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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정재천교수의 말씀에너지] 십자가 앞의 요한과 마리아

십자가 앞의 요한과 마리아

신약성경에는 네 권의 복음서가 있다: 마태, 마가, 누가, 그리고 요한의 복음 모두 골고다의 십자가 사건을 가장 핵심적인 클라이맥스로 다룬다. 이렇게 네 명 저자가 기록한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온 세상에 선포한 가장 권위 있는 보고서다.

그 중에서도 엄밀한 의미에서 직접 자신의 육안으로 모든 것을 목격하고 기록한 위대한 복음서는 요한복음이다. 물론 주님이 “사랑하는 제자,” 요한의 요한복음이 다른 세 권, 공관복음보다 더 정확하고 더 신뢰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직접 보고 들은 십자가의 역사 중에는 다른 복음서에서는 전혀 조명되지 않은 한 가지 특별한 기록이 담겨 있다. 바로 죽기 전 예수님의 마지막 모습과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 관한 것이다.

주님의 열 두 제자 중 유일하게 요한 만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거리에서 주님께서 달리신 십자가를 봤다. 십자가 위의 주님이 고통 속에서 눈을 감으시기 전 마지막으로 바라본 사람이 바로 어머니 마리아였다. 마지막 호흡을 가까스로 하시며 바라본 사람이 자신의 발 아래서 울고 있는 당신의 어머니였다(19:26). 예수님께서 온전한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동시에 온전하신 인간이셨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장면은 단순히 그저 “아줌마 누군데 울고 계세요?”라는, 냉소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이 아니다. 그렇다고 “여자여, 나 말고 요한을 보라”고 이해되는 것처럼 마지막 책임감을 다하는 모습도 아니다.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만 아니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단 한번 만이라도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위로하고 싶은 진정한 아들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제 남겨질 어머니에게 “어머니”라고 부르는 한 번의 위로보다 그 어머니도 구원할 수 있는 권위자의 음성으로 “여인아”라고 부르신다.

십자가 아래에서 자신의 아들이 처참하게 죽어가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마리아의 심정은 어땠을까? 처녀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된 아이를 낳아서 세상에서 무엇보다 가장 귀게 키워온 어머니의 마음은 어떠한 심정이었을까? 적어도 그 순간, 마리아는 너무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내 아들이 무슨 잘못을 했다는 말인가! 왜 내 아들이 이토록 고난을 받아 죽어야 하나! 하나님의 아들을 누가 감히 이렇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는 ‘내가 저 십자가의 고통을 외롭지 않게 함께 나눌 수만 있다면… 아들이 고통스러운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텐데…’ 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마리아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러면 아들이 더 아파할 걸 알았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통해 요한과 마리아는 가장 큰 슬픔을 경험했다. 죄인을 살리기 위해 하나 뿐인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운 사랑을 이해하는 것이 그 당시에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것이 하나님 만이 주실 수 있는 위대한 사랑이며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는 “은혜”라는 것을 믿음을 통해 깨달았을 것이다. 

사도행전 1장14절 기도하는 곳에 요한과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이제 그 은혜가 헛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곧 그리스도의 죽음은 슬픔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의 기쁨으로 그들에게 다가왔다.

유일한 목격자 요한과 마리아에게 슬픔과 상실감이 남달랐던 만큼 기쁨과 감사 또한 특별했을 것이다. 주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삶 속에서 때로는 주님의 부재가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주님은 기도하며 기다리는 자에게 반드시 돌아오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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