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희년 이야기] 희년 잔치를 거절한 악당들, ‘큰 잔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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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 잔치를 거절한 악당들, ‘큰 잔치’ 비유

누가복음 14:16-24에서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큰 잔치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킨다. 왜냐하면 바로 앞에서 “함께 먹는 사람 중의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15절)라고 하나님의 나라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 본문에서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초대를 받았으나 참석을 거절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 사람들은 밭을 샀거나 소 다섯 겨리를 샀거나 장가든 사람들이다. 이들에 대해 혹자는 ‘일상에 바쁜 보통사람들’로 해석하는데, 그런 해석은 문맥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기들의 소유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거부한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부자들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문맥에 부합한다. 

그럼 이들을 왜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부자들이라고 보는지 그 이유를 자세히 살펴보자. 첫째, 이어지는 본문에서 주인이 ‘가난한 자들’을 첫 번째로 언급하면서 데려오라고 말하기 때문에, 이들은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부유한 자들’이다. 곧 이스라엘 사회의 부자들이 초대를 거절했기 때문에 그럼 이제 가난한 자들을 데려오라고 명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둘째, 초대를 받았으나 거절한 세 사람 가운데 앞의 두 사람 곧 밭을 산 사람과 소 다섯 겨리를 산 사람은 모두 상당한 재력을 갖춘 자들이 명확하기 때문에, 이들은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부유한 자들’이다. 그런데 이 부자들은 모두 대지주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첫 번째 사람은 새로 밭을 사서 자기 땅을 늘렸기 때문이고, 두 번째 사람 역시 새로 산 밭을 가는 데 소 다섯 겨리가 새로 필요할 만큼 가진 땅이 넓기 때문이다. 

셋째, 이들을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부유한 자들’로 해석하는 이유는 마지막 사람 곧 장가든 사람 역시 문맥상 20절의 밭을 산 사람과 소 다섯 겨리를 산 사람을 잇는 부자이자 21절의 가난한 자와 대조되는 부자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또한 문맥상 주인이 큰 잔치를 베풀면서 첫 번째로 초대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사회의 지도급 인사들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이 본문에 등장하는 장가든 사람은 이제 막 첫 장가를 든 십대 후반의 애송이 청년 서민이 아니라 기혼자로서 새 장가를 든 중년 전후의 부자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장가든 사람의 경우는 당시 대지주인 부자들의 악한 일부다처나 이혼의 관행을 반영하는 것이다. 곧 부자들이 밭을 새로 사고, 또 새로 산 밭을 갈기 위해 새로 소 다섯 겨리를 사며, 일부다처나 이혼이라는 당시 부자들의 악한 관행을 따라 새로 장가드는 현실을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다. 그럼 일부다처나 이혼이 부자들의 관행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일부다처나 이혼을 실행하려면 많은 돈이 들 수밖에 없었으므로 오직 부자들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큰 잔치에 초대를 받았으나 참석을 거절한 사람들은 ‘일상에 바쁜 보통사람들’이 아니라 자기들의 소유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거부한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부자들이다. 이들은 특히 대지주들로서, 자기들이 소유한 이 세상의 땅 때문에 어리석게도 하나님의 나라를 거부하고 만다. 결국 이들은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맛보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이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보다 이 세상의 땅을 더 귀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들어가려면 이 세상의 땅을 버려야 한다. 이 세상의 땅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

눅 14:33,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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