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충만한 삶이란? 한마디로, 성령님의 지배를 받는 삶이다. 그런데 엡 5장 18절은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령님의 지배를 받기 위해선 오직 성령 외에 다른 것의 지배를 받으면 우리는 결코 성령충만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우리의 정신과 삶을 지배 당하기 쉬운 요소들이 참 많다. 특별히 요즘은 메스컴에서 시끄러운 마약이 그렇다. 그러나 우리가 지배당하기 쉬운 수많은 요소들 중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술 취함이다. 오죽하면 멀쩡한 사람도 술에 취하면 개가 된다고 하지 않는가? 평소 맨 정신엔 절대 하지 않을 말과 행동을 술에 취하면 거침없이 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술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필자는 청년 때는 날마다 술에 취해 살다가 결국 4층 창문에서 술 취한 채 떨어져 크게 다치기도 했다. 술을 배우기 전 어린 시절엔 그렇게 노는 걸 좋아해서 만화방, 오락실에 가는 걸 참 좋아했다. 그래서 내 어머니는 내게 심부름이라도 시킬 때면, 항상 걱정하시면서 “도근아 너 정말 만화방 들르지 말고 집에 곧바로 와야 한다.” 잔소리를 하곤 하셨다. 이런 어머니의 말씀에 2가지 명령이 들어 있다.
첫째, 만화방 가지 말라. 둘째, 집으로 곧바로 와야 한다. 굳이 따지자면, 어떤게 진짜 어머니의 명령인가? 당연히 후자다. 심부름하는 내가 집으로 곧바로 오기 위해선, 난 만화방을 가지 말아야 하는 거다. 즉 후자를 잘 수행하기 위한 전자의 순종인 것이다. 그런데 철없던 어린시절 나는 “네 어머니. 걱정마시옵소서. 제가 오늘은 반드시 그리하겠사옵니다.” 하고 만화방은 안들리고 대신 오락실을 들려서 한참 늦게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리고 늦게 집에 돌아온 나를 보고 어머니가 야단치려고 할 때 내가 “잠깐만요 어머니, 저 오늘 정말 만화방 안갔단 말이에요. 그런데 왜 이렇게 나오세요?” 그러면, 그날 나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만약 우리 자식들이 그렇게 말대꾸를 한다면 우리는 “어 그래 네가 참 잘했구나.” 하며 칭찬을 할까? 매타작을 할까?
가령, 선생님께서 고 3학생들에게 “쓸데없는데 관심 좀 끄고, 제발 공부 좀 해라.”고 말씀하셨다면 선생님의 진짜 의도는 무엇일까? 당연히 집중해서 공부하라는 것이다. 한 학생이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다른 데 관심은 껐는데, 공부마저도 관심을 끄고 책상에 엎드려 집중해서 잔다면 그 학생은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은 걸까? 반만 들은 걸까? 아니면 안들은 걸까?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엡 5:18)
성령충만한 삶을 살지 않으면서, 그저 예수 믿고 술 끊은 걸로 혹은 직장 생활하면서 용기 있게 “전 교회다녀서 술은 입에도 대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걸로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신자의 삶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오직 성령의 지배만을 받는 성령충만한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다. 성령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이루어지는 곳, 즉 우리가 성령충만한 삶을 살아내는 모든 현장에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 우리의 삶의 자리 자리가 우리의 성령충만한 정도에 따라 천국으로 변화된다.
그래서 에베소서 5장에서는 우리에게 성령충만을 명령하시고선, 그 특정하신 자리들이 특별한 사명의 자리가 아닌 우리네 삶의 대표적 일상의 자리들 즉 가정(아내와 남편 사이, 부모와 자녀 사이)이고 일터(종과 상전 사이)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삶의 특별한 일부분의 자리가 아닌,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삶의 모든 자리에서 우리가 천국을 누리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Fullerton 나들목비전 교회 권도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