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도 괜찮다
한번도 가지 않은 낯선 길을 아무런 정보 없이, 지도 없이, 네비게이션 없이 찾아가 본적이 있는가? 갈림길마다 어느 길로 가야할지 갈등이 일어난다. 지금까지 맞게 왔는지도 모르겠고, 갈림길마다 엉뚱한 길을 가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기 때문에 마치 안개 속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답답함과 갈등, 막막함과 내적 압력이 요동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매일 한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길이다. 매번, 새로운 사건과 상황이 주는 낯설음과 두려움을 마주하게 된다. 이런 순간의 압박감은 때로 원인과 과정이 명확하게 파악되기 보다는 앞뒤 분간이 잘되지 않을 때가 훨씬 많다. 더욱이 하나님의 뜻도 짐작하기 어렵다. 때문에 현재의 삶의 여정에 대한 회의가 일어나기도 하며, 미래에 대한 불투명은 더욱 큰 의구심이 되기도 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근거가 얇아지기 때문에 의미가 상실되기도 한다.
이런 순간, 우리는 알고 싶다. “어디까지 왔는지, 앞으로 얼마나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알고 싶다. 때로는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고 가늠할 수 없을 때 답답함을 넘어선 공포가 엄습할 때도 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신앙 생활은 어떻게 이런 순간의 길라잡이가 될 수 있을까?
오래전 기억이 떠오른다. 1998년, 대학교 3학년 때 학교 선후배 10여명과 지리산 등반을 한적이 있다. 당시 등산을 소풍 정도로 생각했었다. 1학기 기말고사를 마치고 갔으니까 7월초였으리라. 더욱이 2박 3일, 지리산 종주 코스로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당시에는 인터넷으로 한눈에 지리산 등반 정보를 알 수 있는 때가 아니었다. 그럼 무얼 믿고 2박 3일 지리산 등반을 한 것일까? 딱 한가지였다. 학과 선배가 지리산을 여러번 등반했으니 “선배를 따라가면 나는 천왕봉에 도착할 것이다” 라는 신뢰이다. 지리산의 수많은 갈림길을 만났지만 나는 단한번도 갈등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앞서가는 선배만 따라가면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집중해야 할 것은 선배의 꽁무니였다. 갈림길 이정표보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선배의 뒷모습이었다.
여기서 한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하나님이 당신을 잘 안다고 믿는가?, 하나님이 정말 당신을 인도하신다고 믿는가?”
욥도 우리와 같은 상황을 맞이했다. 그때 욥은 이런 고백을 했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욥은 한가지 지점에 다다랐다. 나의 길을 내가 다 몰라도 된다. 하나님이 잘 아신다면 내가 나의 길을 다 몰라도 된다. 하나님이 좋은 것으로 인도하신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 인생의 주도권을 내가 주관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경영하시도록 맡겨도 괜찮다는 것이다.
암도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면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각 시기마다 겪게 될 어려움을 누구보다 먼저 보이기 때문에 미리 준비할 것이다. 그런데 자녀들이 유치원을 입학하기전 “엄마, 아빠 제가 7살이 되면 어떤 일을 겪게 되는지요?” 라고 미리 물어보는 자녀가 있었는가? 자녀들이 믿는 것은 단한가지이다. “엄마, 아빠가 나를 사랑한다” 이것 한가지이다. 자녀들은 내일 닥칠 일을 다 몰라도 괜찮다. 왜냐하면 “엄마, 아빠가 사랑한다” 라는 신뢰 한가지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길에서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너무 불안해 하지 않아도 괜찮다. 왜냐하면 당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하루는 승리의 하루, 무언가 성취하는 하루이기보다 매일 견뎌내고, 버티는 하루일 것이다. 때로는 죽을만큼 힘들고 눈물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버텨 내야 한다. 견뎌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하나님은 “오늘” 이라는 시간을 통해 우리를 빚어 가신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토기장이가 마치 물레에서 진흙 한 덩어리를 그릇으로 만들어가는 과정과 같다. 토기장이는 자신이 원하는 그릇을 만들기 위해, 진흙 덩어리를 손으로 빚는다. 이 과정에서 필요 없는 부분들을 덜어내고 깎아낸다. 이것은 통증을 동반하는 과정이다. 이 아픔의 과정을 견딜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릇으로 만들어진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파를 굳건히 견뎌내는 하나님의 사람을 만들어 가시려 하고 있다. 우리는 오늘이라는 터널을 통과하며 점점 굳세어져 갈 것이다.
비바람 부는 험악한 날 높은 나뭇가지에 자리 잡은 새 둥지를 본적이 있는가? 우리 교회 앞 치동천 공원에도 큰 나무 위에 새 둥지가 있다. 날이 갈수록 둥지가 커진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알게 된 것은 거센 장마와 비바람이 몰아쳐도 새둥지는 건재하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끊임없이 흔들리는 가지 속에서 바람을 버텨가며 지어진 둥지이기 때문이다. 새들은 무너지지 않는 둥지를 만들기 위해, 바람이 부는 날 둥지를 만든다고 한다.
우리의 오늘이라는 시간은 탄식과 답답함에 눌려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은 기억하자. 내 인생을 하나님이 경영하시도록 맡겨도 괜찮다. 하나님은 오늘이라는 시간을 통해 우리를 빚어 가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