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쉼, 회복의 공간 ‘로뎀하우스’를 찾아서
목회를 처음 시작하기 전, 목회자는 누구나 큰 포부와 가능성을 품는다. 하나님께 받은 구원의 확신과 목회에 대한 부르심에 순종하며 길을 시작하지만, 한편으로는 성공적인 목회 현장을 연구하고 좋은 교회를 세우겠다는 꿈을 품기도 한다. 개척을 선택하거나 더 큰 교회의 청빙을 기다리는 것도 이러한 기대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이민 목회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른 현실을 마주하게 한다. 특히 캐나다에서 한인 목회를 감당하는 목회자들에게는 한국에서의 익숙한 목회 환경을 뒤로하고, 언어와 문화, 이민자의 삶이라는 낯선 조건 속에서 교회를 세우고 성도들을 돌보아야 하는 쉽지 않은 사명이 기다리고 있다.
30여 년 전 토론토에서 KPCA 캐나다 동노회 소속, 동신교회를 개척한 박태겸 목사는 최근 목회를 은퇴했다. 그리고 교회와 가까운 곳에 머무는 대신, 옥빌에서 약 3시간 떨어진 무스코카 지역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비교적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옥빌과 달리, 이곳은 한인들을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곳이다.
그런데 은퇴 후의 삶은 단순한 휴식이나 은둔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박 목사는 또 하나의 부르심을 경험하고 있었다.
박태겸 목사와 사모 양미원 교수는 자신들의 가정을 세상에 열어 놓았다. 기도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기도할 수 있는 장소를, 쉼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쉴 수 있는 공간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그곳의 이름은 ‘로뎀하우스’다.
성경에서 로뎀나무는 엘리야가 지쳐 쓰러졌을 때 잠시 머물며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했던 장소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로뎀하우스는 단순한 숙박 공간이나 정원이 아니라, 지친 영혼이 잠시 멈추어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작은 쉼터를 지향한다.
집 마당 곳곳에는 다양한 묵상 포인트가 마련되어 있다. 하나의 정해진 순례 코스를 따라가는 방식이 아니라, 방문자의 상황과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묵상 가이드가 준비되어 있다. 조용히 앉아 기도할 수도 있고, 정원을 걸으며 묵상할 수도 있으며,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도 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자연 그 자체가 묵상의 공간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전 주인이 심어 놓은 나무와 꽃들을 박 목사 부부가 정성스럽게 돌보고 있다. 다양한 꽃들이 계절마다 피어나고, 그 사이로 ‘Blue jay’라는 새들이 날아든다. 꽃과 나무, 새들이 어우러져 작은 생태계를 이루고 있어 마치 잘 가꾸어진 보타닉가든을 방문한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로뎀하우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함께하는 삶’에 있다.
방문자들은 박 목사의 안내를 받아 정원을 거닐며 묵상하고, 때로는 정원을 가꾸는 일에 직접 참여한다. 함께 일하고, 함께 식사하고, 함께 묵상하는 것이 로뎀하우스를 경험하는 자연스러운 방식이다.
이번 로뎀하우스 방문에는 과거 온타리오 교회협의회 임원들이 함께했다.
약 3년 전, 박태겸 목사가 온타리오 교회협의회 회장으로 섬길 당시 그는 임원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자주 했다. 임원 임기가 끝난 뒤에도 서로 자주 만나 교제하고, 어려울 때 서로 돕는 관계를 계속 이어가자는 것이었다.
그 약속은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의 열매가 되었다.
당시 부회장이었던 김주엽 목사(강림감리교회)와 최영석 장로(밀알교회)를 중심으로 임원들 사이의 교제가 꾸준히 이어졌고, 이번에는 함께 로뎀하우스를 찾게 되었다. 문경옥 목사(주찬양교회)도 이 여정에 동행했다.
이번 방문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두유’에 얽힌 작은 에피소드였다.
최영석 장로는 최근 캐나다에서 두유 독점판매권을 얻어 사업을 확장할 계획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마침 함께 방문한 문경옥 목사는 방문 선물로 전날 두유 한 박스를 구입해 가지고 왔다. 더 놀라운 것은 로뎀하우스를 운영하는 양미원 교수 역시 방문객들이 돌아갈 때마다 두유를 선물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날 방문한 임원들은 두유를 선물하고, 또 두유를 선물받았다.
우연처럼 보이는 이 작은 사건 속에서 일행은 다시 한번 ‘여호와 이레’를 고백했다. 하나님께서 앞서 준비하시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통해 필요한 것을 채우신다는 사실을 웃음과 함께 경험한 것이다.
박태겸 목사가 꿈꾸는 것은 로뎀하우스 하나를 잘 운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캐나다 곳곳에 또 다른 로뎀하우스들이 세워지기를 바라고 있다. 복잡한 도시 생활 속에서 놓치기 쉬운 기도의 영성을 회복하고, 지친 사람들이 잠시 멈추어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들이 곳곳에 만들어지기를 소망한다.
오늘날 교회에는 많은 집회와 프로그램이 필요하지만, 때로는 그보다 더 절실한 것이 있다. 바로 침묵할 수 있는 공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머물 수 있는 시간, 그리고 다시 걸어갈 힘을 얻는 쉼이다.
그런 점에서 로뎀하우스는 대규모 집회나 행사를 위한 장소라기보다, 기도와 회복이 필요한 개인과 소그룹에게 더욱 의미 있는 공간으로 보인다.
목회를 은퇴했지만 사명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박태겸 목사에게 은퇴는 목회의 형태가 달라지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었다.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성도들을 섬기던 목회에서, 이제는 자신의 삶과 가정을 열어 놓고 누구든 찾아와 쉬고 기도하며 다시 힘을 얻도록 돕는 목회로 그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로뎀하우스의 정원에는 오늘도 꽃이 피고 새들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곳을 찾는 사람들은 함께 일하고, 함께 먹고, 함께 묵상하며 자신의 삶을 잠시 멈추어 돌아본다.
어쩌면 이것이 박태겸 목사가 은퇴 후 다시 받은 새로운 사명인지도 모른다.
“지친 이들이 잠시 쉬어가고, 기도하는 이들이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며, 흩어진 사람들이 다시 연결되는 곳.”
로뎀하우스가 단순한 한 채의 집을 넘어 캐나다 곳곳에서 기도와 회복을 이어주는 작은 영적 쉼터들의 네트워크로 세워지기를 기대해 본다.
글 | 구 온타리오 교회협의회 임원(서기) 차재화 목사(토론토 동산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