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그런뜻이었구나] 생명 (3) “선한 행위 촉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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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3) “선한 행위 촉발 ”

생명을 뜻하는 “조에”는 인간 스스로 소유하지 않고 외부로부터 얻는다는 사상은 원시 시대에 널리 퍼져있는 사상이었습니다. 고대 로마 인들에게 생명의 근원은 주노 (Juno) 여신을 포함한 여러 신들이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도 생명의 근원은 신이었는데, 특히 대지와 만물의 어머니인 가이아 (Gaia)여신으로 여겼습니다. 그녀는 우주에 존재하는 만물을 탄생시키는 생식과 창조의 어머니로 믿어졌습니다. 인간은 신들로부터 생명을 공급받는다고 믿었습니다.    

   주전 2세기 유대 땅을 점령했던 그리스의 군대를 몰라낸 유대의 영웅 마케베우스의 글에는 생명은 인간 부모가 준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자비로 주신 것이라고 기록합니다. 한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어떻게 내 배 속에 생기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너희에게 목숨과 생명을 준 것은 내가 아니며, 너희 몸의 각 부분을 제자리에 붙여 준 것도 내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생겨날 때 그를 빚어내시고 만물이 생겨날 때 그것을 마련해 내신 온 세상의 창조주께서, 자비로이 너희에게 목숨과 생명을 다시 주실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요소였습니다.    

   사람들은 이 생명을 얻는 길은 두 방법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믿어왔습니다. 첫번째는 인간은 태어나면서 신들로부터 생명을 부여 받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운명의 신으로 알려진 모이라이 (Moirai)는 원초적 창조의 힘으로 인간에게 생명을 제공하고 기간이 되면 그것을 거둔다고 믿어졌습니다. 생명을 얻는 또 다른 방법은 개인의 탁월함과 용기 그리고 덕을 통해 얻는다고 믿었습니다. 

   이와같은 사상은 중세 로마 캐톨릭에 변형되어 등장합니다. 로마 교황청은 누구든지 연보를 드리므로 죄용서를 받고 영생을 얻는다고 가르쳤습니다. 사제들은 죽어 연옥에 있는 자도 그를 위해 누군가가 연보 궤에 돈을 넣으면 딸랑 소리와 함께 생명을 얻는다고 설교했습니다. 이에 반대하여 마틴 루터는 인간이 생명을 얻는 것은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이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죄를 용서해 주는 면허증을 받고 생명을 얻었다고 믿는 사람들은 영원히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사건으로 루터는 교황청으로부터 죽을 위기를 직면합니다. 

   그렇다면 생명은 한 개인의 삶에 어떻게 들어가는 것일까요? 영생이라고도 부르는 “조에,” 즉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생명은 어떤 통로로 사람과 직접적인 연결이 될까요? 신약 성경은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으로그분께서 주시는 선물임을 일관성 있게 언급합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고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 생명을 물로 비유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님은 자신을 떡으로 비유하여 영생을 설명합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생명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는 특성이 있습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인류는 이 생명을 얻는 방식에 관해 여러 길을 제시했습니다. 유대 사회에서 성장한 한 젊은이가 예수님께 와서 질문합니다. 이 사람은 유대 사회의 지도자였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탁월함과 선한 행위를 통해 생명을 얻는다는 교육을 받은 이 사람은 구체적인 행위를 물어 본 것입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계명에 명시된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를 실천해 오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아직도 그는 인간이 생명에 이르는 길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신약 성경은 생명이 한 개인의 삶에 들어 오는 방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람이 생명을 얻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인간의 행위는  영생을 얻는 구원의 요건이 아닙니다. 성경은 생명을 얻는 필요 조건은 예수를 믿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이 원칙을 말씀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복음은 사람은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질서를 강조합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성부 하나님께서는 성자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을 인간에게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이 생명을 얻기 위해 인간이 반응해야 하는 유일한 행위는 선물을 수취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을 받는 자는 생명을 얻습니다. 

   생명의  소유와 불리할 수 없는 것은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소유하게 되면 행위가 동반되는 것은 자연의 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이 있다고 하지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처럼  헛것이며 죽은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선행으로 영생을 얻을 수는 없지만, 예수를 믿음으로 생명을 받은 사람은 선한 행위가 증거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영생을 찾고 있는 젊은이에게 이렇게 길을 제시합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온전함은 생명을 얻는다는 의미입니다. 그 길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삶의 방식으로 특권과 권력을 내려 놓고 가난한 자들을 돕는 실천입니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나눔이 영생을 얻는 그 원칙은 아니지만, 생명을 소유한 믿음의 여정에는 선한 행위가 필연적으로 동반됩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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