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여, 무엇을 봉사하고 있는가?
— 칸트의 교회론과 성직 비판
칸트는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제4논고에서 교회론을 펼친다. 제목은 ‘선한 원리의 지배 아래에서의 봉사와 거짓 봉사에 대하여, 또는 종교와 교권주의에 대하여’이다. 그는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해야 할 가장 적합한 기관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동시에 당대의 교회가 미신과 망상과 주물숭배에 사로잡혀 오히려 그 사명을 방해하고 있다고 통렬히 비판한다. 그의 교회 비판은 날카롭고, 때로는 신랄하기까지 하다.
기독교의 세 가지 성격
칸트는 기독교가 세 가지 성격을 동시에 지닌다고 보았다. 첫째, ‘계시종교(Offenbarungreligion)’다. 기독교는 신과의 특별한 관계 안에서 태동하고 발전했음을 역사를 통해 볼 수 있다. 둘째, ‘자연종교(Naturreligion)’다. 기독교는 특정한 단체나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 모든 사람이 인정할 수 있는 공통된 도덕 법칙을 갖고 있다. 셋째, ‘교학종교(Schulreligion)’다. 기독교 신앙은 이성과 학문의 근거 위에 세워져야 하며, 학식 없는 사람들에게도 이해될 수 있도록 이성적으로 설명할 의무가 있다.
칸트의 경고는 명확하다. 기독교가 자연종교와 교학종교의 본질을 벗어나 오직 계시종교만을 주장한다면, ‘거짓 봉사’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 계시도 학문적 관점에서 이해되고 해석되어야 한다.
봉사인가, 지배인가
성직자들이 ‘봉사자(minister)’라는 이름을 가지고 교인들에게 절대권(imperium)을 행사한다면, 봉사보다는 오히려 억압이 되는 이율배반에 빠진다고 칸트는 지적한다. 대표적인 예가 신인동형론(anthropomorphism)이다. 인간이 자신이 원하는 형상을 신에게 주입하여 신을 인간화하는 것인데, 칸트는 이와 같이 이성의 판단을 벗어나는 신앙 양태를 ‘망상’ 혹은 ‘신을 만드는 위험한 행위’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단호하게 선언한다. ‘선한 품행 이외에 인간이 신에게 흡족한 존재가 되기 위해 또 무엇인가를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순전한 종교적 망상이고 신에 대한 거짓 봉사다.’
은총의 수단이라는 망상
칸트는 교회 안에서 행해지고 있는 각종 의식들이 이성 종교를 파괴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신앙고백, 계율의 준수, 금식, 기도, 구제, 성찬식 참여 등 소위 ‘은총의 수단’들을 통해 자신이 조금이라도 의로워질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곧 ‘망상(Wahn/delusion)’ 혹은 ‘미신(Superstition)’이라는 것이다.
특히 신의 은총을 자신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법으로 끌어낼 수 있다고 믿는 것을 ‘광신(Schwaermerei/fanaticism)’이라고 했다. 이러한 모든 행위는 신에 대한 봉사를 마법(sorcery) 또는 주물숭배(Fetischmachen/fetishism)로 변환시키고, 참된 종교를 위한 모든 수고를 무효로 만드는 거짓 봉사라는 것이다.
이교에 가까운 교회
칸트의 비판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많은 교회 형식에서는 주물숭배가 그토록 잡다하고 기계적이어서 거의 모든 도덕성을, 그러니까 종교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해야만 할 것처럼 보이고, 그래서 이교(paganism)에 매우 가까이 접해 있다.
성직자들이 교회 안에서 대중들로 하여금 주물숭배에 순종하도록 만들어감으로써, 대중은 도덕적 자유를 박탈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도덕적 자유를 박탈당한 교회가 국가를 지배하면서 국민들의 생각까지 길들여서 국가의 이익을 이끌어내는 데 사용되고, 시민들은 성직자들로부터 위선의 습관을 배워 결국 가식적 봉사를 하게 된다는 것이 칸트의 비판이다.
경건과 덕 중에 무엇이 먼저인가
칸트는 교육의 문제도 다룬다. 청소년을 지도할 때 덕 이론과 경건 중 어느 것을 먼저 가르쳐야 하는가? 그는 두 개념이 상호 보완적임을 인정하면서도, 덕은 신이 없이도 고양시킬 수 있지만 경건은 반드시 신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덕이 목적이라면 경건은 수단이라고 정의했다. 따라서 윤리적으로 선한 성품이라는 목적을 위해 덕 이론을 먼저 가르치는 것이 논리적으로 옳다고 했다. 경건을 먼저 강요하는 것은 노예적 봉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종교 때문에 생명을 빼앗을 수 없다
제4논고의 마지막 부분에서 칸트는 종교적 폭력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종교 신앙 때문에 한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같은 형제이지만 이론이나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 이것이 바로 종교의 이율배반적 악이다.
그리고 그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요청한다. 자신이 주장하는 교리를 진리라고 확신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주제넘게 확신한다고 말하지 말고, 마가복음 9장 24절처럼 ‘주여, 저의 믿음 없음을 도와 주소서!’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모든 종교 지도자들은 자기가 주장하는 것이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일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경고로 그는 논고를 마쳤다.
250년 전에 기록된 이 경고는 오늘날의 교회에도 그대로 유효하다. 아니, 어쩌면 지금이 더 크게 들려야 할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