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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 그런뜻이었구나] 최상의 법칙,” 황금률 (Golden Rule) 

“최상의 법칙,” 황금률 (Golden Rule) 

주후 3세기 황제 알렉산더 세베루스가 로마 제국을 통치할 때 백성들은 매우 행복했습니다. 기독교와 유대교에 매우 우호적이었던 그는 두 종교인들에게 제한 없는 자유와 특권을 허락했습니다. 그에게는 성경이 가르치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인생 좌우명이 있었습니다. 그 황제는 자신의 좌우명을 국가의 공공 건물에 새기도록 명령했고, 자신의 궁전 벽에는 좌우명을 금으로 새겨 넣었습니다. 그 이후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격언은 인간 관계의 황금률 (Golden Rule)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황금률은 또한 “사회 윤리의 최고봉” 혹은 “윤리와 도덕의 에베레스트”라고도 불립니다.  

   사람과 혹은 집단과의 관계에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황금률 이전에 실버률 (Silver Rule)이 존재했습니다. 황금률과 유사한 형태의 실버률은 동서고금을 통해 발견됩니다. 고대 유대 사회에 가장 영향력 있던 두 교사는 엄격한 금욕으로 유명한 샴마이 (Shammai)와 친절과 자비로 이름난 힐렐 (Hillel)이었습니다. 샴마이를 찾은 한 남자가 “다음 조건만 들어주면 저는 유대교로 개종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한 다리로 서 있는 동안에 당신이 나에게 율법 전체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샴마이는 손에 들고 있던 잣대 (foot rule)로 그를 쫓아버렸습니다. 힐렐은 자신을 찾은 그 사람을 개종자로 받아 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 자신에게 해가 되는 것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 이 말은 율법 전체의 가르침이다. 그 나머지는 이 말씀의 주석들이다. 가서 배워라.” 로마 카톨릭과 동방 정교회가 정경으로 인정하는 토비트 (Tobit)에는 연로한 아버지가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담아 아들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네가 미워하는 것을 아무에게도 하지 말라.” 기원전 2세기에 쓰였다는 유대인의 문학 작품 『아리스테아스의 서신』에 이집트의 왕이 한 유대인 학자와 대화한 내용이 있습니다. 왕이 “지혜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그 학자는 “재앙이 당신에게 닥치지 아니하고 도리어 모든 좋은 것에 참예하는 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 같이, 당신은 종들에게 그리고 당신을 공격하는 자들에게도 그 원칙을 똑같이 적용하고, 당신은 귀족과 선인을 온유하게 훈계하하라.” 유교의 시조 (始祖)인 공자에게 도를 배우던 제자 자공이 “평생토록 지키고 실천해야 하는 덕을 나타낸 한 마디 말이 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공자는 “네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요구하지 말라”고 답했습니다. 실버률은 금지와 소극적 방식으로 표현됩니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 그리고 여러 사상이 공존하는 글로벌 시대인 21세기의 인간관계 특징은 서로의 성향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어느 하나가 다른 것에 비해 우월하거나 열등하지 않고 동등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부드러운 관계 형성을 위해 다음과 같은 백금률 (Platinum Rule)이 나타났습니다. “당신은 이웃이 대접받기를 원하는 대로 이웃을 대접해야 한다.” 문장의 표현이 황금률과 비슷하지만 내용과 그 정신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육식주의자인 쉬들러는 자신의 음식습관으로 백금률을 설명합니다. 채식주의자인 친구가 집에 찾아오면, 평상시 자신이 즐기던 고기 음식을 대접할 수 없고 친구가 원하는 음식으로 대접해야 다는 것입니다. 이 원칙은 또한 마약 중독자인 이웃이 “마약의 필요가 있을 때,” 원하지 않는 어리석은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말합니다. 백금률이 오늘의 인간관계 향상을 위해 황금률의 개선과 수정으로 제안되었지만 황금률의 깊은 의미를 잘못 이해하여 그릇 적용한 결과입니다. 

   결과적으로 실버률은 내가 싫은 것은 남에게 요구말라는 소극적이며 마지못해 하지않는 삶의 태도입니다. 백금률은 남이 나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해야 하는 독선적이고 기만적인 삶의 자세입니다. 이에 반해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은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삶의 형태입니다. 황금률은 사람과의 관에서 무엇이든지 그리고 어떤 경우라도 내가 대접받기를 원하는 그대로, 상대방을 접대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내가 사랑을 받고 싶습니다. 그러면 누구를 만나든 조건 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내가 용서받기 원합니다. 그러면, 누구를 만나든 조건 없이 용서해야 합니다. 내가 도움을 받기 원합니다. 그러면, 누구를 만나든 조건 없이 도움을 줘야합니다. 내가 칭찬을 받고 싶습니다. 그러면, 누구를 만나든 조건 없이 칭찬해야 합니다. 내가 이해를 받고 싶습니다. 그러면, 그러면, 누구를 만나든 조건 없이 이해해야 합니다. 내가 존귀하게 대접받기 원합니다. 그러면, 그러면, 누구를 만나든 조건 없이 존귀하게 대접해야 합니다. 황금률의 예들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삶의 모든 순간,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남을 나로 생각하면서 대접해야 합니다. 황금률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과 동일한 정신을 공유합니다.    결국 황금률은 내가 나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듯이 다른 사람의 생명도 소중히 여기고, 내가 나의 삶을 존귀하게 대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삶을 존귀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과 같이, 이웃의 안녕을 바라고, 내가 나 자신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이웃을 위해서 최선으로 선을 행하는 삶이 황금률의 정신입니다.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그리고 행복하고 풍성한 삶으로 인도하는 것이 황금률의 최종 목표입니다. 단지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웃을 대접하는 실제적인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찰스 스펄전은 이웃을 접대하는 행위가 없는 “당신은 아직 주님의 형상대로 반만 형성되었습니다. 당신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에 완전히 도달하지 못했습니다”라고 솔직히 밝힙니다. 날마다의 삶에서 이웃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고, 그를 사랑해야 하고, 그가 행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때 황금률이 빛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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