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이야기 11> 분노를 다루는 파괴적인 방법들 2
지난 번 글에서는 분노를 다루는 파괴적인 방법들 중 ‘폭발시키기’와 ‘억누르기’ 및 ‘쌓아두기’를 다루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부인, 부정, 회피, 거부, 험담 및 보복하기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분노를 다루는 파괴적인 방법들 중 넷째는 ‘부인하기(denial)’입니다. 부인하기는 분노를 억누르는 것과는 다르게 분노가 일어나는 일 자체를 억제하기 위해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잘못된 일이나 부당한 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방법입니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에게 ‘그것은 부당한 일이 아니었어.’ 혹은 ‘그 사람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내가 잘못한 거야.”라고 말하면서 상대방의 잘못을 부인함으로써 자기에게 분노가 생기는 것을 부인하려고 하는 모습을 말합니다. 이런 모습은 당장은 갈등을 가져오지 않고 상대방을 정죄하지도 않기 때문에 괜찮은 방법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흐려지기도 하고 자기비하(self-deprecation)에 빠지는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기비하는 낮은 자존감의 결과로 나타나는 모습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자신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에 자신을 파괴하는 방법이 됩니다.
다섯째는 자신이 화가 난 것을 ‘부정하기(negation)’입니다. “나는 분노하지 않았어. 나는 화가 난 것이 아니라 그저 답답하고 안타까운 것 뿐이야”라고 말하며 자신이 분노한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한다고 해서 분노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생긴 분노가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만일 자신이 받아들이기 힘든 그 불쾌한 사건을 반복해서 여러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면 자신에게 분노가 생겼으며 그 분노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모습도 분노를 건강하게 다루지 않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노는 우리가 분노를 부인하거나 부정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분노 감정이 생겼다는 것을 인정하고 분노가 마음 속에 남아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을 때 그것을 건강하게 다루는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됩니다.
여섯째는 ‘회피하기’ 혹은 ‘거부하기’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 화가 나면 그 상대방에게 따지거나 항의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하지만 따지고 항의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거나 소용없는 일이라고 판단되면 그 사람을 만나고 싶지도 않을 것입니다. 만날 일이 있어도 회피하게 되고 눈을 마주치지도 않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그 상대방과 관계 맺는 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억누르기’나 마음에 ‘쌓아두기’가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모습이라고 한다면 회피나 거부는 분노의 대상이 되는 상대방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회피나 거부도 ‘억누르기’나 ‘쌓아두기’와 마찬가지로 속에 있는 화나 분노를 제거해 버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속에 독소를 안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분노를 다루는 파괴적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곱째는 험담입니다. 분노를 속에 품고 있으면 억울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고 상대방을 미워하는 마음이나 원망하는 마음이 공존하기 때문에 기회가 생기면 누구에겐가 자신의 억울함이나 미움, 원망 등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분노는 어떤 한 사건으로 인해 시작된 것이지만 험담하기 시작하면 그 한 사건에서 생긴 섭섭함이나 억울함을 이야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사람 전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확산시키게 됩니다. 그러게 되면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상대방에 대해 좋지 않은 편견을 가지게 되므로 험담은 한 사람의 분노로부터 시작하여 많은 사람을 오염시키는 파괴적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5절에는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라는 말씀이 있는데 영어 NIV 성경으로는 “. . . no bitter root grows up to cause trouble and defile many.”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쓴 뿌리가 나면 문제를 일으키고 많은 사람을 오염시키게 된다는 뜻입니다. 험담은 쓴 뿌리가 돋은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노를 다루는 파괴적인 방법의 마지막은 ‘복수하기’ 혹은 ‘보복하기’입니다. 분노하게 되면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따지거나 항의하고 싶은 마음뿐 아니라 자신이 당한 만큼 되갚아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복수는 자신이 당한 일이 불공평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되갚아 줌으로써 공평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억울하기 때문입니다.
복수는 상대방을 향해 적극적으로 공격적인 행동을 취하기도 하지만 은밀한 방법을 취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한 대 맞았으니 나도 상대방에게 한 대 되갚아주는 것인데 자신이 당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복수할 수도 있고 은근하게 방법을 바꾸어 되갚아 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동을 한 사람이 나에게 어떤 부탁을 했을 때 그 부탁을 거절하는 것이나 부탁 받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음으로써 상대방이 곤란을 받도록 하는 일은 은밀한 방법의 복수입니다.
그러나 복수한다고 해도 이미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관계만 악화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한 사람의 복수는 다시 상대방으로부터 다른 형태의 복수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이 악순환하는 파괴적 관계가 반복적으로 재생산됨으로써 두 사람 모두에게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지금까지 분노를 표현하는 파괴적인 방법들을 살펴 보았습니다. 우리가 기대하지 않았거나 원하지 않는 불쾌한 일들을 만났을 때 충격, 슬픔, 우울, 낙심 등의 소극적인 부정적 감정들로부터 출발한 분노를 경험할 수 있고 분노는 다시 원망, 원한, 쓴뿌리 마음, 적개심, 복수심 등 더 강한 부정적 감적으로 발전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을 표현함으로써 부정적 감정의 에너지를 적절한 방법으로 발산시키지 못하고 그것들을 바람직하지 않은 방법으로 다루게 되면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파괴하고 자기 자신의 삶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박진경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객원교수, Family Alive 대표, 홈페이지: www.familyalive.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