적용됩니다. 자식이 온전하도록 다윗은 아들에게 이렇게 조언합니다.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성을 다하여 섬기는 사람이 온전한 자입니다.
둘째, 온전한 자는 자기 사역에 집중하는 사람입니다. 성도들을 향한 가혹한 핍박을 피해 예루살렘 교회를 떠나 이국에서 생활하는 성도들에게 야고보는 격려의 편지를 씁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온전한 사역은 이방 땅에 거주하고 시련 가운데 있기 때문에 제외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 속에서도 변함 없는 사역으로 믿음으로 증명된 사람이 온전한 자입니다. 삶 전체가 사역으로 이뤄지는 자가 온전한 사람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은 온전한 사랑이라고 언급합니다. 이 사랑은 충만하고 무한한 사랑으로 그 전체성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 어떤 두려움의 여지를 남기지 않습니다. 성도는 이 사랑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자들입니다. 교회 생활에서 이 사랑을 충만히 실천하는 자가 온전한 사람들입니다. 온전한 자는 맡은 사역의 모든 일에 신중하여 직무를 다 하는 사람입니다.
셋째, 온전한 자는 성숙한 행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온전한 것은 부분적인 것의 반대임을 암시합니다. 사도 바울은 영적 은사들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은사는 하나님의 대한 온전한 지식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한다는 원리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어린 아이는 어린 아이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깨닫습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가 성장하면 어린 아이의 일을 버리고 말이나 생각이나 깨닫는 것에 성숙하게 된다. 바울은 온전한 자의 성숙한 행동을 이렇게 나열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며, 내게 유익하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기며,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를 가지며,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고난에 참여하며, 그의 죽으심을 본받으며,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 가는 자.”
넷째, 온전한 자는 자비를 베푸는 사람입니다. 텔레이오스는 사람과 관계된 행동에 적용됩니다. 하나님의 온전하심은 사람을 차별하시 않으시고 모든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마태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 주심이라”고, 하나님의 온전하심은 사람에 따라 나눠지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그리스도인의 온전한 인간 관계를 언급합니다. 하나님의 온전하심에서 나오는 선하신 행위는 제한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악한 자들, 불의한 자들, 심지어는 원수들에게까지 선을 행하십니다.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러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느리라.” 하나님을 따라 자비를 행하는 자가 온전한 사람입니다.
다섯째, 온전함을 이루는 주체는 그리스도입니다. 텔레오스는 인간성에 그 근거를 두지 않습니다. 신비적인 요소입니다. 어느 영역에서든 인간은 자력으로 완전을 이루지 못합니다. 제자들이 완전한 일치를 이뤄도록 기도하실 때, 예수님은 “부디 그들로 온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완전을 이루는 주체는 하나님이심을 언급합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라고, 바울 사도는 거룩의 영역에서도 온전함의 주체는 하나님이심을 밝힙니다. 그는 자신이 온전한 사역을 이룰 수 있었던 원인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하나님의 능력이 사도 바울의 삶에서 온전해진 것은 그의 강함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는 또한 성경이 한 개인을 온전한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이남규 목사
“온전한 자,” 하나님을 닮음
“완전한”으로 번역되는 희랍어 “테레이오스”는 “끝내다,” “완성하다,” 혹은 “목적을 이루다”는 “텔레이오”에서 파생되었습니다. 두 단어, 텔레이오스와 텔레이오의 기본 형태는 “끝,” “목적,” 그리고 “목표”를 뜻하는 텔로스입니다. 이곳에서 살펴볼 텔레이오스의 근본 개념은 “전체의 whole,” “완전한 total,” “완성의 complete,” “완벽한 perfect,” 그리고 “가득한 full”과 같은 전체가 완성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더 정확히는 결함이 없는 꽉 찬 상태에서 밖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행동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텔레이오)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텔레이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 존재가 온전하게 됩니다. 신약 성경은 온전한 사람의 상태를 하나로 설명하지 않고, 다양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따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성품을 보여줍니다.
첫째, 온전한 자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어떤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답합니다. “어떤 계명을 지켜야 합니까?”라는 그의 대답에, 예수님은 “살인하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거짓 증언 하지 마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답합니다. 이 청년은 어려서부터 그 모든 것들은 지켜 왔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만일 네가 완전해지길 원한다면,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라”고 말씀합니다. 이 청년은 매우 슬퍼하며 떠났습니다. 그는 가진 재산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온전함은 예수님의 말씀과 관련된 행동에 적용됩니다. 자식이 온전하도록 다윗은 아들에게 이렇게 조언합니다.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성을 다하여 섬기는 사람이 온전한 자입니다.
둘째, 온전한 자는 자기 사역에 집중하는 사람입니다. 성도들을 향한 가혹한 핍박을 피해 예루살렘 교회를 떠나 이국에서 생활하는 성도들에게 야고보는 격려의 편지를 씁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온전한 사역은 이방 땅에 거주하고 시련 가운데 있기 때문에 제외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 속에서도 변함 없는 사역으로 믿음으로 증명된 사람이 온전한 자입니다. 삶 전체가 사역으로 이뤄지는 자가 온전한 사람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은 온전한 사랑이라고 언급합니다. 이 사랑은 충만하고 무한한 사랑으로 그 전체성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 어떤 두려움의 여지를 남기지 않습니다. 성도는 이 사랑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자들입니다. 교회 생활에서 이 사랑을 충만히 실천하는 자가 온전한 사람들입니다. 온전한 자는 맡은 사역의 모든 일에 신중하여 직무를 다 하는 사람입니다.
셋째, 온전한 자는 성숙한 행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온전한 것은 부분적인 것의 반대임을 암시합니다. 사도 바울은 영적 은사들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은사는 하나님의 대한 온전한 지식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한다는 원리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어린 아이는 어린 아이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깨닫습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가 성장하면 어린 아이의 일을 버리고 말이나 생각이나 깨닫는 것에 성숙하게 된다. 바울은 온전한 자의 성숙한 행동을 이렇게 나열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며, 내게 유익하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기며,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를 가지며,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고난에 참여하며, 그의 죽으심을 본받으며,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 가는 자.”
넷째, 온전한 자는 자비를 베푸는 사람입니다. 텔레이오스는 사람과 관계된 행동에 적용됩니다. 하나님의 온전하심은 사람을 차별하시 않으시고 모든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마태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 주심이라”고, 하나님의 온전하심은 사람에 따라 나눠지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그리스도인의 온전한 인간 관계를 언급합니다. 하나님의 온전하심에서 나오는 선하신 행위는 제한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악한 자들, 불의한 자들, 심지어는 원수들에게까지 선을 행하십니다.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러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느리라.” 하나님을 따라 자비를 행하는 자가 온전한 사람입니다.
다섯째, 온전함을 이루는 주체는 그리스도입니다. 텔레오스는 인간성에 그 근거를 두지 않습니다. 신비적인 요소입니다. 어느 영역에서든 인간은 자력으로 완전을 이루지 못합니다. 제자들이 완전한 일치를 이뤄도록 기도하실 때, 예수님은 “부디 그들로 온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완전을 이루는 주체는 하나님이심을 언급합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라고,바울 사도는 거룩의 영역에서도 온전함의 주체는 하나님이심을 밝힙니다. 그는 자신이 온전한 사역을 이룰 수 있었던 원인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하나님의 능력이 사도 바울의 삶에서 온전해진 것은 그의 강함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는 또한 성경이 한 개인을 온전한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이남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