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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나들목칼럼] 선택의 기준 (feat. 호밥)

선택의 기준 (feat. 호밥)

철학자 장 폴 샤르트르는 “Life is C between B and D.” 라 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인생은 실로 출생(Birth)부터 죽음(Death)에 이르기까지 선택(Choice)의 연속이고, 그 합으로 이루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때로 한 번의 선택은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바꾸기도 합니다. ‘호밥’의 선택이 그랬습니다. 호밥은 자신의 인생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습니다. 그의 선택으로 그와 그의 후손들은 이방인으로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역사 가운데 자신들의 이름을 새겨 넣는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호밥의 선택을 통해 우리는 선택의 3가지 성경적 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현재보다 미래의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 때 <눈앞의 이익과 현실의 안락함>을 최우선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호밥은 달랐습니다. 당시 모세와 출애굽 한 200만의 백성들은 약속의 땅을 향하여 광야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광야는 그들에겐 초행길이었고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처남인 호밥은 어릴적부터 광야에서 유목생활을 하며 광야의 지리와 상황을 누구보다도 꿰뚫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광야의 전문가 호밥이 필요했고, 그에게 동행을 요청했습니다. 모세가 호밥에게 제시했던 동행의 조건은 단지 ‘약속’이었습니다. 우리와 동행하면 지금은 줄 것이 없지만 앞으로 선대하겠고,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대로 그만큼 그에게 그 복을 나누어주겠다는 약속이 모세가 호밥에게 제시했던 전부였던 것입니다. 최고의 전문가를 한푼의 연봉보장도 없이 고작 약속 하나로 붙든 것입니다. 모세가 이러한 거래를 제시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모세 자신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모세는 약장수 혹은 사기꾼일 것입니다. 호밥은 처음에는 현실의 두려움 때문에 거절하지만 결국 미래의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동행을 결정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을 선택하라,”
호밥이 자신의 매제 모세와 함께 광야로 나간 것은 그가 ‘모세의 약속’ 때문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겠지만, 모세도 사람인데 나중에 마음이 변해서 자신이 받은 복을 안 나누어주면 어떻합니까? 호밥이 광야로의 동행을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모세와 그의 백성에게서 목격한 특별한 한 가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영에 항상 임하던 낮의 구름기둥과 밤의 불기둥이었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의 눈에 보이는 증거였습니다. 호밥은 사람 모세의 약속을 신뢰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똑똑히 보았기에 그들과 함께 광야로 나가는 위험한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광야에 계시다면 믿음의 사람들은 현실의 안락함을 과감히 포기하고 광야로 나아가는 믿음의 선택과 결단을 내려야합니다. 광야는 호밥에게도 위험한 곳이었지만 호밥이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보고 광야를 선택했을 때 호밥은 그 자신 역시 하나님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놀라운 인도하심과 보호하심 아래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셋째, “자신의 은사를 가장 필요로 하는 곳을 선택하라.”
“모세가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떠나지 마소서. 당신은 우리가 광야에서 어떻게 진칠지를 아나니 우리의 눈이 되리이다.”(민10:31). 우리는 광야를 모르니 제발 광야에서 우리의 눈이 되어 달라! 우리에겐 당신이 갖고 있는 그 은사와 경험과 전문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제발 우리를 버리지 말고 우리를 인도해달라! 이러한 모세의 간청에 호밥의 마음은 움직였습니다. 호밥은 이제 익숙하고 편안한 자신의 땅을 떠나 자신의 경험과 은사를 가장 필요로 하는 광야의 땅으로 모세와 함께 나아갑니다. 이것이 성경적 선택, 그 세 번째 원리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백성들의 정체성을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합니다. 빛은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고, 소금은 맛을 내거나 부패를 방지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듯 하나님의 백성의 있어야 할 곳은 자신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현실의 두려움을 극복한 호밥의 선택은 결국에는 그가 희생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축복이 되어 그에게 돌아옵니다. 민수기 10장 33절은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일 길을 갈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 가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다.”고 합니다. 호밥은 광야의 길잡이로 자신을 헌신했는데, 뚜껑을 열고 보니 호밥이 주체가 아닌 하나님이 주체가 되셔서 그들 앞에서 그들을 인도하고 그들의 쉴 곳을 찾으셨습니다. 호밥은 자신이 위허한 광야의 길잡이로 헌신의 선택을 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가장 안전하고 완벽한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들어간 것입니다. 호밥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호밥의 인생을 위해 호밥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사역의 자리로 나아갈 때 이러한 인식을 갖어야 합니다. 나 아니면 안되가 아니고, 지금 내가 부름받고 쓰임받고 있구나. 감사하다. 안락한 자리를 버리고 위험한 광야로 나아간 줄 알았는데, 지금 내가 오히려 가장 안전한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들어왔구나. 참 감사하다. 이런 성숙한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호밥이 그의 선택으로 받은 축복은 그뿐만 아닙니다. 사사기 1장과 4장(참조 삿4:11)을 보면 호밥의 자손들이 이스라엘과 함께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함께 들어와 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호밥의 선택은 호밥 자신과 그들의 자손들까지도 구원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한 것입니다. 이방인으로 자신의 땅에서 그냥 잘먹고, 편안하게 살다가 사라질 한 사람과 그의 자손들이 한 사람의 용기 있는 선택으로 하나님의 영원하신 역사 속에 자신들의 이름이 새겨지는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1867년 미국은 자신들의 역사 가운데 최고의 거래라고 평가받는 선택을 했습니다. 재정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알레스카를 사들인 것입니다. 당시 크림전쟁에서 패배한 러시아는 엄청난 부채에 시달리다 알레스카를 720만 달러에 미국에 팔아버렸습니다. 당시 미국인들은 “도대체 우리한테 왜 이렇게 큰 아이스박스가 필요한 거냐?”며 정부를 연일 조롱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막대한 가치를 지닌 천연 지하자원들이 쏟아져나온 것입니다. 러시아의 치명적인 실수가 무엇입니까? 눈에 보이는 얼음만 본 것입니다. 현재와 현실만 본 것입니다. 그들은 그 얼음 아래 무엇이 묻혀 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에 지금은 땅을 치고 후회할 선택을 했던 것입니다. 이 아이러니한 역사의 단편은 오늘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는 광야라는 현실만 보아서는 안됩니다. 광야에 하나님이 임재하고 계셨고, 광야를 지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습니다. 호밥은 그것을 보았습니다. 호밥은 광야라는 쓸모없는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임재안에 감추인 말할 수 없이 큰 축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편안한 곳을 떠나 용감하게 광야로 나아가는 선택을 했습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면, 그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면, 그곳에 나의 은사와 경험과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곳으로 주저 없이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그곳은 희생과 헌신의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생한 인도하심과 돌보심을 경험하는 축복의 장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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