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反)희년 체제의 두 가지 의미, “강도의 소굴”
예수님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셨다. “장사하는 자들”은 대제사장의 허가를 받고, 제물로 쓰일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독점 상인들이었다.
그럼 왜 예수님이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셨는가? 그들이 성전에 제물을 바치러 온 사람들에게 독점 가격으로 불의한 이득을 취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바치는 제물인 비둘기 한 쌍의 가격을 시중 가격의 다섯 배인 금화 한 데나리온에 파는 일도 있었다. 장사하는 자들은 이 불의한 이득을 대제사장과 나누어 가졌다. 이런 날강도 체제를 계획하고 실행하고 유지하는 중심에 대제사장들이 있었다. 그들은 한마디로 종교적 강도들이었다.
대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강도질을 하는 ‘종교적 강도들’이었다면, 성전 밖에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강도질을 하는 ‘사회적 강도들’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자들이 바로 서기관들과 장로들이었다.
먼저 서기관들은 토라(율법)를 기록하고 보존하고 해석하고 교육하는 엘리트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고,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하는 자들이었다(눅 20:47). 바로 이어지는 본문에서, 전 재산이 두 렙돈밖에 남지 않은 과부는 서기관들에게 가산을 강탈당한 과부일 가능성이 높다(눅 21:1-4). 성전은 서기관들과 같은 사회적 강도들이 들어와서 십일조를 비롯한 각종 헌물을 드리고 또 제사를 드려, 자신들의 악행을 덮을 뿐만 아니라 나가서 악행을 계속 되풀이할 수 있도록 강화해 주는 장소였다.
다음으로 장로들은 대부분 부유한 대지주들이었다. 그 장로들의 가문은 희년 토지법을 어기고 가난한 사람들 몫의 땅을 그들에게 돌려주지 않은 채, 대를 이어 축적하고 상속했다. 그들은 불법을 자행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땅을 강탈함으로써 부유한 대지주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성전은 장로들과 같은 사회적 강도들이 들어와서 헌금과 제사를 드리게 허용하고 대제사장들은 그들에게 축복함으로써, 그들의 악행을 덮어주고 나가서 그 악행을 계속할 수 있게 해 주는 곳으로 전락했다.
요컨대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는 예수님의 말씀(눅 19:45-46)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곧 ‘종교적 강도들’이 강도질을 자행하는 곳이자 ‘사회적 강도들’이 자신의 강도질을 종교적으로 세탁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사회적 불의와 종교적 불의가 하나로 뒤섞인 채 성전에 응축되어 있었다.
그러나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자들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강도들은 자신들을 강도라고 비판한 예수님을 죽이려 했다(눅 19:47, 20:1, 19). 그런데 이 강도들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바로 산헤드린의 71명 의원들을 구성하는 3대 세력들이었다. 며칠 후에 그들은 예수님을 이방인의 손에 넘겨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데 앞장섰다. 결국 기원후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로마군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오늘날의 우리 교회는 어떠한가? 사회적 불의와 종교적 불의가 하나로 뒤섞인 채 우리 교회 안에 응축되어 있지는 않은가? 사회적 강도들과 종교적 강도들이 우리 교회를 이미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버리지는 않았는가? 그렇다면 남은 것은 오직 크고 두려운 심판뿐이다. 우리 교회를 생각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자문한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