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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_칸트의 하나님 나라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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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칸트의 하나님 나라 이해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제3논고의 제목은 ‘악한 원리에 대한 선한 원리의 승리, 그리고 지상에 신의 나라 건설’이다. 칸트는 여기서 기독교 신학의 핵심 개념인 ‘하나님의 나라(das Reich Gottes)’를 새롭게 해석한다. 그것은 저 하늘에 있는 것도, 먼 미래에 오는 것도 아니다. 칸트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이 땅, 사람들 가운데서 도덕적으로 실현되어야 할 공동체다.

개인을 넘어 공동체로

칸트는 인간의 문제를 한 개인의 차원에서만 볼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개인이 아무리 악의 지배에서 벗어나려 애써도, 악은 그를 부단히 그 지배 아래로 되돌아가게 만드는 위험 중에 붙잡아 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회가 공동으로 악을 방지하고 선을 촉진하는 체계를 이루어야 한다. 칸트는 선한 원리가 지배하고 덕의 법칙들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를 ‘윤리적 공동체’ 또는 ‘덕의 나라’라고 불렀다.

그는 이 공동체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밝힌다. 개인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와 공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허용된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강제력을 갖는 지시명령의 수립자는 인간이 아니라 신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윤리적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곧 ‘신의 국민’, 즉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칸트는 이 대목에서 베드로전서 2장 10절과 로마서 9장 25절을 인용한다.

교회, 하나님 나라의 형식

그렇다면 이 공동체는 어디서 실현되는가? 칸트의 대답은 명확하다. ‘신의 국민의 이념은 인간적 제도 아래서는 교회의 형식 안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 그는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는 가장 적합한 기관이라고 본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창시자는 하나님이지만, 그 나라의 공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교회라는 조직의 창시자는 인간이다.

이상적인 교회가 갖추어야 할 조건으로 칸트는 네 가지를 제시한다. 보편성, 도덕성, 자율성, 그리고 가족과 같은 심정적 통합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특정 집단이나 국가에 속한 것이 아니라 세계 모든 사람을 위한 보편적 공동체여야 하고, 그 구성 원리는 도덕적이어야 한다.

성서 해석의 원칙

칸트는 성서 해석에 관해서도 중요한 원칙을 제시한다. 성서는 오직 ‘인간의 도덕적 개선’이라는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디모데후서 3장 17절, ‘신에 의해 불어넣어진 모든 저술은 가르치고, 벌하고, 개선하는 데 유용하다’는 말씀을 근거로 든다.

그는 또한 성서 해석자는 원어뿐 아니라 광범위한 역사적 지식과 비판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대체 번역으로만 읽을 수 있는 학식 없는 이가 어떻게 성서의 의미를 확신하겠는가?’ 반면에 감정에 근거한 성서 해석은 보편적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성서 해석자는 자유로운 사고를 하면서 자신의 해석을 만인의 검사에 맡겨 공동체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 오는가?

칸트는 ‘신의 나라는 언제 오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누가복음 17장 21-22절을 인용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가시적인 형태로 오지 않는다. 또한 ‘보라 여기 있다, 저기 있다’라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여러분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칸트가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특별하거나 비밀스럽거나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순수한 이성에 의해 인식될 수 있고, 구성원들의 선한 품행에 의해 그들 가운데 이루어져야 할 도덕적인 나라다. 교회를 통해 준비되지만 교회에 예속되는 개념이 아니고, 특정한 개인이나 지역이나 시기에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삼위일체와 하나님의 이름

칸트는 일반적 주해에서 하나님을 세 가지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전능한 창조자는 곧 ‘거룩한 법칙 수립자(holy Legislator)’, ‘인류를 행복하게 유지하는 자비로운 통치자(benevolent Ruler and moral Guardian)’, 그리고 ‘공정한 심판자(righteous Judge)’다. 이는 하나님을 인간의 삶과 동떨어진 신비한 존재로 남겨두지 않고, 인간의 성품과 삶에 직접적으로 관계하는 구체적인 존재로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삼위일체 교리에 대해서 칸트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한다. 그는 ‘종교는 우리가 하나님을 삼중의 인격에서 숭배하는 한에서만 도덕적일 수 있다’고 하면서도, 삼위일체에 대한 고찰은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도덕적인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교리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참된 의미를 훼손시키기보다는 하나님의 신비로 남겨두는 것이 낫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칸트가 단순히 이성만능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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