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년 이야기] 룻과 보아스의 기업 무르기(3)
룻기는 서로 하나가 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여호와 신앙 안에서 헤세드의 실천을 통해, 또 그 정점인 기업 무르기와 같은 희년 경제의 실천을 통해, 서로 사랑하며 하나가 되는 이야기이다.
룻 1:18-21, “18.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19.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20.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21.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나오미’라는 이름은 ‘기쁨과 즐거움’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마라’는 ‘괴로움’이라는 뜻이다.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나오미는 성읍 사람들에게 자신을 더 이상 ‘기쁨과 즐거움’이라는 뜻을 가진 나오미로 부르지 말고 ‘괴로움’이라는 뜻을 가진 마라로 부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원망한다.
남편과 두 아들을 모두 잃고 어떤 소망도 가질 수 없는 상태에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빈털터리로 남게 된 나오미는 절망에 가득차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들을 비탄 가운데 쏟아놓는다.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다,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다,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다,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다.”
그런데 이런 나오미가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곁에 룻이 있었기 때문이다. 룻은 가난한 자이며 이방인이자 과부이다. 가난한 이방인 과부이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룻은 가난한 자 중의 가난한 자이고, 소외된 자 중의 소외된 자이다. 그러나 룻과 같이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 하더라도 나오미와 같은 사람의 친구가 되어 그 사람에게 언약에 신실한 사랑 곧 헤세드를 베풀 수 있는 것이다.
룻 1:22,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에 돌아온 때는 보리 수확을 시작할 때였다. 유대인의 전승에는 보아스의 밭이 베들레헴 동쪽에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오미와 룻은 요단강 동쪽에 있는 모압으로부터 서쪽으로 길을 떠나 요단강을 건너 베들레헴성의 동쪽에 있는 보아스의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서 베들레헴성에 돌아온 것이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으로 시작하는 우리 가곡 ‘보리밭’이 있는데, 바로 그처럼 누렇게 익어서 바람에 넘실대는 보리밭 사잇길로 나오미와 룻은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그 보리밭 사잇길은 터벅터벅 힘없이 걸어가는 나오미에게 앞으로 두 사람의 헤세드를 통해 절망과 비탄이 희망과 찬양으로 바뀔 구원의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